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0년도 초까지도 "조선적"을 그대로 보유한 재일외국인 정주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을 신봉하는 조총련에서는 민족허무주의자, 반조직분자라고 지탄을 받는 한편 조총련과 대립하는 민단에서는 반한(反韓)분자, 북한 찬양자라고 불리며 기피 대상이 되었습니다."

" 1998년 10월, 한국 입국을 허가하는 임시 여권을 발급받아 무려 49년만에야 잡초가 무성한 부모님의 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5.18민주화운동의 주모자로 전두환 군사정권으로부터 사형을 선고 받은 김대중 선생의 대통령 당선과 이를 가능하게 한 민주화 투쟁의 승리 덕분입니다."

2014년 12월 25일 저녁 6시 30분, 킨테쓰(近鐵) 나라(奈良) 이코마(生駒)역에서 김시종(金時鐘.86)시인과 카와세 슌지(川瀬 俊治.66) 저널리스트와 필자가 만났다.

역 바로 부근의 선술집에서 김시종 시인께서 정성 들여 서명해 주신 시집 <광주시편>을 카와세 씨와 필자는 받았고 그곳에서 셋이서 출판기념회 겸 송년회를 오붓하게 갖었다.

첫머리의 글은 이 날 받은 시집 <광주시편>의 "한국어판 광주시집 간행에 부치는 글"에서 김시종 시인 스스로가 쓴 글 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그렇다. 북한과 조총련을 신봉하다가 그 허구성에 신랄한 비판을 서슴치 않다가 반조직분자라고 낙인 찍힌 김시종 시인에 대한 조총련의 시선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민단에서의 시선은 많이 희석됐지만 긍정적인 시선만은 아니다. 필자가 민단 이쿠노(生野) 남지부 의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김시종 시인의 49년만의 부모 묘소를 동행한 필자로서는 첫머리 글이 그 당시의 많은 기억의 편린들을 다시 모닥불처럼 타오르게 하면서 책장을 넘기게 했다.

"나의 일본어는 독자에게조차 알면서 어려움을 강요하는 거칠고 어색한 언어입니다." 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김시종 시인의 일본어는 일본 문단에서도 "또 하나의 일본어"라고 불리울 정도로 독특하다.

"1984년 문화예술총연합회(문예총) 사무국에서 <광주시편>을 번역 출간을 위해 힘써주신 바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어가 너무 까다로워 끝내 우리말로 옮기질 못해 30여년이 지났습니다."

"광주항쟁 30주년을 맞이하기 1년전인 2009년 제주 4.3연구소장이었던 김창후(金昌厚) 씨로부터 5.18기념재단에서 번역 출판하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 문예총 사무국의 전례도 있고 하여 "아마도 꽤 힘든 일이 되지 않을까요? 하고 말했었습니다.
짐작한 대로 이 시집의 번역 출간은 퍽 고생스러운 작업이었던 듯 합니다. 김창후 씨의 연락을 받은 지도 4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자심했을까요. 그런대로 포기하지 않고 졸저 <광주시편>의 번역 출판에 애써 주신 관계자 여러분과 번역을 맡아 주신 김정례(金貞禮) 교수(전남대학교 일문학과)에게 심심한 사의와 경의를 표합니다."

일반적 의미에서 표현되는 외국어 작품도 번역할 때에는 많은 의역이 필요한데 "또 하나의 일본어"라는 김시종 시인의 <광주시편>이 많은 우여곡절 속에 금년 12월에 <도서출판 푸른역사>에서 펴냈다.

번역 시집 <광주시편>에는 3부로 나눠진 21편의 작품이 게재되었는데 그 속에서 4편을 소개한다.

흐트러져 펄럭이는

펄럭이고 있다.
하이얀 만장이 한줄기
스산한 구름 가득한 하늘을 휘저으며 울리고 있다.
펄럭펄럭 몸을 비틀고서는
중천을 팽팽 치달으며
쥐어짜내는 목소리 다하도록 몸부림치고 있다.
비틀렸다가는 치켜 오르고
휘어졌는가 하면 넘실대며
펄럭이고 있다.
부딪히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슬픔과 분노의 욱신거림을
천공天空에 빛바래며 펄럭이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더 흘러가고 나면
세상은 바람에 나부껴 갈 섯인가.
날이 갈수록 눈眼 저 안쪽에서
흐트러져 있는 것은 기억의 떨림이다.
무수한 털을 망막에 휘감고
털끝이 안와眼窩에서
허공을 소용들이쳐서 퍼져 간다.
다다를 수 없는 거리의 깊이를
시간이, 시간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부껴 간다.
이제는 무엇 하나 보아낼 것 없는 눈에
누가 올렸는가 만장 하나
팽팽 펄럭펄럭
하늘 끝 한 점을 뒤틀리며 펄럭이고 있다.


짙은 원색의 만장 한장의 흐늘거림은 영혼의 몸부림이다. 필자는 광주에서 그것을 목격했고 체험했다.

1990년 9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제1회 광주 비엔날레가 개최되었다. 이때에 아시아나항공이 오사카 칸사이공항과 광주노선이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오사카 민단본부에서는 이것을 기념하여 광주 비엔날레 참가를 겸한 연수가 있었서 필자도 갔었다.
비엔날레 개최 기념공연에서 일본에서 왔다니까 옆에 있던 광주 중년 아주머니가 반갑다면서 감 한개를 주길래 고맙다면서 깨뭄과 동시에 앞니가 부러지고 말았다.

필자는 공연행사와 비엔날레회장을 둘러보고 민단 연수단이 가는 전남 영암군 왕인박사 유적지 탐방은 포기하고 혼자서 바로 치과의원으로 갔다. 부러진 앞니를 응급조치로 덧씨우고 나서 <망월동 5.18묘역>을 찾아갔다.

한장의 만장이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묘역까지 가는 길가에는 셀 수없을 정도의 만장이 펄럭이고 있었다. 비틀렸다가는 치켜 오르고/휘어졌는가 하면 넘실대며/펄럭이고 있다./부딪히고 있다./언제 끝날지 모르는 슬픔과 분노의 욱신거림을/천공에 빛바래며 펄럭이고 있다./ 그후에 필자는 광주에 가보지를 못 했다. 그 당시 일이 이 시와 오버랩되면서 그 감을 준 아주머니에게 감사드리고 있다.

바래지는 시간 속

거기에는 언제나 내가 없다.
있어도 상관없을 만큼
주위는 나를 감싸고 평온하다.
일은 언제나 내가 없을 때 터지고
나는 나 자산이어야 할 때를 그저 헛되이 보내고만 있다.
누군가가 속인다는 것도 아니다.
잠깐 눈을 돌린 순간
시곗바늘은 째깍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버린다.
그 내리깐 시선의 괘종시계의
시치미 뗀 초침 속에서 말이다.
덕분에 밤은 탁한 늪이다.
웅크리는 것만이 안식인 듯한
실러캔스의 선잡이다.
잠들어 버리면 시대도 끝나겠지.
끝난 시대에 가로누워서
깨어 있고도 싶은 잠이겠지.
남겨져서인가.
놓쳐 버려서인가.
무얼 본달 것도 없이 눈이 그냥 깜빡이고 있고
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나 자신이다.
유백색 乳白色어둠을 드리우고
단숨에 시간이 바래져 간다.
웬지 그것만 보인다.
번데기가 보는 저 빛바랜 세계가 배어 나온다.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이 껍질 속이다.
그 뜨거운 햇살의 난무 속에 부화한 것은
나비였던가.
나방이었던가.
기억도 못 할 만큼 계절을 먹어치우고
터져 나왔던 여름의 내가 없다.
광주는 진달래로 타오르는 우렁찬 피의 절규이다.
눈꺼풀 안쪽도 멍해질 때는 하얗다.
36년을 거듭하고서도
아직도 나의 시간은 나를 두고 간다.
저 멀리 내가 스쳐 지났던 자리에서만
시간은 활활 불꽃을 돋우며 흘러내리고 있다.

역자 주에서 <실러캔스>는 고생대에 살았던 어류. 6백만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되면서 "살아 있는 화석"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36년>은 일제시대라고 설명하고 있다.

같은 역사시대에 살면서도 "역사의 현장"에는 있지 못 하고 조감도처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우리들의 일상과 인생에는 허다하다.

거기에는 언제나 내가 없다./잠깐 눈을 돌린 순간 시곗바늘은 째깍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버린다,/
그 내리깐 시선의 괘종시계의/시치미 뗀 초침 소리 속에서 말이다./

시계는 많은 톱니가 맞물려서 공정성을 갖고 정확히 때를 알린다. 그러나 시곗바늘은 째깍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버린다. 이것은 시계가 아니다. 고장 난 시계는 더욱 아니다. 인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없는 나는 어쩔 수없는 나는 <나는 나 자신이어야 할 때를 그저 헛되이 보내고만 있다.>

이 깊은 하늘의 바닥을

도시에는 얼룩무늬 군복이 넘쳐나고
거리에는 사람 그림자도 없다.
올 날이 온 것이가
올 날이 간 것인가
새빨갛게 비슴듬히 깔아 놓은
보도 위에도 올 날은 오는가.
아무도 보지 않았으리라.
도시가 통째로 멈춘 바람의 끝은.
푸른 이파리 그대로 시들어 있는
나무의 신음은 들을 수 없었으리라.
올 날이 온 것인가
올 날이 간 것인가
끊긴 절규에 펄럭이며
날은 바람이 건너고라도 있는가.

굳게 닫힌 교문은 총검에 거스러미가 일고
창문은 겹겹 덩굴풀로 뒤덮혀 있다.
종말이 온 것인가
시작되는 종말인가
찌르고 쑤시고 짓이긴 살덩이 속에도
계절은 다시 돌아와서 빛은 내려쬐는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리라.
나라를 통째로 묻어 버린 자유이니.
시신이 눈을 치뜬 광경 따위
아무의 눈에도 비치지 않으리라.
올 날은 왔는가
올 날에 갔었던가
그날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날이 있을까.
바라다 볼 시계視界 따위 없는 골목에
창문이 열리고 기와가 젖어 있다.
도시가 온통 잠겨서 가라앉아 있다면
어디가 바다이고, 지평이 어디인가.
이 깊은 하늘의 바닥을
무엇이, 무엇이, 끝내 숨지 못한 무엇이
이다지도 비바람치고 욱신거리는가.
짙은 회색의 눈에 늦은 아침을 물들여서
흔들린달 것도 없이 휘어져 있는
거미집의, 붉은
꽃잎
하나.

올 날이 온 것인가/올 날이 간 것인가/종말이 온 것인가/시작되는 종말인가/올 날은 왔는가/올 날에 갔었던가/

올 날이 온 건지, 간 건지, 종 말이 온 건지, 시작되는 종말인지 겉잡을 수 없다. 동일어의 진행형과 과거형을 되풀이하면서 현실을 직시하지만 <무엇이, 무엇이, 끝내 숨지 못한 무엇이/이다지도 비바람 치고 욱신거리는가./아무에게도 푸른 이파리 그대로 시들어 있는/나무의 신음은 들을 수 없으리라/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리라/던 역사의 잔상들이 그곳에는 있었다.

마음에게

그것은 그냥 펄럭임에 지나지 않으리.
스쳐 지나가는 시간이 몸부림칠 뿐인
허공을 뒤집어쓴 깃발인 것이리.
아무리 시대가 나부끼고 있다 하더라도
시대를 헷갈리게 하는 재신의 깃발
아무도 너를 우러러보지는 않으리.
흩뜨린 언어 조각의 평화나
요란한 풍압이 쓰러트린
풀숲의 화해로는
말 한마디의 소원도 없애도록.
암기했던 것도 입술에 얼어붙고
위로마저도 계속 짓밟히리.
지뢰가 옥죄는 황토 위에서는
의좋게 지내도 사랑은 아닌 것이다.
내가 나를 넘쳐 나지 않는 한
마음은 마음을 고갈시켜 가리라.
참고 견딘 것조차 기가 막혀서
기다리는 일도 없애 버려야지.
무심한 날들의 시간 속을
그래도 통곡은 흐르는 것임을
넘쳐서 지금을 가득 넘치게 하지 않으면
자비도 용기도 뒤엉킬 쭌이다.
미래보다 더 오래
지금의 지금을 무르녹아 있으리.
설령 그것이 하나밖에 없는 힘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시간을 훔쳐서 펄럭이고 있는 것.
멈추지 않은 시간을 울고 웃는
많은 생명과 같은 순간을 흘러가고 있는 것.
이윽고 사라져가리
그날도 해는 창을 비추고
엷은 접시꽃 꽃잎을 흔들고
바람은 정원을 지나가고 있으리.
애석하게 여기지 않으면 이 세상에 그 무엇이 남을까.
높은 벽과
강철 바퀴와
총구에 거스러미 지는 도시 속에서는
애석하게 여겨 줄 그 누구도 너에게는 없으리.
끊임없는 시간의 끊임없는 시선에 움츠려서
그것은 단지 지금을 스쳐 지나가는 한때의 그림자이리.


지뢰가 옥죄는 황토 위에서는/의좋게 지내도 사랑은 아닌 것이다./내가 나를 넘쳐나지 않는 한/마음은 마음을 고갈시켜 가리라./

협의와 타협도 공존, 공생도 일방적이라면 그것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총구에 거스러미 지는 도시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은 단지 지금을 스쳐 지나가는 한때의 그림자이리라"로서 끝맺고 있다.

번역 시집 <광주시편>에는 일본어 원문과 시인이며 소설가인 미키 타쿠(三木 卓) 씨의 당시 해설과(1983년) 김시종 시인의 후기 및 김시종 시인 연보가 게재되었다.

이 기회에 김시종 시인에 대해서 필자가 지금까지 제주투데이에 쓴 것을 참고로 첨부한다.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060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801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053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009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51076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36300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