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연구원
지난해 말부터 계속된 제주도와 의회와의 예산 논쟁.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원희룡 지사는 “기네스북에 나올 예산 삭감”이라고 비판했다. 제주도는 응급예산을 편성하겠다며 토론회와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도의회는 이런 도의 태도에 대해 ‘의회를 흠집 내기 위한 것이다.’, ‘심의권에 대한 도전이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원희룡 지사의 “기네스북에 나올 예산 삭감”이라는 발언 후에 도의 대응은 도민설문조사, 도민 토론회 등 발 빠르게 진행되었다.

예산 정국을 이해하기 위해서 원희룡 지사의 “기네스북에 나올 예산 삭감”이라는 말의 행간, 그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기네스북에 나올 예산 삭감”이라는 용어가 적절한 것인지를 확인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이 아니다. 이 발언은 지난 3일 정례직원조회에서 나왔다.

추경예산에 대해 언급하면서 원희룡 지사는 “1636억원이라는 기네스북에 나올 예산을 삭감하면서 민생피해와 행정피해를 어떻게 복구할 것이냐 하는 전무후무한 추경예산”이라고 도의회를 비판했다.

발언이 있고 난 직후 도의회에서는 경기도의 예산삭감액이 6700억 원이 된다며 제주도의 의도적 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그만큼 많이 삭감됐다, 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나온 발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발언의 파장이 크다. 그리고 발언 이후 제주도가 도민 설문조사, 토론회 등 응급예산 추경편성이라는 카드를 통해 도의회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단순히 삭감규모가 많다, 라는 것을 비유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다.

예산삭감과 관련해서 제주도는 도민의 피해가 클 것이다, 라는 점을 강조한다. 응급예산 편성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하지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예산 삭감이라고 하면 관련 예산이 없어진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데 도의회는 삭감된 예산을 내부유보금으로 돌려놓았다.

내부유보금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예산 항목은 없지만 제주도가 필요에 따라 예산을 편성하면 쓸 수 있는 돈이다. 올해 제주도 예산이 3조 8천억 원이다. 제주도의 논리라면 이렇다. 1630억 원이 삭감됐으니 제주도 예산액은 그만큼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삭감된 금액은 내부유보금으로 되어있다. 예산 항목은 없지만 필요에 따라 편성하고 심의 절차를 받으면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제주도의 주장 중 하나는 예산삭감이 되면서 제주도는 도민들의 피해가 크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물론 피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비 매칭 사업, 법정경비 등 삭감된 부분이 있다. 제주도의회는 제주도가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 꼭 필요한 예산이 있다고 한다면 추경에 편성해서 심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주도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민간단체의 경우(일부 보훈단체가 이에 해당한다.) 피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예산은 10건 3억4800만원에 불과하다. 이것은 제주도의 발표 자료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면 제주도민의 피해가 크다, 라고 하는 원희룡 지사의 발언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이번 사안을 명확히 따져봐야 한다. 도민들이 제주도와 의회에 주문하는 것은 제발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힘을 합치고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사사건건 싸우는 것이 볼썽사납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모두 잘못이 있다고 말한다. 양비론이다. 갈등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이런 양비론은 커질 것이다. 양비론이 계속되면 결국 도민들은 정치적 무관심도 커진다.

그러면 이제 따져봐야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누가 이득을 보는지. 제주도가 제주도의회와 갈등을 빚은 직후 언론보도 빈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희룡 지사 취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예산 대립이 시작된 지난 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기간별로 나눠보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사통합검색 시스템 카인즈에서 2014년 7월 1일부터 2월 6일까지 원희룡 지사를 키워드로 검색해 봤다. 검색대상은 전국종합일간지로 한정했다. 지난해 7월부터 518건의 기사가 검색되었다. 예산협치 논란이 시작된 직후부터는 166건의 기사가 검색되었다. 전체 기사 중 예산 갈등이 시작된 이후의 기사가 32%정도였다.

그런데 여기서 검색 키워드를 예산 문제로 한정하면 통계가 다소 달라진다.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전체 기사는 72건이다. 예산 갈등이 시작된 10월부터는 34건이다. 전체의 47% 수준이다. 예산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에서 원희룡 지사를 언급하는 빈도수가 증가한 것이다.

도의회와의 갈등이 계속되면서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기 때문 아닌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기사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시사인>이라는 비교적 진보적인 매체의 기사다.

“지난해 10월 제주도의회가 의원 1인당 재량사업비로 20억원씩 책정해달라고 제주도 측에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주민 숙원사업비’로 불리는 재량사업비는 지방의원의 지역구 관리용 사업비다. 지역구에 마을회관을 짓거나 도로를 닦는 소규모 선심성 사업이 이 돈으로 이뤄진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제주의 경우 그동안 도의원 1인당 3억~5억원 정도 사업비를 책정해왔다. 그런데 도의회가 이를 대폭 올려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제주도의원 41명에게 각각 20억원씩이면 820억원에 이른다.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와 의회 간에 갈등이 깊어갔다.”

기사의 논조는 크게 괸당으로 대표되는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개혁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원희룡 지사라는 인식이다. 전형적인 중앙 언론의 시각이다.

예산 갈등이 시작되면서 원희룡 지사는 예산개혁을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도의회를 압박했다. 이것은 결국 도의회를 반개혁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제주도의회로서는 원희룡 지사의 이런 태도가 불만일 수밖에 없다. 결국 갈등을 집안 싸움이 아니라 전국적인 이슈로 만든 것은 원희룡 지사 자신이다.

도민들로서는 이런 갈등이 하루속히 마무리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갈등은 쉽게 봉합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희룡 지사가 제주도의회와 대화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본인은 스스로 의회주의라고 했다. 하지만 의회와의 대화는 실종됐다.

원희룡 지사가 내세우는 예산 개혁의 명분부터 살펴보자. 지난해 9월 원희룡 지사는 국회 예산 시스템을 살펴보고 제주에서도 예산 개혁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한마디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원희룡 지사는 3선 국회의원이다. 3선 국회의원이 국회의 예산 심의 시스템을 지난해 9월에서야 알았다. 정말 그랬다면 원희룡 지사는 국회의원으로서는 무능한 국회의원이었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이다.

제주도의회가 원희룡 지사의 발언 하나하나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사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판을 키우고 논란을 확대하는 것. 그렇게 해서 전국적인 이슈를 만들고 스스로를 개혁적인 색채로 입히고 싶은 것. 바로 이것이 원희룡 지사의 속내이다. 지방 토호세력과 맞서는 개혁 전도사. 이것만큼 중앙 언론의 시각에서 구미가 당기는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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