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회다 뭐다하며 각종 모임이 많은 때입니다. 식사를 함께하며 친목과 우정을 다지는 만남들인 것입니다.
이런 모임에서는 의례 술잔을 높이 들고 건배사나 건배구호를 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짧지만 톡톡 튀고 기발한 건배 구호는 자리를 더욱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자양분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랑과 우정과 건강과 행복 등등을 패러디 한 건배 구호는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의미 또한 심장(深長)합니다.

가령 “사랑과 우정을 나누자“를 줄여 말하는 ‘사우나’, ‘사랑을 이 잔에 다 담아서’의 ‘사이다’, ‘나라와 가정과 자신을 위하여’의 ‘나가자’,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의 ‘개나발’ 등등도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항복 합시다”도 ‘항상 행복 합시다’의 축약 구호입니다.
“항복하자”는 건배 구호를 들으면서 문득 ‘행복의 조건’이 오버랩 되어 왔습니다.

항복(降伏)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와의 싸움에서 진 것을 인정하여 굴복하는 것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자신을 낮춰 복종하는 마음이라 했습니다.

굴복이든 복종이든 모두 자신을 비우는 작업인 것입니다. 전쟁에서는 자신이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종교적 가르침에서는 ‘한없이 낮은 자세의 겸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여기서 고단한 삶의 경험에서 터득한 제주 어머니들, 제주할머니들의 생활의 지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짐이 이김이여”,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삶의 무게로 다가서는 심오하고 고결한 가르침은 문맹(文盲)의 어머니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 빚어낸 것이라 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공을 뛰어넘어 우렁우렁 징소리 같은 울림으로 가슴에 새겨지는 가르침입니다.

언제나 존경해 마지않는 선배는 조손(祖孫)가정 출신입니다. 지금은 훌륭한 지역사회 원로 지도층 인사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짐이 이김’라는 할머니의 가르침을 갈등과 분열해소의 금과옥조(金科玉條)교훈으로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를 차용한다면 ‘항복’은 지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지만 ‘항복’은 결국 이기는 게임인 것입니다.

“항복 합시다”의 건배구호에서 ‘항복’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논리의 비약일까요?.
물론 “웃어 보자‘고 하는 건배구호를 ’행복의 조건‘으로 억지 부리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돈일까요?, 명예일까요?, 권력일까요?, 건강일까요?, 사람에 따라 이런 것들을 행복이거나 또는 행복의 조건이라고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런 것을 다 차지한 사람을 ‘진짜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울 수 있는 근거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또 다른 욕심이나 욕망을 추구하고 그것이 불안으로 작용하여 불행의 씨앗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가진 자, 힘 있는 자, 건강한 자가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달리 말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는 역설의 논리나 다름없습니다.
행복과 불행은 물질세계의 문제가 아니고 정신세계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 행복이란 욕망의 추구나 실현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인한 마음의 안정과 평화라 고 했습니다.
영혼의 온전한 상태를 통해 마음의 기쁨과 만족을 얻는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정신과 의사인 ‘하워드 커틀러’와 나눈 ‘행복에 대한 토론’을 엮은 ‘행복론’에서 “마음의 수행을 통해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버리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이들을 볼 때 항상 긍정적으로 보며 늘 나와 공통된것,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들을 발견하면 늘 행복하고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칸트도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렇습니다. 모든 욕심에서, 모든 집착에서, 모든 고집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항복한다면 행복해 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 행복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 말씀에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롭고 목마른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박해받는 사람’들이 참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아닐까요?.

말장난을 해보자면 술자리 건배구호에서 빌어다 쓰는 ‘항복’은 ‘행복의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입니다.
‘행복’에서 선(l) 하나를 빼면 ‘항복’이 되고 항복에서 선(l) 하나를 세우면 바로 행복인 것입니다.

오늘 “항복합시다(항상 행복 합시다)”를 인용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지난 연말 이른바 ‘예산 전쟁’으로 도민들을 성나게 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이 분명한 원희룡 지사와 구성지 도의장에게 ‘항복하고도 이기는 전쟁’, ‘지고도 이기는 게임’을 하라고 충고하고자 함입니다.

지난해의 앙앙불락(怏怏不樂)을 겸손하게 다스리고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하고 화해를 해야 합니다.
“짐이 이김이여”, 원희룡 지사가 그토록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어머니 제주‘를 생각한다면 제주 어머니들의 삶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가르침을 외면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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