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의 아픔도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합니다. 현재 강정마을의 아픔을 내버려둔다면 미래로 나갈 수 없고, 도민통합도 있을 수 없습니다. 공동체의 아픔을 방치하지 않는, 다른 정치로, 이 문제를 풀겠습니다.”

내가 한 말은 아니다. 2014년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 취임사에서 밝힌 원희룡 도지사의 약속이다.

취임 1년을 앞둔 지금, 강정마을의 갈등해소를 하겠다던 원희룡 도지사의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
이제 강정마을에서 김태환, 우근민 도지사 퇴진 깃발은 내려졌다. 대신 원희룡 도지사 퇴진 구호를 담은 깃발을 내건 집은 없다.

그러나 대문마다 내걸린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은 세월의 ‘풍상’(風霜)을 겪으면서 그 색이 조금씩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강정마을회는 새누리당 원희룡 후보나 새정치민주연합 신구범 후보에 대한 뚜렷한 선거 방침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당시 원희룡 후보는 3월과 5월에 강정마을을 직접 찾았지만 강정마을회는 “원희룡 후보는 자신을 돌아보라”며 막아서면서 강정마을의 심정을 전하고자 했다.

MB정권 잠시 실세였던 ‘이웃주민’ 국회의원 원희룡을 찾아갔다가 문전박대 당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던 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선 이후에도 박영부 전 서귀포시장이 원 도정의 인수위원회에 참여하게 되자 강정마을회는 더욱 분노했다.

6월 9일에는 ‘원희룡 당선인, 박영부 전 시장 중용에 경악한다’는 ‘긴급’성명을 발표했다. 강정마을회는 성명에서 “강정마을에 정치적 테러를 가한 가해자들을 요직으로 두루 포석시켜놓고 갈등을 해소한다는 것은 거짓”이라면서 “원 당선인의 이러한 행보가 과연 상생을 위한 협치라고 볼 수 있는가"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7월1일 원희룡 도지사 취임사 등을 통해 진상조사를 전격 제안하면서 강정마을의 분위기는 다소 변화가 감지됐다. 우여곡절도 있었고 마을 내부의 진통이 없지는 않았지만 원 지사와 직접 만나는 일정이 마련됐다.

취임 107째이던 2014년 10월 15일 저녁 원희룡 도지사는 ‘제주해군기지 진상규명조사위’ 카드를 들고 강정마을을 찾아 장장 4시간에 걸쳐 주민과의 대화를 했다.

근본적으로 그 결과가 매우 제한적인 ‘조례’ 수준의 진상조사와 이를 통한 갈등해소 방안이었지만 지난 8년 가까이 싸워 온 주민들로서는 원희룡 도지사의 ‘진정성’이 담보된다면 생각해 봐야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됐다.

결국 강정마을회는 11월 11일 마을총회를 통해 “공사 중인 72가구 규모의 관사를 포함해 마을과 주변 지역에 해군 관사 건설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전제로 진상조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실패한 군관사 이전으로 …멀어진 진상규명

2014년 11월 강정마을회가 군관사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진상규명을 통한 갈등해소의 길목에는 ‘72세대 군관사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군관사 문제에 대한 해법 없이는 진상규명은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실제 조경철 마을회장을 비롯한 마을회 지도부와 시민사회단체들은 “강정마을 한복판에 군관사는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하게 싸우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군 관사 이전 문제를 풀기 위한 원희룡 도지사의 노력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원 지사는 해군이 군관사를 포기하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기자회견도 했다. 실제 대체부지 조성 등의 대안을 마련해 해군측과 실무적 협의 과정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자 ‘제주 해군 官舍 거부하려면 '新공항' 말도 꺼내지 말라’는 조선일보의 사설도 등장했다.

해군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실무선에서 일부 마을 밖 이전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도 오갔지만 결국 72세대 군관사는 ‘행정대집행’ 강행을 무기로 갈등의 길을 택했다.

원 지사도 변명거리야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군관사 문제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수수방관했다는 지적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정무적 실패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군관사 건축허가는 우근민 도정 시절이 아닌 원희룡 도정 임기 중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군관사 갈등 해소를 할 의지가 제대로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결국 군관사 강정 대집행의 현장을 복기해 보면 ‘공동체의 아픔을 방치하지 않겠다’던 도지사의 취임사는 존재감이 미미했다

군관사 강정 대집행의 기억

1월30일 군관사 공사장 대집행 <사진 출처= 구럼비야 사랑해 까페>
2015년 1월 31일. 혹시나 기대했던 장면은 없었다. 유난히 칼바람이 불던 이날 새벽 강정마을 해군기지 군관사 공사장 앞 농성장. 어깨를 맞대고 서로의 팔을 연결하면 강정주민, 신부, 수녀 등 종교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90여명이 강제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공권력을 압도하리라는 기대는 없었다. 그래도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공권력’의 이름을 모인 경찰병력, 해군, 그리고 갓 20대로 보이는 젊은 용역 등 1000명이 이들과 몇 발자국을 사이에 두고 전쟁터같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때 해군 간부가 뚜벅뚜벅 걸어와 ‘약속대로 주민동의 없는 군 관사는 짓지 않기로 했으니 이제 농성을 풀고 생업에 종사하시라’라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대신 ‘무심한’ 해군 관계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집행 영장을 낭독했고 이어 ‘국가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야만의 시대’만이 있었을 뿐이다.

80세가 된 노인들을 ‘짐짝’ 취급했고 여성들이 타고 있던 소형버스 창문을 깨고 줄줄이 연행했다. 12시간 내내 주민들의 생리적 현상까지 가로막았다.

해군이 용역복장으로 갈아입고 대집행에 참여했다 발각됐으며 국가인권위 직원들까지 용역들의 완력에 굴복당하는 장면까지 목격됐다. 일부 20대 초반 여성 용역 중에는 자신들이 뒤늦게 무슨 임무였는지 알았던 듯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갈등의 중재자인줄 알았던 경찰은 스스로 용역을 자처하는 듯 야간에도 공권력 집행에만 여념이 없었다. 24명이 연행됐고 당초 알려진 약속과는 전원 석방이 아닌 조경철 마을회장 등 4명에 대한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다.

역시나 고대했던 장면은 없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원희룡 도지사는 오지 않았다. 그 난리통에 ‘지사님은 국제업무를 위해 해외순방 중’이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들이, 취임사에서부터 갈등은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했던 강정마을이 이 지경이 되고 있는데 제주에 없었다. 도지사가 주장하는 ‘협치’의 대상과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한 순간이었다.

원희룡 도정의 고위 공무원 중 어느 누구도 ‘경찰이나 해군에게 주민들의 안전이 우선이니 공권력 투입이 말고 우리가 직접 대화로 풀어보겠다’는 수준의 형식적인 언사도 없었다.

도청 소속 119까지 동원돼 ‘야간 작전’을 위한 불빛을 밝히는데 도움을 줬지만 안전 ‘매트리스’가 놀이터처럼 ‘미끄럼틀’이 되도 ‘그렇게 하면 망루진입시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조언이라도 해주는 도청 소속 공무원도 없었다.

‘더 큰 제주’를 꿈꾼다는 원희룡 도정이 결국 국가권력 앞에서는 납작 엎드린 형국이었다.

대집행이 끝나고 도지사가 일본에서 돌아와 던진 첫 일성은 ‘행정대집행 유감’ 수준이었다.

망루 진압 작전을 앞두고 사다리를 타고 농성 주민들을 만나러가는 강주일 주교 <사진출처=구럼비야 사랑해 까페>

기대하고 고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장면은 있었다. 31일 저녁 7시 여전히 11시간째 조경철 강정마을회장과 천주교 신부들이 망루 꼭대기에 있었다. 경찰은 사냥감을 만난 듯 망루 진압을 위해 버스 위까지 진출해 작전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강우일 주교가 이 현장을 전격 방문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종교적 위로’ 차원인 줄로 알았더니 마치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듯 불안 불안한 사다리를 한 계단씩 올라 직접 버스 위에서 조경철 회장 등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종교계의 조율로 강제진압에 따른 망루 꼭대기에서 벌어졌을 1월31일 최후의 불상사는 다행스럽게 일어나지 않았다.

크루즈 vs 크루즈, 강정주민에게는?

지난 6월19일 강정마을의례회관에서 열린 크루즈설명회

최근 제주의 화두는 ‘메르스’에 이어 ‘크루즈’가 됐다.

지난 6월19일 저녁 원희룡 도지사가 직접 참여해 두 시간에 걸쳐 강정의례회관에서 진행된 설명회는 진상조사나 강정갈등 해소를 위한 토론회가 아니었다. 크루즈 터미널 조성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설명회 자리였다.

원희룡 도지사와 참모들은 최근 갑자기 등장한 제주신항의 22만톤 크루즈를 염두에 둔 듯 해군기지와 함께 쓰게 될 15만톤 크루즈 공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데 동어를 여러 번 반복해가면서 노력을 기울였다. 크루즈는 국가의 약속이라거나 강정주민이 주도하는 지역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도지사의 발언도 이어졌다.

1년 365일 가운데 200일은 크루즈가 강정을 찾을 것이며 8000명이나 되는 크루즈 탑승객을 통해 강정과 지역 경제가 꽃을 피우게 될 것이라는 류의 장밋빛 청사진까지 나열됐다.

그러나 이날 참석했던 주민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설득을 위해 각종 수치가 등장하긴 했지만 이를 객관화됐다고 믿는 주민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특히 설명회 중간에는 찬성측 한 주민이 나와 조경철 마을회장 등에게 ‘빨갱이’ 발언까지 등장하면서 잠시 파국을 맞기도 했다.

전날 도청 관계자는 제주신항과 관련해 언론인터뷰를 통해 “강정항은 군항이라 아무래도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다”고 했다가 다음날 강정에 와서는 장밋빛 청산진만 나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결국 오는 6월 30일 강정주민들은 마을 총회를 통해 크루즈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지만 의례회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의 발길은 왠지 무거워 보였다.

이미 담장을 훌쩍 넘긴 군관사 공사 현장을 뒤로 한 채 크루즈만 외치는 현실에서 “강정마을의 아픔을 치유하겠다”는 원 지사의 취임사는 더욱 초라해져가고 있었다.

원희룡 도지사 이제 말보다 실천으로 화답해야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 영문 포스터

오는 8월이면 정부와 김태환 도정의 일방적 결정으로 인해 강정주민들이 해군기지에 반대운동에 나서진 3000일째를 맞는다.

원희룡 지사가 약속했던 진상규명을 통한 명예회복은 준비했다던 조례안은 입법예고도 해보지 못했다. 이미 강정마을 한복판에 등장한 군관사 건물의 콘크리트 골조는 양생과정을 지나 더욱 단단해져가고 있다.
행정이나 정치권에 기대 것이 거의 없는 강정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다시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의 이름으로 제주도민들을 직접 만날 계획이다. 해군기지 공사가 설령 마무리된다하더라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실천의 발걸음을 내 딛는다.

“다른 정치로, 강정 문제를 풀겠습니다.” 취임 1년을 앞두고 있지만 원지사의 이 약속은 ‘윈 -원 해법’을 약속했다 아무것도 해결한 것이 없이 떠난 우근민 지사의 약속만큼이나 공허해진 상황이다.

정치는 말의 성찬만이 아닐 것이다. 더 큰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해 왔다. 그 실천이 유권자들과 국민들의 더 큰 마음을 얻어왔음을 증명된 사실이다.

보도자료, 기자회견, 이미지정치 수준으로 여론을 돌리고 민심을 얻는 것은 일시적이다.

이제 강정 공동체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원희룡 지사의 ‘다른 정치’의 약속을 실천으로 보여줄 때이다.

강정 공동체의 복원의 토대를 만든 도지사가 될지, 강정의 아픔을 방치한 도지사가 될지 아직 시간은 남아있다. 앞으로 임기는 3년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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