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40대 변호사 피살사건 영구미제 되나

지난 1999년 11월 5일 오전 6시 48분께 제주시 삼도2동 모 초등학교 인근 아파트 입구 사거리에서 40대 남성이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남성은 서울지검과 부산지검 검사를 거쳐 변호사를 개업한 뒤 7년 전 고향 제주로 내려온 변호사 이모(당시 44세)씨.

이 변호사는 예리한 흉기로 가슴(심장)과 배를 3차례나 찔리고 왼쪽 팔꿈치 부분도 흉기에 관통당한 채 자동차 운전석에서 숨져 있었다. 운전석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고 차량 밖 도로에도 핏자국이 선명했다.

부검의가 부검한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관통에 의한 과다출혈이었고, 왼쪽 팔꿈치 부분의 관통상은 방어하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이 나왔다.

숨진 이 변호사의 오른손에는 차량 열쇠가 쥐어져 있었고 현금이 든 지갑과 소지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명백한 '타살'이었다.

경찰은 이 변호사가 차량 밖에서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당한 뒤 몸을 피하려고 승용차에 올라탄 것으로 추정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가정이나 식당 등에서 일반인이 사용하는 종류와 다르고 살해 수법도 매우 잔인하다는 점도 주목했다.

경찰은 즉시 사건 현장 부근 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언론을 통해 이씨의 직업이 변호사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에는 수임사건에 대한 불만 또는 원한에 의한 계획적인 살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경찰은 이 변호사가 사건 당일 새벽 3시 10분께 제주시 연동에 있는 카페 여종업원에게 '찾아가겠다'며 3차례 전화를 한 사실이 밝혀져 치정에 의한 살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종업원과 주변 남자들의 사건 당일 행적을 조사했으나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후 불량배의 우발적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목격자를 찾는 전단 1만여장을 배포하는가 하면 범인 검거에 현상금 1천만원까지 내거는 등 강한 수사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수사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1년 만에 전담수사본부는 해체됐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

현재 범죄를 처벌·기소할 수 있는 시한인 공소시효 만료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태다. 앞으로 2주 후인 다음 달 5일부터는 범인을 잡더라도 죄를 물을 수 없다.

법이 개정돼 살인죄 공소시효가 25년으로 늘어났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2007년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에만 해당될 뿐 1999년 발생한 사건에는 소급적용되지 않는다.

사건 현장 인근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고 그날의 흔적도 세월과 함께 지워졌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은 "폐쇄회로(CC)TV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아무런 단서가 없었다"며 당시 수사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지금까지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게 돼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 많다"며 "당시에 현재처럼 과학수사기법이 발달했더라면 범인을 잡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주에는 이 사건에 앞서 1997년 8월 14일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각각 발생한 관덕정 단란주점 여종업원 피살사건과 호프집 여주인 피살사건 모두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고 말았다.

아직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제주지역 미제사건은 2006년 제주시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 2007년 서귀포시 40대 주부 피살사건, 2009년 제주시 어린이집 보육교사 피살사건 등이 있다.

◇ 공소시효

공소시효 제도는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범죄사건에 대해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다.

형법상 공소시효는 살인 25년, 강도 10년(특수강도 15년), 형법상 강간 10년(특수강간 15년), 방화 15년, 절도 7년(특수절도 10년), 사기 10년, 횡령·배임 7년(업무상 횡령·배임 10년) 등이다. 특별법의 공소시효는 형법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도가니'로 널리 알려진 지난 2005년 발생한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등이 발생하자 반(反)인륜적 흉악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어 아동·청소년·여성 장애인 등을 상대로 한 강제추행과 강간살인죄는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미제사건' 첨단기법으로 해결한다

#1 2007년 10월 강원도 화천의 산골마을에서 70대 노파가 둔기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칫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 사건은 노파가 피살된 지 10여 일 뒤부터 2011년 1월 중순까지 집으로 배달된 7통의 협박성 편지가 단서가 돼 용의자를 특정, 범행 5년 만에 범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2 2004년 12월 대전 동구 대성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문모(당시 42세)씨가 10여 차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여러 방면으로 수사를 확대했으나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결국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최근 현장에 있던 칼집을 감은 테이프 안쪽 접착면에서 쪽 지문이 발견돼 8년 만에 사건이 해결됐다.

#3 2004년 3월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8차례에 걸쳐 다세대 주택 화장실 창문을 뜯고 들어가 식칼로 피해자들을 위협해 강도강간을 저지른 피의자 A씨가 지난 1월 뒤늦게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A씨는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아 현장에 지문을 남기고도 10여 년간 경찰 수사를 피해갈 수 있었다.

이 사건들은 당시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됐던 장기 미제사건들이다. 당시에는 수사기법 등이 발달하지 않아 오랫동안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다가 최근 경찰청의 '미제사건 전담팀'에 의해 해결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을 해결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더욱이 최근에는 살인·강도와 같은 강력범죄부터 신종범죄까지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범행 증거를 남기지 않거나 범행현장을 고의로 훼손하는 등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완전 범죄는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증거 중심의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담당 수사관들의 노력과 첨단 수사기법, 장비의 도움으로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2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9월 강·절도 미제사건 697건 중 현장지문 재검색을 통해 9년 전 여자 혼자 사는 원룸에 침입한 야간 강도상해 사건 등 385건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를 일선 경찰서에 통보해 110명(범행당시 미성년자 89명, 성인 21명)을 검거했으며 148건은 수사 중이다.

현장지문 재검색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385명 중에는 미성년자가 194명으로 전체 신원확인 대상자 중 가장 많은 50.4%를 차지했다. 이어 성인 140명 36.4%, 외국인은 51명으로 13.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문 발견 이후 검거 기간은 2주 이내(58건, 53.9%)가 가장 많았다. 2주~1개월 이내(28건, 25.9%), 1~2개월 이내(11건, 10.1%), 2개월 이상(11건, 10.1%)이 뒤를 이었다.

또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미제로 남은 3032건에 대한 지문 재검색을 벌여 지난 7월말 기준 1143명의 신원을 밝혀냈고 329건의 사건을 해결했다.

이런 과학수사는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분리·신설되고 1963년 시·도경찰국 수사과에 '감식계가 신설되면서 기틀이 마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1999년 지문계와 감식계가 통합된 '과학수사과'가 신설되어 지금의 '과학수사센터'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지문감정이나 족 흔적 감식, 몽타주 수배 등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지문 분석과 유전자(DNA) 분석 등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중반까지도 감식이 어려웠던 지문의 극히 일부나 훼손된 것을 분석하는 '쪽 지문'과 머리카락, 침, 땀 심지어 대소변까지도 용의자의 흔적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된다.

특히 'DNA 분석'은 동남아인이 연루된 살인 사건에서 DNA만으로 피의자의 국적을 정확히 맞혀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용의자의 종족이나 피부색 등은 물론 동식물의 구체적인 개체 식별도 가능하다.

또한 ▲핏방울의 위치와 크기 등을 토대로 범행을 재구성하는 '혈흔형태 분석' ▲손바닥 지문을 활용하는 '장문 분석' ▲범인 추적과 용의자 구별에 개를 이용하는 '체취증거 기법' ▲CC(폐쇄회로)TV 영상 속 걸음걸이 특징을 분석하는 '걸음걸이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이밖에 CCTV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곧바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동 얼굴인식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 과학적 수사 기법의 꽃으로 불리는 '프로파일링'도 있다. 이 기법은 범죄 현장과 유·무형의 증거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다. 범죄 심리의 재구성, 관련자 진술 분석, 지리학적 연관성 분석 등을 종합하는 다차원적인 수사기법이다. 부산 여중생 납치 성폭행 살해 사건인 김길태 사건, 제주 여자 초등생 납치 살해 사건도 프로파일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날로 지능화돼 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을 끊임없이 연구, 도입하고 있다"며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범은 끝까지 재검색해 범인을 반드시 검거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과학수사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말을 믿는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범죄 피해자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지능범들과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일선경찰서 과학수사팀은 "정확한 현장감식을 위해서는 피해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112나 가까운 파출소에 신속히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음식물 취식, 침 뱉는 행위를 삼가고 사건현장에 출입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CCTV는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므로 상점 등 각 업소에서는 정기적으로 CCTV 작동상태 등을 점검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의 정확한 현장감식과 CCTV자료 확인을 통해 범인이 조기에 검거될 수 있도록 증거보존에 대한 주민들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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