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다. 할퀴고 꼬집고 치고받던 서로의 몰골이 그렇다. 얼굴만이 아니다. 마음 또한 멍들고 상처투성일 터이다.

도와 도의회 간의 예산 전쟁 이야기다. 후유증이 길듯 하다.

이긴 쪽은 없다. 양쪽이 졌다. 그것도 도민들로부터 손가락질과 야유와 험한 욕을 바가지로 뒤집어 쓴 상처뿐인 패자의 모습들이다.

이렇게 둘 다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모양새가 엉망진창으로 되고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듯하다. 겉보기로는 그러하다.

구성지 의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9일 오후 제326회 임시회 개회사를 통해서다.

“예산 문제로 도민들에게 더 이상의 걱정을 드리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정에 다가가 손을 내민다”고 했다.

“조기 추경’을 통해 실타래를 풀어가자“는 제안이었다. 진정성이 엿보이는 발언으로 들린다.
이에 대해 도당국도 “조기 추경 협의를 시작 하겠다”고 화답했다.

일단은 ‘조기 추경’으로 도와 의회는 예산 갈등 해소의 물꼬를 튼 셈이다.

그러나 ‘조기 추경’은 너덜너덜 상처뿐인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국면전환용 미봉책으로 끝날 수도 있다. 더 큰 블랙홀이 입을 벌리고 있을 수도 있다. 두 기관의 관계를 미심쩍게 보는 이들의 시각이그렇다.

이미 도와 도의회 간 ‘예산전쟁‘은 전국적 구경거리가 됐다.

원희룡지사가 ‘도와 도의회 사이의 예산관련 치부’를 발가벗겨 버렸기 때문이다.

전국시청권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도의회를 개혁 대상의 부도덕 한 집단으로 매도’해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사실 관계가 분명치 않고 해석에 따라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는, 그래서 상대를 인정한다면 덮어두는 것이 예의 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데도 수고스럽게도 지사의 ‘부끄러운 전국 라디오 방송 홍보(?)’로 제주도의회가 우습게 돼버렸다.
지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제주도의회만 하루아침에 ’막가파식 예산 파행‘의 주범이 돼버린 꼴이다.

또 있다. 도와 도의회 간 예산 전쟁은 또 다른 전국적 이슈가 됐다.

행자부가 2015년 제주특별자치도 예산 편성 관련 ‘긴급 재정운영 실태 조사’를 실시 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예산 편성과 관련, 정부가 개입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도에 대한 실태조사지만 ‘과녁은 도의회’라는 시각이 많다. 도의회 압박용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뒷말이 많다. 하나는 “행자부가 제주도와 도의회를 업신여기고 통제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다른 하나는 “제주도가 행자부와 은밀한 고리를 형성하여 도의회를 궁지로 몰려는 것”이라는 음모론이다.

우선 행자부의 ‘긴급 재정운영실태 조사’ 진행 과정이 석연치 않다.
실태조사가 이뤄진 시점과 진행과정, 전격성 등이 행자부와 도 사이에 은밀한 커넥션이 이뤄졌을 개연성을 짙게 했다.

행자부는 6일 “2015년도 제주도 예산편성 실태 파악을 위해 ‘긴급 재정운영 실태 조사단’을 구성, 현장 조사에 나선다”는 내용을 보도 자료를 통해 밝혔다. 그것도 “즉시 보도해 달라”는 주문까지 달아서다.

준예산을 편성하지 않으려 예산을 삭감하고 의결한 도의회의 예산 심의 의결이 그렇게 긴급을 요하는 사안인가. 선뜩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설령 백번 양보해서 긴급을 요하는 사안이라도 그렇다. 긴급히 조사 할 필요가 있다면 조용히 빨리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조치하거나 개선하면 될 일이었다.

군사작전 하듯 속도전을 펼치며 보도 자료를 통해 자랑할 사안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즉시 보도해 달라”는 주문과 함께 보도 자료를 냈다면 행자부가 언론 보도 시점까지 간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도의 취사선택이나 보도 시점은 언론사의 고유권한이자 자유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정황은 ‘실태조사 계획 수립 시행’ 시점에 관한 의문이다.

6일은 원지사와 정재근 행자부 차관의 비공개 면담이 이뤄진 날이다.

면담 당일 전격적으로 실태조사 계획이 수립됐고 시행됐다는 사실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기‘의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 것인가.

“행자부가 스스로 입안한 계획이 아니라 제주도의 요청에 의해 이뤄 진 것“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자치사무와 관련 ‘조사 점검 확인 분석 검증하고 그 결과를 처리하는 행위는 도 감사위원회 사무’다. 제주특별법 66조에 있는 명문 규정이다.

그렇다면 제주도 예산 편성관련 재정운영 실태 조사도 도 감사위원회 권한이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행자부의 실태조사는 제주특별법을 무력화 하고 도 감사위원회의 기능을 무시하고 짓밟은 월권행위나 다름없다.

행자부가 제주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다른 시도의 같은 경우라도 이렇게 했을 것인가.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를 우습게 여기고 깔보는 것이라는 도민 적 분노가 담즙처럼 차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자부든 제주도든 도의회의 예산 심의 의결권을 제약하거나 간섭·통제의 수단으로 ‘실태 조사’라는 가면을 쓴 것이라면 이는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훼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도 아니 되고 그럴 리가 없지만 이번 행자부의 실태조사와 관련, 원지사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다면 심상히 넘길 일이 아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옹졸한 고집에 사로잡혀 의회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보복 심리에서 비롯됐다면 더 더욱 큰일이 아닐 수없다.

이 같은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실태조사와 관련 도의 명쾌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는 대의 민주체제다. 사람의 판단과 주장에 항상 독선과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아래 의회와 집행부가 서로 견제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루어 공동선을 이룩하자는 제도적 장치다.

그러기에 정치적 완승주의에는 상생이 발붙일 틈이 없다. 상생의 기본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며 민생의 소리에 귀기우리는 것이다.

이번 도와 도의회의 예산 갈등이나 파행도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서 비롯됐다.
겉으로는 상생을 부르짖으면서 속으로는 상극의 칼을 벼리고 있다면 시대적 사회적 비극만 낳을 뿐이다.

도든 의회든 지금까지의 모든 나쁜 감정을 태워버리고 마음을 열고 상대에게 다가서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모든 옵션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머리를 맞대고 얽힌 실타래를 한 올씩 풀어간다면 얽히고설킨 서로의 갈등도 풀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산문제도 그렇게 풀길 바랄 뿐이다. 도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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