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지척(咫尺)이다. 길 하나 사이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걸어서 고작 2~3분 거리다.

그 거리를 돌아 돌아 9개월 만에야 만났다. 민선 6기 도정과 제10대 도의회가 출범한 후 자리를 마련하기까지 아홉 달이나 걸렸던 것이다.

제주도와 도의회가 처음으로 가진 정책 협의회 이야기다. 26일 호후 4시부터 6시까지 도청 대강당에서 회동했다.

도에서는 원희룡 도지사와 행정부지사, 기획조정실장, 관련 실국장 등, 도의회에서는 구성지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여야교섭단체 대표 등 각각 12명씩 참석했다.

원희룡지사는 이 자리에서 “그동안 여러 현안과 관련해 다른 접근 방법으로 어려움을 겪었었지만 이제는 소통으로 풀어가자‘고 했다.

구성지의장도 “같은 곳을 향해 양쪽 모두 한발씩 물러선 자리에서 바라보면 좋은 안들이 합의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지사나 구의장 둘 다 “도민만 바라보는 행정과 의정활동을 펴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지난해 말부터 예산안 갈등을 겪으면서 표출됐던 격한 감정의 앙금이나 불신의 응어리가 없지 않다 해도 이번 도와 도의회 간 정책협의회는 그 만남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다.
지난 9개월 동안 개혁의 대상이나 타도의 대상으로 감정의 삿대질로 상처를 주고 내상을 입었던 두 기관의 망가진 몰골을 생각하면 그렇다.

“문제 사안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양측 간 치열한 토론과 뜨거운 논쟁, 얼굴 붉힐 수준까지의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서로를 치켜세우며 분위기를 부드럽고 화기애애하게 반전 시켰다”는 전언이 사실이라면 ‘성숙한 대화와 타협 기술’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

이날 ‘예산제도 개혁 협의체 구성’, ‘카지노 관리 감독강화 적극 노력’, ‘공항 인프라 확충 공동 노력’ 등의 정책협의회 합의사항 도출은 이러한 ‘대화와 타협 기술’이 만들어낸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성과는 조정과 타협 메카니즘의 실종으로 도민들을 분노케 하고 불편하게 했던 그간의 도와 도의회에 대한 도민의 시니컬한 시각을 교정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토론은 쓰다.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몸에 좋은 약이 쓰다는 속담처럼 고통스러운 토론의 결과는 건강사회를 위한 자양분이다.

민주사회가 열린사회라면 토론과 논쟁을 대화라는 거름종이로 걸러내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어떤 일이든 결정을 내리려면 고통스러운 토론이나 치열한 논쟁은 당연한 통과의례일 수 있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과정이 험난하더라도 대화와 타협이 전제되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이 공개적으로 노출되어야 하고 때로는 논리적 허점과 이기적 타산까지도 드러나 사회적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고통 속에서 이뤄진 대화와 합의는 밀실 결정과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추진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요즘사회에서는 매사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시어머니 형 전문가나 시시콜콜 눈 흘기고 딴지나 거는 시누이형 시비꾼들이 너무 많다.
대부분 이들은 합리적 결정 시스템의 방해꾼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격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사사건건 시비하고 비판하는 그룹과도 치열한 토론과 대화와 타협은 필요한 것이다.
정책이 건강해지려면 반대와 비판과 질책까지도 자청해 대화의 용광로에서 녹이려는 당당함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민주적 지방자치는 집행부와 의회간의 대등한 위치에서 견제와 협력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집행부와 의회간의 협력적 거버넌스를 통해 갈등구조의 평화적 해결에 나서고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담보로 하는 자치발전에 기여하는 제도다.

따라서 집행부인 도와 견제기능의 도의회는 적대관계라기보다는 상호의존적 보완 관계라 할 수 있다.

제주도와 도의회의 정책협의회 과정을 전해 들으면서 “이런 상호의존적 보완 관계가 제주발전에 상당히 든든한 버팀목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는 무망한 일은 아닐 터이다.

도와 도의회 간 협력적 거버넌스는 바로 원희룡 도정이 야심차게 내걸었던 협치 도정의 필요조건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실 도와 도의회의 정책협의회 결과는 썩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총론합의, 각론 이견’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수준에서 합의사항을 정리했다고 보아지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이번 정책협의회 결과를 긍정적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이유는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첫 술에 배 부를수는 없는 일이다.
부족한 부분은 향후 계속되어야 할 정책협의회에서 채우면 될 일이다.

세상에 100% 만족은 없다. 완벽한 100%는 없는 것이다. 순금의 순도가 100%가 아니라는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그릇의 쓸모는 공간이 있을 때 더 소중해진다. 다른 무엇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때라야 효용성이 있는 것이다.
비록 아쉽고 미흡하고 미진한 정책협의회 결과라 해도 그 아쉬움을 채울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있음으로 하여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희망은 도와 도의회가 서로 인정하고 포용하며 동반자적 상생관계를 유지하는 전제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기위해선 자주만나 허심탄회한 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고 마음을 터놓는 솔직함은 대화를 영글게 하는 기본 얼개다.
물론 그 핵심의 으뜸은 신뢰구축일 수밖에 없다. 신뢰를 바탕에 두지 않으면 백번 천 번 만난들 무슨 소용일 것인가. 요란한 빈 수례일 뿐이다.

만남과 대화의 과정에서 자존심 싸움이나 정치적 완승주의는 위험하다. 민주사회의 틀을 허무는 독선과 독단을 키우는 씨앗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원희룡지사나 구성지 의장이 귀담아 들을 이야기인 것이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고 절망적 상황에서 제주의 희망을 가꾸는 일은 원희룡지사와 구성지 의장의 몫일 수밖에 없다.

위기의 순간에 구원(救援)투수를 내보내 경기를 승리로 이끌려는 야구에서 처럼 ‘원(元)지사와 구(具)의장’이 “제주의 ‘구(具)원(元) 투수’로 등판해 제주의 희망을 가꾸라“고 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구원투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우리는 해 낼 수 있다. 왜냐면 우리는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칸트의 어록에서 차용한 말이다.
두 수장(首長)에게 들려주고 싶은 금언(金言)이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