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는 이탈리아의 전설적 바람둥이다. 그의 성적 방탕은 거침이 없었다. 미혼이나 기혼, 과부를 가릴 것 없었다.
귀족 왕족 창녀까지 닥치는 대로 여자를 만났고 섹스를 즐겼다. 그야말로 희대의 오입쟁이였다.

이렇게 그와 관계를 맺었던 여자가 132명이라고 했다. 카사노바가 자서전에서 밝힌 바다.

“즐겁게 보낸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권태로운 시간만이 낭비일 뿐이다”. 그가 남겨 전해지는 섹스 어록은 쾌락주의 난봉꾼의 진면목을 어림할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최근 형법상 간통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후 각계 각층의 반응이 엇갈리는 등 사회적 설왕설래에 접하면서 떠오르는 역사속의 인물이 하필이면 카사노바였다.

지극히 즉흥적이고 단순한 생각으로는 ‘한국형 카사노바 족’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우며 설칠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된 연상인물이다.
헌재의 결정을 마뜩찮게 여기는 입장에서는 ‘불륜을 합법화 하자’는 ‘성 윤리 해체 결정’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헌재는 ‘간통죄는 과잉금지 원칙에 반해 국민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헌법에 위반한다’고 했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무엇인가. 법조 주변의 설명대로라면 ‘개인이 사회적 관행이나 타인에 의해 강요받거나 지배받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지나 자율적이고 책임 있게 자신의 성적 행동을 결정하고 선택 할 권리’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단순 무식한 해석으로는 ‘내 맘대로 섹스 할 수 있는 권리’다.
사회적 불문율로서 강제되는 도덕률이나 윤리성에 구애받지 않고 꼴리는 대로 남의 배우자와 그 짓을 할 수 있는 권리라는 말이 아니던가.
이성적 절제적 인간사회에서 본능적 감각적 동물사회로의 진입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법의 판단은 공의(公義)로와야 한다. 사회적 공의(公議)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 한 일이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에서는 “간통죄가 있어야 한다”는 답변이 전체의 60.4%였다.
헌재 결정 전날 발표된 한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69.3%가 ‘간통죄 유지’에 손을 들었다.

그런데도 헌재의 결정은 이러한 국민들의 윤리적 법감정이나 정서를 무시해 버린 것이다.

시대 상황 변화와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는 일각의 ‘간통죄 위헌 결정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세계적 추세‘가 전통사회의 문화와 관습, 독특한 환경, 도덕과 윤리적 기준이나 사회적 미풍양속의 규범을 짓밟을 수는 없는 것이다.

헌재가 ‘성적 자기 결정권’이나 ‘사생활의 비밀자유 침해’를 이야기 했지만 그런 사생활의 자유로 가정해체의 고통 등 다른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는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렇다면 강간이나 성매매 등 다른 성적범죄의 제어장치도 ‘성적자기 결정권’ 등등을 이유로 풀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성윤리가 실종됐다고 한다. 타락할대로 타락했다는 소리다.
부부간 맞바꾸어 성교환을 하는 이른바 ‘스와핑’이나 집단적 그룹 섹스 등 타락한 성문화가 심심치 않게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기에 이번 헌재 결정이 가져올 사회적 가치 혼란과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고 부작용이 심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헌재 결정 후 콘돔제조업체, 피임약 제조 회사 등 성관련 산업의 소위 ‘간통죄 폐지 테마주’가 상한가를 치는 등 일제히 상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성윤리 타락상을 예고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걱정의 소리는 또 있다. 기혼자들의 외도 급증, 불건전 성산업 번성, 이혼으로 인한 가정해제 증가, 사적징벌인 보복행위로 인한 강력사건 증가 등등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부담은 ‘간통죄 위헌 결정’이 낳은 사회적 사생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종교적 엄숙주의나 기독교 사상의 근본주의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성(性)은 성(聖)스러운 것으로 이야기 되어왔다.
절제의 미덕이 아름다웠던 전통사회에서 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하는 아름답고 신성하고 존엄한 가치였다.

도덕적 성의 기준으로 ‘사랑’을 제시하고 거기서 기쁨과 행복을 생산하는 수단으로 여겨왔다. 부부간의 아름다운 사랑과 성생활을 말함이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성을 단지 쾌락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지고 있다.
고결한 정조 관념이나 순결의식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성의 상품화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이번 헌재 결정이 이런 현상에 기름을 끼얹을 것이라는 것이 헌재 결정에 비판적 그룹의 시각이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도덕적으로 퇴폐한 사회나 나라는 멸망한다는 종교적 역사적 기록은 많다.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폼페이의 멸망, 고대 중국 주(紂) 걸(桀)임금의 음탕과 타락의 결과 등이 그것이다.

이에 반해 ‘성적 정절을 가치 있게 여겼던 기간 동안 문화적으로 번창했던사회현상을 발견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문명은 억압된 성의 부산물’이라는 프로이트 학파의 주장도 이와 무관치 않다.

‘어윈’은 그의 책 ‘성과 문화(sex and culture)에서 고대 로마 등 수천년 역사를 가진 나라들의 역사에서 성적으로 타락한 국가치고 활력을 유지했던 나라는 없었다고 했다.

성적 문란과 타락이 사회멸망의 숙주로 작용한다는 설명에 다름아니다.
말초적 쾌락만을 탐닉하는 성문란 사회에 대한 엄중한 경고의 의미이기도하다.

이번 ‘간통제 폐지’라는 헌재 결정이 ‘불륜에 개의치 않는 불륜사회를 용인하는 신호’로 인식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제는 마음껏 바람을 피워도 된다”는 카사노바 적 시그널로 받아들여져서도 곤란하다.

기존에 유지됐던 간통죄는 “아직까지는 우리사회에서 존재 의의를 찾을 수 있다”며 “선량한 성도덕의 수호, 혼인과 가족제도 보장 효과가 있다”고 합헌 의견을 냈던 두 재판관의 소수의견은 국민정서상의 다수의견일수도 있다.

헌재 결정 후 성윤리 타락방지를 위한 사회적 공론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부일처주의 유지, 가족제도 보장, 가족해체 방지, 여성보호,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해 성적자기 결정권을 다소 제한할 수 있는 사회적 제어장치가 요청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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