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의 단편 「복덕방」(1937년)에는 부동산 투기에 실패해 자살하는 노인 ‘안 초시’가 등장한다. 안 초시는 동경 유학파에다 경성에서 잘 나가는 딸(안경화)을 두었다. 안 초시는 개화한 딸의 눈치만 보며 부러진 안경 다리 하나 새로 맞출 돈 타내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다. 늙어가기 전에 돈 만원(당시 화폐 기준)이라도 손에 쥐고 싶었던 안 초시는 관청에서 나온 개발 정보를 믿고 딸을 부추겨 거금을 투자하도록 한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도록 개발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큰 돈을 잃은 안 초시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복덕방」은 ‘근대’와 ‘개발’이라는 신기루를 잡으려 했던 안 초시의 비극적 죽음을 통해 20세기 초의 근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식민지의 시대에서 ‘근대’는 타락이 무한 질주하는 공간이다. 또 다른 단편에서는 ‘땅’을 팔아 병원을 새로 지으려는 아들에게 ‘땅’(농토)의 의미를 설파하는 노인(「돌다리」)이 등장한다. 이처럼 한국 문학에서 ‘땅’은 투기의 대상으로 혹은 종교적 신념의 투사체로 그려진다.

이태준이 근대의 단면을 ‘땅’을 통해 섬세하게 관찰하였다면 제주사람들에게 ‘땅’은 과연 어떤 의미였던가. 현기영과 오성찬의 소설 속에서 ‘땅’은 원초적 삶의 터전이자 제주인의 정신과 혼을 담은 그릇으로 비춰진다. 현기영의 <목마른 신들>(1992년)은 땅을 대하는 제주인의 정신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현기영은 포클레인의 삽날에 토착의 뿌리가 무참히 뽑혀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섬 하늘에 십분 간격으로 핵미사일같이 생긴 비행기들이 요란한 폭음을 터뜨리며 날아들고 섬땅엔 아스팔트 길 위로 관광객을 실은 호사한 자동차 행렬이 종횡무진 꼬리 물고 내달리는 판국인데, 어디 한갓진 구석이 남아 있어 신이 깃들 것인가. 토착의 뿌리는 무참히 뽑혀나가고 있다. 토착의 신들도, 토착의 인간들도(현기영, <목마른 신들>

토착의 신과 토착의 인간들이 해체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하는 작가 현기영의 탄식은 단지 90년대의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해방기와 한국전쟁기를 거치는 동안 제주인들은 제국주의 시대의 인종말살에 가까운 ‘절멸’의 위기에 직면했다. 중앙의 권력자들에게 제주인들은 공산주의 독균에 감염된 존재였고 휘발유를 뿌려서라도 박멸해야 할 대상이었다. 해방기와 한국전쟁기가 제주인들에게 절멸의 시대였다면 1960년대 이후는 개발의 시대였다. ‘관광제주’와 ‘낙토제주’라는 슬로건이 휘날렸고 근대에 대한 열망이 제주 사회를 뒤흔들었다. 박정희 군사 쿠데타 정권이 1964년 본격적인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을 발표했을 때 제주의 지식인들은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화답했다. 그것은 곧 근대적 발전에 대한 열망이었고 개발에 대한 환호성이었다. 1964년 부종휴는 제주신문에 ‘제주도개발과 자유화문제’라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개발만 한다면 제2의 하와이는 능히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개발에 대한 기대와 근대에 대한 열망의 근원은 빠르게 제주를 잠식했다. 1990년대의 제주도개발특별법과 2000년대의 제주국제자유도시 건설로 이어지는 일련의 개발 프로젝트는 바로 이러한 근대와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키운 것이다. 외피는 달라졌지만 그것에 대한 성찰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맹목이 되어버렸고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맹목이 된 신념은 위험하다. 성찰이 없는 발전은 위태롭다. 지금 그 위험의 징후는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브레이크 없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다.
제주대학교 정수연 교수팀은 한 토론회에서 2008년 1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주택가격매매지수 변동 폭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제주도의 가격상승률은 같은 기간 전국 상승률 19.6%를 넘어 43.07%에 달했다. 서울지역은 오히려 2.76% 하락했다. 평당 1500만원에 육박하는 아파트가 생겨나고 불과 몇 달 전 평당 400만원 땅이 이제는 800만원을 호가한다. 광풍이다.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제주도내 대졸자의 평균 임금은 전국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제주지역 근로소득자 연말정산 평균 급여액은 2536만원이다. 그야말로 숨만 쉬고 월급을 꼬박 12년 4개월 모아야 26평형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다는 거다. 정수연 교수팀도 부동산 가격 상승이 제주의 미래 세대와 직결되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부동산 거래 규모가 전체 거래 규모의 6.5%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93.5%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분석 결과를 지켜보면서 드는 우려는 이러한 진단이 중국 자본 투자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정책적 판단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통계의 함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통계는 아파트와 같은 정형화된 주택을 중심으로 한 통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실제 투자하고 있는 상가와 오피스텔에 대한 통계는 빠져 있다. 또한 제주만의 특징인 연세와 반전세 등의 상승 가격 또한 고려되지 않고 있다. 실례로 노형의 한 중개업소에서는 인근 20평 규모의 아파트 연세 가격이 120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제주에서 회원 규모가 가장 크다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중국 사람이 5억원 하는 토지를 20억원에 사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사연도 올라온다. 제주첨단 과학기지에 759세대의 타운하우스형 아파트 건설 사업이 추진된다는 보도가 나오자 아직 승인도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온갖 현란한 수사로 투자를 유혹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성행하고 있다.

제주지역 부동산 상승이 2010년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시점부터 폭등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국 자본은 제주 부동산 폭등의 발화점이다. 판을 키우고 기름을 끼얹었다. 불을 끄고 위해서는 발화의 원인을 우선 규명해야 한다.

문제의 시작은 결국 국제자유도시 추진과 이를 위한 투자유치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데 있다. 투자 유치만이 만능이라는 환상이 제주를 지배했다. 첨단과학기지 조성 과정을 들여다보자. 당초 이 지역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첨단과학기지를 조성하겠다며 개발이 시작됐다. 중산간 지역, 그리고 조망권이 좋은 지역을 개발하면서 부지를 민간 업체에 매각 했고 결국 아파트 단지가 건설될 예정이다. 헬스케어단지도, 신화역사복합공원도 마찬가지다. 대규모 매물을 내놓으며 판을 키운 것은 결국 정부와 JDC였다. 이 같은 개발 방식은 국제자유도시가 추진되면서 제주의 미개발 지역인 중산간, 곶자왈 등을 공공기관이 나서서 개발하고 투자 유치를 위해 민간에 매각하는 정형화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성찰이 필요하다. 국제자유도시 추진을 위한 현행 개발 방식이 제주 부동산 가격 상승, 그리고 중산간 난개발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책도 하나의 원인이겠지만 규제완화 위주의 국제자유도시라는 개발방식이 부동산 가격에 기름을 부었다. 따라서 국제자유도시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부동산 폭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분석은 전제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현행 개발 방식의 근본적 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대규모 투자 개발을 위주로 한, JDC의 사업 추진 방식에 메스를 들어야 한다. 해체 수준을 각오할 정도로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성찰과 반성이 없다면 모든 대책은 결국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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