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오승철 시집 "터무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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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오승철 시집 "터무니 있다"
  • 김길호
  • 승인 2015.07.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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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승철 시인이 시집 "터무니 있다"를 지난 5월 <푸른사상>에서 발간했다. 다음은 시집 제목과 같은 "터무니 있다"이다.

터무니 있다

홀연히
일생일회
긋고 간 별똥별처럼
한라산 머체골에
그런 올레 있었네
예순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터무니 있네

그해 겨울 하늘은
눈발이 아니었네
숨박꼭질하는 사이
비잉 빙 잠자리비행기
<4.3땅> 중산간 마을 삐라처럼 피는 찔레

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
할아버지 할머니 꽁꽁 숨은 무덤 몇 채
화덕에 또 둘러앉아
봄꿩으로 우는 저녁

터무니 없을 것 같은 현실들이 있었다. 이 부조리 속에 시인은 시침 딱 떼고 스스로 장단을 맞춘다. <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

몸국

그래, 언제쯤에 내려놓을 거냐고?
그러네, 어느 사이 가을이 이만큼 깊네
불현듯
이파리 몇 장 덜렁대는 갈참나무

그래도 따라비오름 싸락눈 비치기 전
두말떼기 가마솥 같은
분화구 걸어놓고
가난한 가문잔치 부조하는 꽃불을 놓아

하산길 가스름식당
주린 벌빛 따라들면
똥돼지 국물 속에 펄펄 끓는 고향 바다
그마저 우려낸 몸국,
몸국이 되고 싶네

필자가 제주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럽다고 새삼스럽게 다시 느낀다. 이 시를 육지(한반도 본토) 사람들은 덧뺄셈처럼 머리에서는 이해하지만 우리들은 읽는 동시에 감성으로서 가슴에 바로 닿는다.

(오름 하나 같다 놓은) 두말떼기 가마솥 같은/ 분화구 걸어놓고/ 가난한 가문잔치(축복의 불꽃놀이처럼) 부조하는 꽃불을 놓아/ 똥돼지 국물 속에 펄펄 끓는 고향 바다(몸)/는 유년시절의 화석처럼
제주인의 몸에 새겨져 있다. <돗 잡는 날>에도 이러한 것은 번득인다.

몸국은 오사카 이쿠노에서 제주향토 요리로서 시민권을 얻기 위해 지금 발돋움을 하고 있다.

돗 잡는 날

때 아닌 왕벚꽃이 펏들대는 겨울이었다
똥돼지 목 매달기
딱 좋은 굵은 가지
꽤애액
청첩을 하듯
온 동네를 흔든다

잔치,
가문잔치
그 아시날 돗 잡는 날
자배봉 앞 자락에 가마솥 내걸리고
피 냄새 돌기도 전에 터를 잡는 까마귀 떼

솥뚜껑 베옥 열고
익어신가 한 점 설어신가 한 점
4.3동이 내 누이 시집가던 그날처럼
한 양푼
서러운 몸국
걸신 들린 밤이었다

꽤애액/ 청첩을 하듯/ 온 동네를 흔든다/ 오 승철 시인 특유의 풍자와 해학의 시어들의 생동하고 있다.
이 시의 풍경이 입체 영상처럼 눈 앞에 다가온다.

그런데 문제 제기를 하나 하겠다. <4.3동이 내 누이...>가 아닌 <내 누이...>만이라고 해도 가슴 찡한 시이다.

구태여 여기 저기 <4.3>을 안 넣어도 작품적 손색이 없는데 제주만이 갖는 정서 때문인지 모른다. 반대로 남용으로 인해 그 가치를 떨어트릴 수도 있다. 제주 출신 시인들의 작품에는 이런 경향이 인위적으로 느껴질 때도 많다.

결코 이것은 무조건 정면으로 부정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혹시나 하는 기우에서이며, 여기 이 시에서 이러한 필자의 생각을 쓴다고 해서 오 승철 시인 개인에 대한 의견이 아니다.

오 승철 시인은 제주룰 대표하는 시인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대해서 쓰면서 제주 출신의 시인들에 대해서도 여기에 덧붙여 쓰는 것뿐이며 오해 없기를 바란다.

시집 <터무니 있다>에는 3부로 나눈 가운데 54편의 작품이 게재되었고 이 홍섭 시인의 해설도 같이 게재되었다.

54편 중에는 제주투데이에 소개한 <셔?> <판> <한가을> 등도 들어있다. 끝으로 오 시인의 대표작인 <셔?>를 소개한다.

"셔?"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번 묻는 말
"셔?"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말
"셔?"

사어가(死語)가 돼버린 짧은 제주 사투리 <셔>의 주제로 오묘한 남녀간의 관계를 하나의 이이기로 승화 시킨 통찰력은 일품이다.

정제되지 않은 투박한 언어들이 럭비공처럼 어디를 가는지 모른 채 읽던 독자들에게 의외의 결말은 시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오 승철 시인은 1957년 제주 위미에서 출생.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집 <개닦이> <누구라 종일 흘리나>가 있고, 한국시조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유심작품상, 중앙시조대상, 오늘의 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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