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든, 기분 좋은 일이다. 원희룡지사가 전국 17개 광역시도단체장 직무수행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와 JTBC가 ‘10월 정례 광역단체 평가 조사결과‘다.

여기서 원지사는 65.5%의 긍정적 평가(매우 잘함+잘하는 편)로 1위를 차지했다.
부정적 평가(매우 잘못함+잘못하는 편)도 20.9%로 경북(15.3%) 울산(17%) 대구(18.5%) 전남(18.6%)에 이어 다섯 번째로 낮았다.

‘허상이 지배하는 영역’이라거나 ‘사람을 현혹시키는 숫자의 마술’이라고 여론조사 자체를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쪽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여론의 흐름을 읽는 데 유용한 과학적 지표를 제공한다“는 이론을 긍정한다면 ‘전국 1위 원희룡지사 직무수행’ 평가는 원도정에게는 기분 좋은 ‘가을 편지’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우쭐해서 ‘허상이 지배하는 숫자의 마술’에 놀아나서는 곤란하다. 나팔 불며 나댈 일도 아니다.
냉정히 말해 이번 조사에서 제주의 표본 집단이 전국 1% 수준인 170명에서 많아 200명 선이라면 긍정평가 65.5%는 110명에서 130명 정도다.

60만 제주도민 중 110명에서 130명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고 환호작약(歡呼雀躍)하거나 기고만장(氣高萬丈)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좋은 일에 딴죽 걸거나 재 뿌리려는 것이 아니다. 직접 여론을 접하고 있는 입장에서 여론조사 결과와 원도정 행보를 체감하면서 느끼는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현상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제주시장 지명 등 도 산하 단체장 인사를 둘러싼 도민적 비판과 비난이 거세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 원희룡 도정의 업무수행능력을 평가하는 도민적 판단은 다를 수 있다. 후한 점수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인사와 관련해서는 ‘낙제점을 주기에도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말들이 많다.

원지사는 지난 7월 1일 취임하면서 ‘선거 정치를 배격하고 공정인사’를 다짐했다. 취임사를 통해서다.
지난 도정의 공직 편 가르기 등 선거정치행태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도민이 중심이 되고 도민의 목소리를 듣는 수평적 협치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이후 “선거논공행상이나 선거 공신을 요직에 앉히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행정 시장 등 산하단체장 공모제와 도의회 인사청문회 요청도 했다.

‘원희룡 식 개혁 인사‘에 대한 도민적 기대에 불을 지폈다.
‘원희룡 개혁‘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높았다.

누가 그랬던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원지사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대가 실망을 넘어 절망적 상황으로 빠져 들었다.

공모(公募)제가 공모(共謀)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미리 내정자를 점 찍어 놓고 ‘공모’는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불과 했다.

임명된 단체장 모두가 '사전에 낙점됐다고 거론됐던 인사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한다.
어떻게 여기서 원지사가 다짐했던 ‘공정 인사’ ‘개혁인사’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원지사가 세 번 째 발탁해 내세운 김병립 제주시장 내정자 지명도 낙점설이 그대로 적중했다.

이미 김내정자는 ‘정치적 소신이나 의리보다는 권력의 양지만을 쫓아 변신을 거듭해온 카멜레온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김내정자는 민주당(새정치연합전신)소속으로 두 차례나 제주도의회의원을 역임했었다.
이른바 ‘노사모의 제주 핵심’이자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후보의 ‘제주시민캠프 상임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우근민 도정의 최측근으로 1년 6개월간 제주시장직도 역임했다.

그러다가 지난 6.4지방선거에서는 재빠르게 색깔을 바꾸어 원희룡캠프에 합류했다. 선거후에는 원희룡 새 도정 준비위원회 취임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정치적 변신이 능하고 기회포착에 동물적 감각을 갖고 있다”는 말이 뒤따랐다.

그러기에 원지사의 김내정자 지명은 원도정의 ‘공정·혁신·선거공신 배제 인사’ 다짐이 얼마나 허구에 찬 말장난인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지사는 취임사에서 “지금까지 제주사회를 네편 내편으로 갈라 제주발전의 성장 에너지를 소모시켜왔다”고 전 도정의 낡은 정치행태를 매도해왔다.

그래놓고도 배척 대상인 전임 도정의 핵심 측근을 새 도정에 끌어 들였다. ‘낡은 정치로의 진입‘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김내정자가 몸담았던 새청지민주연합은 물론, 제주주민자치연대 제주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원도정 인사를 강도높게 비판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개혁이 실종되고 기득권 세력과의 협잡으로 원도정의 협치가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마성(魔性)에 걸리면 전후좌우를 살피지 못한다고 한다. 권위와 독선으로 인해 목이 뻣뻣해지고 귀도 닫힌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증상이다.
도민적 여론을 무시한 인사 난맥도 ‘권력의 마성에 들어섰다는 증거’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희룡 도정이 벌써부터 권력의 마성에 취해 몽롱해 진다면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술에 취하면 아침에 일어나 냉수 한 사발로도 정신을 차릴 수 있다. 그러나 권력에 취하면 다르다. 황홀한 자기도취에서 깨어 날 수 없다고 한다. 권력의 비극은 여기서 싹튼다.

‘전국 17개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 1위’ 여론조사 결과가 권력의 마성에 불을 붙여 상승작용을 한다면 큰일이다. 독단과 독선은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국민의 우상으로 추앙 받으며 절대 권력을 누렸던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위대한 정치가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권력에 도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되새겨 볼 일이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