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사구팽(兎死狗烹)이니, 진돗개니, 워치도그(watch dog·감시견)이니, 청와대를 들러 싸고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박근혜대통령 비선 실세로 지목돼온 ‘정윤회의 국정 농단 문건’ 의혹과 관련해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올 초(1월6일) ‘청(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 동향’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문건이 최근(11월28일) 한 언론사가 입수해 보도 했다. 이것이 일파만파로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다.

여기서 ‘VIP 측근’은 대통령 핵심 비선(秘線) 실세로 지목돼온 정윤회씨를 일컫는다.

관련 동향 보고서의 핵심은 이렇다. “정씨가 박대통령의 측근인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제1부속비서관·안봉근제2부속비서관)’ 등과 주기적으로 만나 청와대 및 정부 내의 현안을 보고 받고 인사 등과 관련한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특히 연초 ‘증권가 찌라시‘로 유포됐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교체설도 지난해 이들과의 송년모임에서 퍼뜨리도록 사주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관련 문건에는 정기적으로 정씨와 회동했던 청와대 핵심비서관 3인 등 청와대 인사 6인, 여당인사 4인을 포함 10명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십상시(十常侍)라 지칭하기도 했다.

문건 내용의 진위여부에 관계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해괴하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시중의 풍설을 짜깁기 한 것에 불과할 뿐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문건 존재자체를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박대통령의 말대로 그 문건이 ‘찌라시 수준’이라면 청와대가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생산해 낸 것이다. 그리고 외부로 유출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그 문건으로 인해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 사이에서 이전투구(泥田鬪狗)식 볼썽사나운 진실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과 청와대 내부 문건이 밖으로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에 청와대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가 불거지면서 비선 실세로 알려진 정씨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토사구팽의 사냥개가 됐었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진돗개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문서 작성 지시자로 알려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인 조응천씨는 “나는 박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청와대의 워치도그 였다”고 했다.
그러고는 “작성된 문건 내용의 6할은 진실”이라고도 했다.

어이없게도 그들은 모두 도그(개)임을 자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개 타령‘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박근혜정부가 집권 2년차 만에 왜 벌써 뒤뚱거리고 망가지고 있는지 걱정스럽고 불안할 뿐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개혁의지가 되레 비정상을 양산하는 꼴이어서 그렇다.

권력이 ‘인(人)의 장막’에 가리면 균형 감각을 잃어버린다. 역사의 교훈이다.
눈뜨고도 앞을 볼 수 없는 청맹과니가 되기 일쑤다. 목이 뻣뻣하여 좌우도 살피지 못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 측근청치의 병리현상 인 것이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나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도 권력의 불행을 부르는 첫걸음일 수밖에 없다. 비극은 여기서 싹트게 마련이다.

T,S 엘리엇은 ‘이 세상 말썽 가운데 대부분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해 일어 난다“고 했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측근 정치의 폐해에 대한 경고 메시지나 다름없다.

당태종이 위징(魏徵)에게 물었다.
“제왕이 무엇을 중히 여겨야 하는가”
위징은 ‘동경(銅鏡)·사경(史鏡)·인경(人鏡)’ 등 ‘삼경훈(三鏡訓)‘을 말했다.
매일 아침 자신을 비추어 헤아리는 동경, 역사를 통해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경,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고 가리어 쓰는 인경을 말한 것이다.

이번 청와대의 대통령 핵심측근 3인방과 비선 실세들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을 대통령의 친동생 박지만 EG회장 그룹과 정윤회 그룹간 국정 장악 파워게임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것이 공적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에 브레이크로 작용한다면 그냥 놔둬선 아니 되는 것이다.
가차 없이 끊고 내쳐야 한다.

의혹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박대통령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측근 3인방과 비선 실세 등 이른바 ‘십상시’를 과감히 정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부담을 주기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들 스스로 신상을 정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들을 내치거나 스스로 물러나야 할 이유는 한 둘이 아니다.
우선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이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거짓말로 들통이 났다.

다음은 월권과 인사 전횡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의 문체부의 국·과장 인사조치 주문은 공적 수순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 비선 개입의 개연성이 높다.

그 원인과 과정이 어디에 있건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박대통령에게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이참에 팔다리를 잃는 아픔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를 건 자르고 털고 가야 한다.

전·현직 청와대 참모진 간의 이전투구, 전직 장관의 관련 의혹 폭로를 보면서 무책임하고 영혼의 없는 고위공직자의 맨 얼굴을 보는 것 같아 여간 씁쓸하지가 않다.

생선은 머리에서부터 썩기 시작한다. 권력의 부패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핵심부에서 부패가 시작된다.
이번 사태는 그래서 권력 부패의 조짐이나 다름없다.

몸이 썩어 들어가는 고름을 향수로 치유할 수는 없다. 칼로 베어 고름을 짜내야 한다.
집권 3년차를 앞둔 박근혜 정부, 생살을 발라내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쌓여온 악습과 적폐를 끊어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출발을 기대할 수가 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의 책상 앞에는 언제나 다음 같은 글이 새겨진 팻말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모든 책임은 여기에 있다(The buck stops here)”는 내용이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진다는 의미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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