호기롭게 내세웠던 원희룡도정의 ‘협치 담론’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마치 삶은 오이처럼 흐물거리고 있다. 취임 100일 만이다.

이지훈 전 제주시장에 연이은 이기승제주시장 내정자 등 ‘두 이(李)’의 낙마는 바로 협치실패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협치 포퓰리즘의 수명’이 길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희룡지사는 지난 7월1일 “도민이 중심이 되는 수평적 협치, 생각이 달라도 연대하고 협력해 결국 하나의 제주를 지향하는 포용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취임사를 통해서다.

야당인사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 이른바 공직사회의 장외인사를 공직으로 끌어들이려는 제주시장 인사는 ‘협치 실천’의 첫 걸음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협치실천‘은 애석하게도 ’협치 실험의 실패‘를 부르는 전조(前兆)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협치의 정치적 실험이 ‘협잡이 되고 협량’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은 여간 씁쓸한 일이 아니다.

제주시장 등 고위직이나 도산하기관장들에 대한 공모(公募)제 실시는 원도정 인사의 가장 뼈아픈 ‘아킬레스 건(腱)’으로 작용 할 수도 있다,

선출직 도지사가 임기동안 함께 일할 인재를 공모를 통해 쓰겠다는 것은 선전용으로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투명한 인사, 능력 있는 인재를 널리 구해 등용하겠다는 이른바 인사탕평책은 겉과 속이 다른 인사정책이라 할 수 있다. 태생적으로 실패를 안고 있는 것이어서 그렇다.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사회의 공감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소외되고 패배한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 달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약효가 길수가 없다. 등용인사의 충성심만 키워 인사권자의 장악력만 돋보이게 할 뿐이다.

따라서 고위직 인사 공모제는 인사권자의 권력 강화와 책임회피용으로 전락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인사나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거나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한바로는 그렇다. 이미 내정 해놓고 눈가림용으로 ‘공모’를 내세웠던 사실은 공지의 비밀이다.
‘무늬뿐인 공모’를 통해 ‘깨끗하고 투명한 인사’라고 자랑한다면 그것은 도민을 우롱하는 인사 사기(詐欺)라는 말을 듣기에 충분하다.

책임있는 지도자라면 임기를 함께할 공직자를 능력 있고 도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주변에서 기용하는 것이 솔직한 일이다.
조직 장악력이나 업무추진력 강화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협치 정책실 요원들은 측근을 기용하면서 시장 등 고위직이나 산하기관장들은 ‘들러리’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으면서 '공모'를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달라 보이려는 '작위적 행위'가 아닌가.

왜 ‘삼성’이 세계적 일류기업이 되었겠는가. 인사탕평책을 쓰지 않고 경쟁 가운데 능력 있는 인물을 뽑아 썼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원도정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인사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좌고우면하지 않은 소신과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  '젊고 멋진 그대' 누구의 눈치를 보고, 누구의 리모컨에 조종당할 것인가.
이번 이기승제주시장 내정자의 경우에서 드러났듯이 소위 도의회의 인사청문회는 시각에 따라 원지사가 책임행정을 회피하겠다는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같이 일할 사람'이라고 추천하면서 나무위에 올려놓고 마구 흔들어 '신상털이 놀이의 조연자'가 되겠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여간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공직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자질과 업무수행 능력 등 공직자로서의 적격성 여부를 검증함으로써 해당 업무수행에 적합한지를 변별해내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데도 법과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상태에서 단지 포퓰리즘에 매몰돼 청문을 의뢰하고 진행된 이 내정자에 대한 도의회 인사청문회는 자질과 능력 검증보다는 25년 전 과거의 허물을 끄집어 내 할퀴고 씹어뱉는 ‘부관참시(剖棺斬屍)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정자는 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25년전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사과’했다.
그 사건은 이미 4반세기 전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당시에 피해자 측과 합의하고 벌금 등 법적으로 종결된 사안이었다. 그것이 오늘의 공직수행 부적격적으로 매도된다면 이는 또 하나의 '가혹한 연좌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도의회 청문위원들은 하이에나 처럼 여기에 달려들어 발기발기 찢어 발겼다. 자질과 능력검증은 뒷전이었다.

세상에서 어느 누가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롱펠로는 ‘죽은 과거는 죽은 과거대로 묻어두라’고 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교훈이다.

과거의 아픔과 고통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통해, 현재를 치유하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여 아름답고 건강한 미래를 가꾸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청문위원들의 과거는 어떠했는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당당했었는가.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 하고 비판 할 수 있을 정도로 고고한 도덕성과 깨끗한 윤리성을 겸비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기에 앞으로 예고된 도 산하 기관장들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청문위원들에대한 사전 검증작업도 필요'하다는 사회일각의 주문도 나오고 있다.

청문위원으로 선임되는 위원들의 범죄경력, 병역, 재산취득 과정, 납세실적 및 체납현황, 도덕적 흠결이나 윤리 문제 등의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모두를 검증하는 검증위원으로서의 적격성 여부를 판별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회일각의 주문은 사실상' 공직후보 인사청문회 무용론'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자질과 능력 검증보다는 과거 전력이나 신상 털기에 혈안이 됐던 ‘제주시장 인사 청문 위원들에 보내는 ’인사 청문 평가 보고서‘일 수도 있다.

원희룡 도정의 인사시스템 활용에 대한 경고의 의미이기도 하다.
취임 100일, 원희룡도정에 보내는 주문은 그만큼 아프지만 경청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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