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아는 사람과 돈 1,000만원을 거래하면서 차용증을 작성하고 서로 주고받지 않는다면 사람들로부터 어떤 말을 듣게 될까요? 아마 바보냐고 핀잔을 듣거나 사회생활의 기본도 모른다고 충고를 들을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돈 1,000만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요한 거래인 ‘근로계약’에 대해서는 너무 안일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관행인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일까요? 일반상식에 가까운 문제입니다. 정답은 당연히 근로계약서입니다. 근로계약서에는 노동자가 일하면 받을 수 있는 임금과 일해야 하는 근로시간, 사용자로부터 보장받는 휴가기간 등이 명시되고, 이를 양 당사자가 각각 기명·날인함으로써 그 계약내용의 진정성을 가장 확실히 보장하는 서류입니다. 모텔에서 근무하였던 갑씨는 2013. 3. 1. 회사에 입사하면서 간단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월 150만원을 준다고 했지만 사용자가 임금도 제때 주지 않고, 퇴근시간이 지나도 계속 일하라고 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이를 참지 못한 갑씨는 사용자를 찾아가 한마디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갑자기 사용자로부터 “계약만료통지서”라는 게 날아왔고, 이번 달 말부터 나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억울했던 갑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냈습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용자로부터 받은 자료 중에 자신이 날인한 근로계약서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보니 애초 계약체결 당시 공란으로 놔두었던 근로계약기간 란이 “2013. 3. 1. ~ 2013. 8. 31.”이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고, 다른 노동조건도 너무나 다른게 되어 있었습니다. 사용자는 이를 근거로 갑씨가 기간제 노동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갑씨는 줄곧 “나는 근로기간을 정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고, 자필과 다르다는 점을 유력한 증거로 내세웠지만 이에 대해 사용자는 근로계약서를 보여 줄 당시 근로계약 란은 채워져 있었고, 계약직으로 뽑으려고 해다는 주장을 거듭했습니다. 당초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았다면 사용자의 이런 위증행위는 금세 탄로 날 것이지만 사용자로부터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사건이 경우에 사업주의 노동관계법 위반 사안(노동부에 사업주의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10여건을 진정/고소하였음)들이 많아 원만하게 합의하여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임금의 일부를 지급받지 못해 노동부에 가서 임금지급 진정을 제기해도, 사용자가 다른 주장을 하면서 임금대장을 만들지 못했다거나 근로계약서 없이 구두로 계약했다는 식으로 주장하면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임금지불위반에 따른 임금지급의무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미만의 벌금의 형을 피해 근로조건의 명시 또는, 계약서류의 보존위반에 따라 500만원 미만의 벌금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물론 이런 경우 사용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의무가 발생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모든 문제는 노동자가 근로계약의 내용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인데, 이는 상당수의 기업들이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 근로계약서를 아예 작성하지 않거나, 작성을 하더라도 교부하지 않는 관행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용자의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계약서 미교부는 불법일까요? 네, 당연히 불법입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을 정의하면서 “이 법에서 ‘근로계약’이라 함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함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한다.”고 하고, 근로조건의 명시방법을 규정하면서 “사용자는 근로계약체결 시에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 근로시간 기타의 근로조건을 명시하여야 하고, 서면으로 교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명시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시행령에서는 이에 대해 서면으로 할 것을 정해놓았습니다. 정리해 보면, 근로계약을 체결하려면 그 내용을 서면으로 명시하여야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교부하여야 합니다.

사회통념상 모든 계약은 당사자가 계약서에 서명 날인 한 뒤 1부씩 나누어 갖는 것이 기본 상식이고, 근로기준법에 사업주에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노동자에게 교부하라는 의무규정까지 두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잘 지켜지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는 근로계약서 서면작성과 교부의무를 위반하더라도 처벌이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한 법 규정과 관행 때문입니다.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근로계약서를 서면으로 작성하고 교부하지 않아서 사업주와 노동자 간 분쟁이 발생하고, 그 갈등이 깊어지는 사례는 임금체불, 해고, 산재사건 등 노동사건 전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사관계의 기본 중의 기본인 근로계약서 작성과 교부라도 제대로 이루어 졌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을 이 글을 통해서 토로합니다. 경험 상 근로계약서만 제대로 작성하고 교부해도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해결과정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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