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와 공공의료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잦아들 줄 모른다. 지난주를 기점으로 최악의 상황은 넘길 것이라던 박근혜 정부의 예측은 빗나갔다.

메르스 여파는 ‘아몰랑’ 신조어까지 확산시켰지만 결국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까지 연기해야 했다.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다 삼키고 있다.

총리 청문회도, 탄저균도, 대선자금수사도 사라졌다. 주말 효순이•미선이 추모제도, 정부가 외면한 6·15 민족공동행사도 이슈에서 사라졌다.

‘메르스 잡으라고 했더니 박원순 잡겠다’고 나서는 정권을 보면서 민심은 더욱 떠나고 있다. 메르스 사태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2주 사이 10%P나 빠졌다. 15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6월 2주차 정례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4.6%로 나타났다. 부정평가는 60.8%를 기록했다고 한다. 국민들이 ‘조기 레임덕’을 걱정해야 수준이다.

근본적으로 메르스 사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의사이기도 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지난 6월 8일자 한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은 OECD 평균보다 병상이 2배나 되는 병원 과잉의 나라다. 그런데도 정작 감염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격리 병상은 없다. 어느 정도 없나? 지금 고위험 감염병 환자가 40명이 겨우 넘었을 뿐이다. 서울의 국가중앙병원급 격리병실부터 채우기 시작해 전국으로 환자들이 퍼져 있고 의심 환자들은 들어갈 병실을 찾아, 입원하려는 병원에 연락도 안 하고 쳐들어가고 있다. 이미 더 이상 환자 받을 여력이 있는 국가지정 격리병상이 있는 병원은 찾기 힘들다. 환자 40명 때문에 ‘국가 재난’ 상황이 되고, 사람들이 다 집으로 숨어야 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 사회다.”

투명하지 못한 정보가 전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은 원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국-WHO 메르스 합동평가단은 지난 6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가 제일 중요했는데 이 부분이 초기대응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원희룡 도지사가 6월15일 메르스 대응 및 경제위기 극복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출처=제주도청>

제주는 어떨까? ‘관광객 급감’이라는 기사가 줄을 있자 관광분야 활성화를 위한 대책들이 하나 둘씩 정책화되고 있다. 제주는 6월 15일 현재 아직 확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제주도청을 중심으로 비교적 일사분란하게 대응체계를 갖춘 모양새다. 도의 보건위생과장은 메르스 사태 이후 거의 매일 밤새우며 메르스 차단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도 들린다. 실제 제주공항 도착 대합실에서는 도 보건복지여성국 공무원을 비롯해 공공의료기관 관계자 등을 중심으로 밤 늦은 시간까지 현장 대응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그러나 메르스와 관련된 제주의 공공의료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국가지정 격리(음압)병상은 공공병원인 제주대학교 병원 내 4개 병상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1개는 2인실이라는 점에서 실제 3개만 운영되는 수준이다.

“원희룡 도지사가 영리병원을?”

2015년 5월 20일 메르스 확진 첫 판정이 나오던 그날,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는 원희룡 도지사 규탄 집회가 열렸다.

제주도청 앞 거리에는 영리병원 반대와 원희룡 도지사를 규탄하는 펼침막이 내걸렸고 싼얼병원이 무산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자본인 녹지그룹 영리병원을 엄호해주는 도지사를 규탄하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지난해 사회적 파장이 일었던 ‘싼얼 영리병원’ 문제는 회장구속, 사기투자 논란 등 각종 논란 속에 좌초되면서 영리병원이 다시 제주사회에 재론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보수의 진화’라고까지 서울언론에서 칭송받는 원희룡 도정에서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인 영리병원은 거론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실제 원희룡 캠프는 1년 전 지방선거에서 영리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적어도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싼얼병원 무산 이후 “설마 원희룡 도지사가 영리병원 하겠어?”라며 원 지사 임기동안은 영리병원 정책에 대한 걱정을 접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러나 김태환, 우근민 도지사에 이어 원희룡 도지사까지 대를 이어 영리병원을 제주에 재추진하면서 제주 시민사회의 반발도 커져가고 있다.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포기하지 않고 영리병원도입을 강행하면서 국내 보건의료단체들의 저항도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인지 시민사회단체들은 전국적인 의료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원희룡 도지사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제2의 홍준표가 될 것’이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사람, 자연, 문화의 가치를 키우겠다더니 또 중국자본 손을 들어 준 거 아냐”, ”선거철에는 영리병원 반대한다고 했다는데 이제 새누리당 소속인 원희룡 지사가 슬슬 정책적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공약 한 줄 없는 원희룡 도정의 공공의료 정책

지난해 도지사 선거는 정책 중심의 선거는 아니었다. 그러나 원희룡 도지사가 후보시절 내놓은 정책들은 가치가 매우 큰 것이 많다. ‘제주365 약속’이 단순 실적용 공약이 아닌 도민사회 의 삶을 관통한다면 또 다른 제주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대목은 의료분야다. 제주의료원 이전, 24시간 보건소 등 화려한 공공의료 분야 공약이 있었던 우근민 지사 시절보다 뒤떨어진다.

의외지만 원희룡 도지사의 공약가운데 공공의료 분야의 공약은 단 한 줄도 없다. 대신 그 빈 자리를 차고 들어오는 것이 영리병원 정책이다.

영리병원 정책의 무게감과 파장을 생각하면 사전 공론화가 필요하지만 최근까지 행보는 ‘기습작전’ 수준이다. ‘협치’를 내세웠던 원희룡 도정이었지만 오히려 영리병원 강행으로 일방통행 정책의 모범사례가 되고 말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지사가 그토록 자신만만해하던 중국 녹지그룹의 영리병원 추진이, 지난 5월 20일 복지부로부터 제동이 걸렸지만 그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었다.

사전각본이라도 있었을까? 다시 제주대병원, 서귀포의료원과 녹지병원측과의 MOU가 체결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희룡 도정의 영리병원 재추진 의사가 다시 감지되는 상황이다.

특히 메르스 사태로 초긴장 국면임에도 영리병리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원희룡 도정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영리병원이 뭐 어떠냐고?

메르스 사태는 의료민영화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일이 커지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전염병 사태 해결을 위해 원격의료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려는 음모라고 반박하고 있다.

냉정하게 현재 정부의 원격의료는 메르스 같은 전염병과는 큰 상관이 없다.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혈압과 혈당 등을 체크하고 모니터링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의료계에서는 반발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원격의료는 의료민영화의 사례로 거론된다.

영리병원 역시 의료민영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데 큰 이견(異見)은 없다. 쉽게 의사나 비영리법인만 병·의원을 개설할 수 있지만 영리병원은 누구나 주식회사를 만들어 병·의원을 차린 후 의사를 고용해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다. 주식회사 병원인 셈이다.

반면 원희룡 도지사는 “헬스케어타운인데 헬스가 없다”면서 영리병원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지금의 동홍동 헬스케어 타운을 ‘부동산 월드’로 만든 것에 대한 반성한 흔적은 없다.

그러나 헬스케어타운은 국내 의료민영화의 신호탄이자 징검다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의료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달에는 제주도의사회, 제주도약사회, 제주도치과의사회, 제주도한의사회, 제주도간호사회 등이 한 목소리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또한 녹지 성형, 미용도 의료적으로 필요한 분야이겠지만 의료산업 전반을 발전시키는 분야인지는 의문이다. 부동산사업자들에게 의료를 맡기는 것 역시 석연치가 않다.

특히 영리병원을 둘러싼 사정은 도지사의 말 한마디로 해결 되서는 안 될 정도로 간단치가 않다.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주식회사 병원인 만큼 치료 보다는 이윤추구를 근본으로 할 수 밖에 없다. 외국인만을 주 대상으로 한다지만 이미 내국인 진료도 제도적으로 허용된 상황이다.

원 지사 입장에서는 “뭐 제주에 하나쯤 영리병원이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오판이라는 지적이다.
의료정책 전문가인 박형근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 기고를 통해 “국내 제1호 외국인 영리병원이 제주에서 시작된다면 다른 경제자유구역들 역시 제주를 모델로 삼아 외국인 영리법인 병원 투자 유치에 열을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실련 역시 지난해 12월 “한국에서 영리병원이 허용될 경우 취약한 공공의료체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정부는 영리병원 추진을 철회하고 정책 우선순위를 공공병원 확충과 비영리병원의 공공성 강화에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영리병원 실태 조사에서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의료비 19% 더 높고, 수익성 위주의 진료로 중복진료 심각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리병원 대신 공공의료 확충을

자주 인용되는 경제협력기구(OECD) 평균 공공병원 비중은 77%이다. 반면 한국은 병상수로는 12%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영리병원이 발달한 미국도 공공병원 비중은 30% 수준이다.

건강보험의 곳간은 13조 흑자지만 국민들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50%가 조금 넘어 미국과 함께 최하위 수준이다.

제주의 공공의료 비중도 이와 큰 차이가 없다. 제주도민의 의료 환경도 열악하다.

질병관리본부가 조사한 '2014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주도민 15.1%가 경제적 이유를 포함해 교통·진료시간 불편 등을 이유로 병원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제주지역의 필요의료서비스 미치료율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돈이 없어서 병원을 가지 못한다는 도민이 적지 않은 것이다.

제주의료원, 서귀포의료원, 보건소 등 공공의료관련 기관들의 만족도는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착한 적자’라지만 만성적자에 시달리며 의료의 질적 저하와 서비스의 질 저하 등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의료분야의 개선책은 더욱 절실하다.

전국 의료관련 단체들이 지난 5월 14일 중국대사관 앞에서 영리병원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JTBC 여론 조사 결과 원희룡 도지사의 지지율이 처음으로 50%를 밑돌게 되자 바짝 긴장한 도정이 지역 방송국과의 기획대담 일정을 조율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원희룡 지사의 참모들이 이례적으로 “지사님 나오시는 토론회를 시청해 달라”는 문자를 보내는 등 갑작스런 정성을 쏟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언론과 친화적인 방식만으로는 지지율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원 지사의 지지율 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보수의 본색’이 아니라 ‘보수의 진화’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정책을 도민들에게 펼치면 된다.

“영리병원이 아니라 돈 없어도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제주를 만들겠다” 정도는 해야 보수의 진화다.
‘돈다발’ 들고 온다고 해서 녹지그룹 앞에만 서면 왠지 초라해지는 느낌을 도민들에 줘서는 안 된다. “공공병원 하나 지어서 제주도민을 위해 공헌 좀 해봐라”라고 할 정도의 배짱도 필요하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재생 할 것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같은 법에 있는 JDC 수익의 일부는 제주의 농어촌진흥기금에 출연하도록 한 조항도, 의무조항인 국세의 지방세 이양 조항에 대해서도 원희룡 도지사는 강력한 이행을 촉구해야한다.

영리병원이 불편한 법이라면 개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차피 새누리당이 지우고 싶어하는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진 조항이다. 제주도지사는 법률안 제안권도 가지고 있다.

그래도 ‘구닥다리 정책’인 영리병원을 계속 추진할 요량이라면 ‘보수의 본색’으로 남는 편이 차라리 솔직하다.

원희룡 도지사의 실패는 바라지는 않는다. 제주의 훌륭한 정책실험이 전국적 모범이 되고 ‘원희룡식 정치’가 더 큰 제주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잠시 원희룡 도지사의 ‘참모’로 변신해 이것저것 요모조모 꼼꼼하게 정책적으로도, 정무적으로도 다 따져봤지만 제주 영리병원은 정말 ‘영리하지 못한 정책’에 불과하다.

출범 1년, 이제 원희룡 도지사의 달라질 의료정책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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