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ESCO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세계자연유산등재(2007년), 세계지질공원인증(2010년) 등 세계 유일의 UNESCO 자연과학분야 3관왕을 거머쥔 제주는 수백여차례의 화산폭발로 빚어낸 화산섬으로, 불의 섬이자 물의 섬이다.

‘물만 잘 마셔도 몸이 바뀐다’ 라고 할 정도로, 좋은 물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높아가고 있는 요즘, 제주투데이에서는 섬의 탄생과 함께 해온 제주 물의 역사를 다룬 1부와 제주물의 우수성과 현주소(2부), 제주물의 미래 (3부) 등을 총 3회에 걸쳐 연재함으로써, 제주물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제주의 물 (水)을 말하다 - 1부/ 제주물이야기

1. 제주물의 탄생

수 십 만년 前, 화산폭발과 함께 탄생한 화산섬 제주는 제주 그 자체가 물에서 태어났다. 신생대 후기 (약 200만 또는 180만년)인 얕은 바다에서 화산활동이 시작된 제주는 세계적인 화산섬으로, 불의 섬이자 물의 섬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자연유산관리단의 전용문 박사는 “제주를 탄생시킨 절반이 불이라면 나머지 반은 물이다.” 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물은 화산과 더불어 제주 섬을 이루고 있는 근간이다.
 

제주가 물(水)과 불(火)의 임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수성화산이다. 수성화산이란, 마그마나 용암이 물과 만나면 급히 식고 물을 끓게 되는데, 이런 냉각과 가열반응은 매우 격렬하게 일어나 수증기를 다량 함유한 큰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이를 수증기 – 마그마성 분출 혹은 수성화산활동이라고 하고, 그때 생긴 화산을 수성화산이라고 한다.

제주의 대표적인 수성화산이라고 하면, 성산일출봉을 빼놓을 수 없다. 물과 불의 뜨거운 만남속에 탄생한 곳으로, 약 5천 년 전, 수성화산 활동에 의해 완성되었으며, 수성화산의 탄생과 형성과정을 담은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세계적으로 드문 수성화산으로 꼽힌다. 그런 까닭에 ‘수성화산의 교과서’라 불리고 있다. 성산일출
봉 외에도 송악산, 수월봉, 당산봉, 용머리해안 등이 물과 불의 격렬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 수성화산이다.
 

그렇다면 불(火)과 더불어 제주를 이루는 근간인 제주의 물(水)이 풍부하고 성분함량 또한 뛰어난 까닭은 어디서 기인 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제주가 신생대 3기와 4기에 걸쳐 약 300여 차례 이상의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섬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구름대가 섬 중앙부의 한라산에 부딪히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국내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곳 중의 하나라는 것 또한 제주를 물의 섬으로 만드는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제주광역수자원관리본부에 따르면, 제주도는 지역별, 고도별 강수량 편차가 매우 커서, 연평균 강수량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제주지방기상청과 소관 기상대 3개소(서귀포, 고산, 성산)를 기준으로 산정한, 30년간(1981년~2010년) 연평균 강수량은 1,142.8~1,966.8㎜의 범위로, 제주는 국내 최대 다우지역에 속한다.
 

태평양 상공의 수증기가 한라산에 부딪혀 비로 변해, 제주 특유의 회토 덕분에 빠르게 스며들어 제주의 지하층에 이 물이 가득차게 되는 것이다. 연간 강우량의 41% 정도인 15억 8,000만 톤의 물이 제주의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다고 제주광역수자원관리본부는 분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층구조는 화산회토와 다공질 현무암, 조면암층 등으로 되어있어, 빗물이 지하로 스며드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필터역할을 하여 이물질 등을 여과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모래 침전조, 활성탄, 다단계 마이크로 필터 등 보통의 생수회사의 정수시스템을 훨씬 능가하는 자연발생적 정수 시스템으로, 이런 정수시스템이 결국
최고의 물맛을 자랑하는 제주지하수를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2. 제주물의 역사
화산활동에 의한 화산섬, 국내 최대 다우지역이라는 자연적 입지조건이 풍부하고 뛰어난 물을 탄생시켰지만, 정작 제주도민들은 상수도가 보급되기 이전까지 물을 얻기 위한 남다른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1521년 (중종16) 김정의 <제주풍토록>을보면 “한라산과 제주에 샘이 매우 적었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5리나 되는 샘에서 물을 하루에 1~2회 길어온다. 그러나 짠 샘이 많고, 많이 길어 가기 위해 언제나 목통(木桶)을 이용하였는데, 주로 여자들이 많이 이용하였다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단 이 기록이 아니더라도 70 · 80대 어른이라면, 이른 새벽 눈을 비비며 물허벅을 지고 물을 길어 날랐던 기억 하나쯤 모두 갖고 있을 정도로, 물을 얻기 위한 제주사람들의 어려움은 컸다. 그런 까닭에 제주의 물 역사는, 크게 상수도가 개발되기 이전인 1960년대 이전인 용천수 – 물허벅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로 구분한다고 할 수있는데, 본고에서는 첫 번째 용천수 – 물허벅시대 (1960년대 이전), 두 번째 지하수 개발시대 91960 ~ 1990년), 세 번째, 지하수보전관리시대 (1990년대), 네 번째 지하수브랜드시대(2000년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물허벅으로 생활에 필요한 식수를 길어 나르던 용천수시대(1960년대 이전). 용천수를 빼놓고 제주의 물 역사를 말할 수 있을까? 용천수란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대수층을 따라 흐르다가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물을 일컫는 것으로, 제주도에는 많은 용천수가 분포하고 있다.
 

제주도의 여러 마을들이 용천수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과거 용천수는 마을을 이루는 중심이었다. 용천수가 여러 군데서 솟아나고 또한, 솟아나는 물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디지털 서귀포 문화대전 – 용천수 편> 자료에 따르면, 제주특별자치도가 1999년에 처음으로 조사한 조사된 용천수는 911개로 제주시에 540개소(기존의 제주시 동지역 142개소, 구 북제주군지역 398개소) 서귀포시 371개소 (기존의 서귀포시 동지역 168개소, 구 남제주군지역 203개소)가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9백 여 개나 넘을 정도로 과거 제주사람들의 생명수였던 용천수가 최근 들어서는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바로 중산간 지역의 개발과 도로 개설 등으로 인해 예전보다 수량이 감소했으며, 용천수 자체 또한 파괴되어 사라지고 있다.
 

두 번째 지하수 개발시대(1960~ 1990년)를 꼽을 수 있다. 제주의 지하수 개발은 제주의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정부와 USOM(Unitee States Operations Mission: 미국 대외 원조기관)의 지원으로, 1961년초부터 중산간지대 심정굴착 가능성을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1961년 12월 395㎡/일의 지하수 개발이 성공함으로써, 제주도에서 최초로 관정식 지하수 개발이 성공되는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이후, 1967년 1월 연두순시 차, 제주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어승생 댐 수원을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림으로써 제주지하수 개발은 본격화 되었고, 어승생 댐 수원 개발은 지금의 물 산업의 토대가 된다. 1970년대 들어오면서 용천수 상수원 개발과 지하수 관정 개발사업이 병행되어 추진되었고, 그 결과 1985년 제주도의 상수도 보급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99.9%를 기록하게 되었다.
제주의 물역사는 지하수 개발시대를 거쳐 지하수 보전관리시대 (1990년대)로 이어진다. 가장 높은 상수도 보급률을 자랑하던 제주도는, 1980년대 중 · 후반에 들어서면서, 제주시 삼양, 용담, 용천수 상수원 개발은 물론 관광호텔, 여관, 목욕탕, 농업용 등 개인 용도의 지하수 관정 개발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1989년에
접어들면서는, 지하수 고갈, 해수침투 등 지하수 난 개발에 따른 부작용 발생에 대한 우려가 제주지역의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지하수 개발규제를 위한 관계법 제정과 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1991년 12월 31일,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지하수 굴착, 이용허가 및 지하수 원수대금의 부과 · 징수에 관한 규정(제25조와 제26조)이 포함됨으로써, 지하수를 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틀을 전국 최초로 마련하기에 이른다. 
지하수법 제정이 지지부진하던 그 당시로서는,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지하수 허가제와 원수대금 부과근거를 마련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으며, 특히 지하수 개발을 위해 토지를 굴착하고자 할 때는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밟도록 의무화했다는 것은, 다른 지역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기도 했다.


드디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지하수 브랜드 시대가가 문을 열게 된다. 화산암반에서 뽑아 올린 제주의 생수는 청정수 그 자체로, 제주도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제주 지하수의 과망간산칼륨과 질산성질소의 측정치는 각각 0.3, 0.2mg/L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프랑스의 에비앙과 볼빅 조차도 이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고혈압, 심장병, 당뇨병 치료 등에 효과가 있는 바나듐(V), 실리카(SiO2) 같은 물질이, 제주 지하수에는 풍부하게 들어있다.
지난 1998년 3월부터 국내에 시판되기 시작한 제주지방개발공사의 삼다수는, 국가브랜드 경쟁력 지수 7년 연속 1위, 대한민국 브랜드 스타 9년 연속 선정, 한국산업의 브랜드 파워 K-BPI 8년 연속 1위, 글로벌 브랜드 역량지수 10년 연속 1위 등 국내 먹는샘물 시장점유율 부동의 1위로, 현재까지 삼다수 판매수익은 1,060,806 백만원(제주지방개발공사 자료)에 달한다. 제주지하수 브랜드 파워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3. 용천수이야기
용천수를 토대로 마을이 형성된 까닭에, 제주의 용천수는 저마다 설화와 역사를 안고 있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설화를 갖고 있는 용천수를 소개해보면, 가장 먼저 애월읍 유수암리의 유수암천을 꼽을 수 있다.

 


유수암리는 옛날부터 유수암 바위 사이로 한라산 맑은 물이 흐르는 마을이라고 해서 유수암이라고 이름 지었을 만큼 유수암천은 유수암리의 설촌배경이 되고 있다. 이 마을에 있는 비석 ‘유수암천명’에는, “한라산 서북 나래 드리운 곳에 우뚝 솟은 절마루, 그 아래 십리허에 봉소형을 이루었고, 감천(甘泉)이 용출(勇出)함에 이름하여 유수천(流水泉)이라 하였다. 극심한 한발(가뭄)에도 끊이지 않으며, 여름에 차갑기가 빙수와 같고, 겨울에 따스함이 온천을 의심할지 이 맑은 물은 역질을 예방하고 성인병을 볼 수 없으니 예천(醴泉)에 비할지로다.”라고 적고 있다.
맑고 깨끗한 물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유수암천은, 고려시대 여몽연합군에 대항했던 삼별초의 식수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 삼별초는 애월읍 상귀리에 있는 구시물과 옹성물과 더불어 유수암의 물이 식수로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987년 한국자연보호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명수 100곳 중 한곳으로 선정된 서귀포시 서홍동의 용천수, 지장샘 또한, 서홍동의 마을형성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용천수다. 송나라 술사인 고종달이 물혈을 끊으려 탐라로 왔으나, 농부의 지혜로 물혈을 지켜냈다는 연유에서 ‘지혜로움을 감추고 있는 샘’, 지장샘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 편집자주: 제주물의 역사에 이어 11월에는 2부, 제주 물의 우수성과 현주소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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