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많이 먹는 과일 중에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을 꼽으라면 아마도 바나나를 얘기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바나나는 한 때 매우 귀한 과일이었다. 심지어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과일 대접을 받았다. 실제로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20년 전 바나나는 가격은 지금의 두 배 정도였다. 현재와 20년 전의 통화가치를 비교한다면 바나나는 굉장히 비싼 과일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바나나는 국민과일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값싸게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과일이 되었다. 값싼 만큼 엄청난 양이 소비되고 있는 바나나, 그런데 우린 바나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멸종위기의 바나나?

갑자기 무슨 뜬금없이 바나나가 멸종위기냐고 되묻는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많은 양을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전 세계가 소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멸종위기일 수 있냐고 의문을 표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바나나의 멸종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바나나에게는 아는 사람만이 아는 멸종과 관련된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바나나의 급격한 수요증가는 다국적기업들을 중남미 지역으로 이끌었다. 다국적기업들은 바나나만을 재배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에콰도르, 과테말라 등 중남미에 우후죽순 세우기 시작했다. 수요는 공급을 낳고 공급이 또 다른 수요를 창출하면서 바나나산업은 동시대 어떤 농작물 관련 산업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바나나산업은 갑자기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다. 당시 다국적기업들이 재배하던 바나나는 그로스 미셀(Gros Michel)이란 종 단 하나였는데 이 그로스 미셀종에 치명적인 파나마병이 토양성곰팡이의 일종으로 바나나 나무의 뿌리를 공격하는 곰팡이 균이다. 파나마 지역에서 발견되어 파나마병으로 명명됐다.
창궐했기 때문이다. 결국 1960대 그로스 미셀종은 사실상 멸종한다.

간신히 살아난 바나나 하지만 여전히 멸종위기!

바나나의 멸종이 결국 바나나산업의 종말로 이어질 무렵 영국 캐번디시 공작의 정원사가 파나마병에 면역이 있는 돌연변이 바나나 종 당시 정원사가 아닌 캐번디시 공작의 이름을 따 이 바나나는 캐번디시(Cavendish)로 불리게 된다.
을 발견하면서 다 쓰러져가는 바나나산업을 살렸다. 다국적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캐번디시를 재배하기 시작하는데,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가 바로 캐번디시종이다. 문제는 1970년대 말에 들어서면서 캐번디시도 병에 걸리기 시작한다. 말레이시아 일부 농장에서 바나나가 말라죽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파나마균의 변종 곰팡이균 티피컬 레이스(TR4), 현재 주요 바나나 생산국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검출되며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에 의한 피해였다. 결국 캐번디시종은 특정 파나마병에 면역이 되어 있을 뿐 파나마병을 이겨낸 것은 아니었다.

파나마병으로 엄청난 피해를 봤던 다국적기업들이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이 병을 막지 않으면 바나나산업은 다시 한 번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했다. 그로스 미셀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바나나는 캐번디시 단 한 종이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들이 파나마병을 막겠다고 엄청난 양의 토양살균제와 살충제를 쏟아 붓기 시작한다. 물론 이전부터 파나마병의 공포를 체험한 다국적기업들은 많은 양의 살균제와 살충제를 사용해 왔지만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양을 살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농약에 찌든 바나나

병을 막아낼 백신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종을 발견해 도입하는 등의 노력보다 싸고 노력이 덜 드는 방제방법을 택한 다국적기업들은 병이 퍼져나간다는 소식이 들릴 때 마다 보다 많은 양의 살균제와 살충제를 사용했다. 이렇게 사용된 살균제와 살충제로 결국 농약에 면역된 강력한 파나마균이 발생하고, 또 이에 대처한다고 더 강력한 살균제와 살충제를 사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국제농약행동네트워크에서 2007년 바나나 잔류농약 검출빈도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표본으로 수집된 바나나의 63.7%에서 티아벤다졸이 검출된 것을 시작으로 26%에서는 이마잘일 등이 검출되었다. 이외에도 5-히드록시 티아벤다졸, 아족시스트로빈, 페닐페놀, 피리메타닐, 카바릴, 클로로피리포스 등이 검출되었다. 일단 굉장히 생소하고 어려운 용어지만 간단히 말하면 바나나의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부제 방부제는 주로 유통과정에서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살포한다.
나 살균제다. 이들 농약들은 구토, 설사, 두통을 유발하거나 중추신경계 억제 증상의 원인이 되는 한편, 일부는 발암가능성이 보고되고 있다. 심지어 유기농바나나에서도 잔류농약이 검출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는 생산과정에서 농약을 살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유통되는 과정에서 농약이 살포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그럼 바나나를 먹지 말아야 할까?

극단적인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바나나를 적게 먹는 것이 건강에는 도움이 된다. 껍질을 벗겨 먹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고, 씻어 먹으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 도 있지만 농약이 결국 농작물에 흡수된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가족 건강을 위해서는 바나나 대신 우리 농가가 재배한 제철과일을 먹는 것이 좋다.

그래도 바나나를 먹어야겠다면 먼저 유기농바나나를 추천한다. 물론 일부 유통과정에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다국적기업이 만들어내는 바나나에 비해 안전하다. 특히 다국적기업 들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노동자들이 농약중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욱더 유기농바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공정무역으로 들어오는 제품들이기 때문에 일정부분의 가격상승이 있겠지만, 그 정도는 안전을 위한 비용으로 지출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다음으로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은 국내에서 생산된 바나나를 먹는 것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제주도에서도 바나나를 재배한다. 1990년대 초반에 모두 사라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실 수 있겠다. 물론 1990년대 초반 제주도에서 재배되던 바나나는 수입전면개방으로 추억 속으로 사려졌다. 하지만 2006년 재배 연구가 다시 시작되어 현재는 농협 하나로마트나 생협에서 예약구매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무농약 인증까지 받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바나나를 위해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들

이렇게 노력한다 한들 바나나의 원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바나나를 안 먹는 방법 이외의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현재 전 세계의 바나나의 80% 이상의 5개 다국적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캐번디시종에 맞춰진 생산구조와 유통구조 속에서는 바나나의 위기는 멈출 수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재 캐번디시 시장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5개 다국적기업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은 이런 돌파구를 유전자변형(GM)에서 찾고 있다. 결국 이전의 위기 대신 새로운 위기가 찾아오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거대다국적기업이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있다. 새로운 종을 찾아내서 건강한 바나나를 생산하는 것 그리고 농약에 찌든 바나나가 아니라 다소 값이 비싸더라도 안전하고 건강한 바나나를 구매하는 것이 바나나의 멸종을 막아내고, 우리의 건강을 지켜내는 일이다. 우리가 행동하는 만큼 건강한 바나나는 우리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멸종위기에 놓인 바나나,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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