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신뢰의 수단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믿음을 뜻하는 한자의 신(信)은 사람(人)과 말(言)의 조합이다.

그렇다고 말을 함부로 많이 하라는 것은 아닐 터이다. 말을 주고받음에 있어 절제와 품격과 존중이 어우러져야 신뢰의 바탕이 된다는 뜻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말 저말을 무책임하게 내뱉는 무사다변(無思多辯)은 신뢰보다 되레 갈등과 분열만 낳을 뿐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에 대한 경구(警句)는 대부분 ‘말 많음’을 경계하고 있다.
“세 번 생각하고 말은 한 번만 하라”는 삼사일언(三思一言)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말은 적게 하고 귀는 크게 열라”는 세구거이(細口巨耳)의 가르침도 다를 바 없다.

지도자의 말도 그렇다. 무겁고 신중해야 한다. 그만큼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주의 리더인 원희룡지사는 어떠한가. 그가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취임 후 6개월을 지내는 동안 그의 언행을 지켜본 도민 일각의 평가는 따스하지가 않다. 시니컬하다.

우선 말이 가볍고 신중하지 못하다고 했다. 절제되지 않는 감정의 노출, 가끔은 풍화되지 못한 비유로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가령 감귤값 하락과 관련 농협 관계자들에게 ‘세월호 선장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표현같은 것이다. 비유의 지나친 일탈이 아닐 수 없다.

최근(19일), 전국에 방송된 KBS1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새해 예산안 부결과 관련해서 도의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붙인 것도 집안 내부의 치부를 온 세상에 까발리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많다.

이날 원지사는 도의회와 도사이의 갈등 구조와 관련해서 ‘누워 침 뱉기 식 부끄러운 발언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전 국민을 상대로 도와 도의회간의 치부를 발가벗겨 보인 것이다.

발언의 대강은 이렇다. “도의원들이 사심 내지는 욕심이 껴서 1인당 20억원 씩 보장해 달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도의원들의 20억원 요구설’로 첨예한 대립을 보였던 도와 의회와의 관계에서 도 고위 공직자가 공개사과까지 하여 없었던 일로 일단락 됐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지사가 전국을 타는 라디오 방송에서 다시 거론하며 꺼져가던 갈등의 불씨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다.

계속되었던 원지사의 발언은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특정 단체에 여행 보내고 특정인에 보조금 주는 예산 편성”이라거나 “자기들 끼리 예산을 다 짜놓고는 본회의장에서 예스냐, 노냐만 대답하라면서 동의를 않으면 예산을 전부 부결시켜버린다”고 했다.

“도지사와 도의장이 같은 당 소속이면서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는 “제주도는 중앙과 달리 좀 독특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특정단체 여행 경비‘, ’특정인을 위한 보조금 편성‘, ’사심과 욕심으로 자기들끼리 예산 다 짜놓고’, '중앙과 달리 독특한 제주‘ 등등 듣기에 따라서는 ’도의회가 파렴치 집단‘이고 ’중앙과 달리 제주도가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 발언이다.

원지사는 “의회가 관행적으로 해왔던 이른바 선심성 묻지마 예산 배정에 대한 잘못된 관행을 이번에 바로 잡아야 겠다”고 했다.

물론 예산 편성과 심의에 대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개혁의지는 높이 살만하다.
그것이 원칙에 맞지 않으면 원칙을 바로세우는 작업도 필요하다.

나무랄 일이 아니다. 격려하고 박수 칠 일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신중함이나 절제 없이 도정 수행의 한 축인 도의회를 전국에 중계되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개혁대상의 부도덕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협치를 내세우는 원지사가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원지사의 이 같은 도의회를 향한 작심 발언의 배경에는 도의회에 대한 분풀이에다 보복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있다. 의도된 도발이라는 시각이다.

지난 도의회 정례회에서 도의장이 '저지에도 발언을 계속하는 지사에게 경고하면서 마이크를 꺼버린 데 대한 앙갚음'으로 예산안 파행의 책임을 도의회로 전가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모에 대한 보복심리의 발동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지사는 “표현이 좀 지나쳤다”고 했다. 20일 KBS제주총국 송년 특집 ‘100분 토론’에서다. “적절한 유감 표명을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20억원 요구 의원’을 밝힐 수 없느냐는 물음에는 “언론이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려 한다”고 넘어갔다.

상대를 까발려 실컷 두드려 패놓고 “좀 지나쳤다“거나 갈등의 책임을 언론에 돌리려는 듯 한 태도는 책임 있는 지도자의 자세는 아니다.
‘치고 빠지는 원희룡 식 레토릭’이거나 ‘냉탕 온탕 넘나드는 비겁한 언론 플레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기에 원지사의 발언은 그냥 없었던 일로 덮어버리거나 ‘적절한 유감 표명’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특히 도의회가 특정단체 여행경비나 특정인에 대한 보조금 명목으로 예산을 끼워 넣었다면, 그래서 도의원들이 사심과 욕심으로 자기들끼리 예산을 짜놓고 도의 동의를 강요했다면 도민혈세를 제 쌈짓돈으로 여기는 충격적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지사가 전국 방송을 통해 한 발언 들이 사실이라면 유감표명에 앞서 이 같은 충격적 사실에 대한 납득할만한 설명이 먼저다.
그것이 자신의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기고 하다. 그렇지 못하다면 시중의 말대로 도의회에 앙갚음하기 위한 보복심리로 도의회를 음해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영역에서 도지사의 말은 절제와 신뢰의 언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을 할 때와 침묵할 때를 가릴 줄 알고 자기 말에 책임을 질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인 것이다.

부패관리 축출로 국민의 공직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던 미국 30대 대통령이었던 캘빈 쿨러지는 대단히 과묵한 편이었다고 한다.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말이 없는가”
“ 하지 않는 말에 대해서는 변명이나 해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교훈을 일찍이 배웠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대답이었다.
원희룡 지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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