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교수는 재단이사장과 총장을 상대로 힘겹고 지리한 싸움을 시작했다

투쟁의 서막 

을미년 새해가 밝으며 처음 맞는 월요일. 유별나게 추웠던 겨울날씨치고는 제법 화창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날의 봄날 같은 날씨가 총장과 재단을 상대로 힘겹고 지리한 싸움을 시작한 음악과 강 교수에게는 오히려 무심한 세상의 인심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다.

머지않아 저 멀리 한라산에 새하얀 잔설이 녹아가고 그 자리에 대신 파릇한 새싹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면 그는 교내에서 시위를 할 수가 없다. 더 이상 이 대학의 교수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봄을 그냥 맞을 수는 없다. 무력한 봄을 온 몸으로 막아서는 그의 학내 투쟁에는 30년 이상 교직을 긍지로 지켜온 그에게 일생일대의 의미와 가치가 걸려있다.
 
이날 아침 그는 본관 앞에서는 처음으로 피켓 시위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총장의 출근 시간에 맞춰 일인 시위를 계획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총장은 매주 월요일마다 열리는 보직회의도 취소한 채 오전에 출근하지 않았다. 다소 맥이 풀린 것처럼 보이던 그에게 한 지상파 TV방송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강 교수의 재임용탈락과 관련해 취재를 하겠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지난 5일 한 지상파  TV방송과 인터뷰를 가졌다

TV방송 인터뷰

강 교수는 TV방송 인터뷰에서 대략 세 가지 이유를 근거로 재임용탈락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교수협의회 대표의장을 맡은데 대한 보복성조치라는 것과 업적평가가 주관적이라는 점, 그리고 그의 연주회 실적이 업적점수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총장은 작년 강 교수에 대한 종합평가에서 20점 만점에 단 4점을 줌으로써 그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그는 대학당국에 총장 채점의 근거를 밝히라고 정보공개 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또 연주회를 사전에 총장의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 모든 교수들의 논문들을 총장의 결재를 받아 써야 한다는 말이냐”며 “세계 어느 대학에서도 이렇게 하는 곳은 없다”고 강변했다. 
 
TV 인터뷰를 마친 후 강 교수는 마음이 후련했다. 처음 출연한 방송에서 떨지 않고 비교적 차분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성공적으로 끝마쳤기 때문이리라. 그의 주장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상식적인데다 감성에 호소하는 힘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날 저녁 자신의 인터뷰를 다룬 지역뉴스가 방영되는 것을 보고서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보통 이런 경우 뉴스의 꼭지 끝머리에 반대 측의 주장도 함께 개진하는 관례를 알고는 있었지만, 학교 측 반론이 너무나 얼토당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한라대학 측의 반론 

제주한라대학은 그동안 입시부정과 교비횡령 같은 큼직한 비리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언론의 반론 요청을 무시하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총장과 이사장에게 책임이 있는 문제들이라도 기자들의 난처한 질문에 답변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보직교수들의 몫이었다. 이에 대한 그들의 대처방식은 간단했다. 취재요청을 기피하거나 전화 자체를 아예 받지 않는 것이다.
 
족벌체제의 이 대학에서 그들이 답변할 권한이 없기도 하거니와 답변할 면목조차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설사 당장의 답변을 기피해도 아무런 후탈이 없는 제주도의 특유한 분위기를 이미 간파하고 그럴지도 모른다. 처음엔 떠들썩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지나가는 우리들의 이른바 ‘냄비’ 여론 말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여론의 수세에 몰린 이 대학은 대담하게 총장의 최측근 교수를 출연시켜 강 교수의 주장을 일거에 반박했다. 제주한라대의 반박의 요지는 업적평가가 모든 교수들에게 공평하며, 따라서 괘씸죄가 적용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교협교수들 중 승진한 교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는 식으로 말했다.

 

억지 논리 

하지만 대학 측 반론은 기자가 얼핏 생각하기에도 억지춘향 식 논리에 가까웠다. 여러 다양한 학과들이 있는데 단일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괘씸죄가 아니라면 총장이 주관적으로 채점한 근거에 대해 대학은 왜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 것인지.
 
강 교수는 이번에 교협 교수의 승진마저도 학교 입사 후 20년 만에 겨우 부교수로 올라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대학들에서는 입사 5년만 되면 승진한다는 부교수를 말이다. 그것도 학문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4년제 대학 교수들도 수년 동안 한 편도 쓸까 말까한 그 어렵다는 미국공인학술지(SCI) 급 논문을 매년 여러 차례 연속으로 발표한 결과란다.

대학 측의 반론에 해당 교협교수는 “제 승진이 다른 교수의 목을 자르는데 악용된다면 기꺼이 승진을 반납하겠다”며 울분을 삼키지 못했다.

“성과에 비해 보상은 인색하고 과실에 비해 징벌은 지나치다”는 이 대학에서 강 교수의 해직은 어쩌면 결국 터져야 할 일이 터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간만에 부교수 승진은 다른 대학 교수들에게는 웃을 일이지만 이 대학의 교수들에게는 대단히 축하할 만한 일일 것이다. 30년 이상 장기 근무한 교수들이 한 번도 승진하지 못한 채 정년퇴직을 하는 이 대학의 현실을 보면 승진은 “가뭄에 콩이 난” 기적이기 때문이다.

절묘한 한 수

이 대학은 물론 이번 강 교수의 반발을 미리 예상하고 교협교수를 승진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규정상 어쩔 수 없이 승진시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협교수의 승진을 이용해 교협의장의 주장을 반박한 것은 “문제의 본질에 물을 타는데” 기막힌 묘수임이 분명했다.

 

방송취재를 마친 후 강 교수는 양손에 “총장과 재단이사장은 퇴진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본관건물 앞에서 홀로 시위를 개시했다. 거의 모든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는 한국음악협회 제주지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제주예총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가 시위 피켓 대신 클라리넷과 색소폰 그리고 오카리나를 집어 들고 학생들과 어우러져 사랑의 하모니를 교정에 울려 퍼지게 할 평화로운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그것이 강 경수 교수에겐 진정한 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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