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해설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도 종환 시인은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도 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를 꽃 같이 펴냈다.

장미나 난처럼 결코 화려하고 귀족적인 꽃 이야기기 아니다. 우리들 시골 농가 어느 마당에도 피는 분꽃, 채송화, 민들레, 봉숭아, 제비꽃, 과꽃, 개나리, 해바라기 등이다.

가난을 숙명처럼 살아왔던 시인과 제자들의 어우러진 삶과 시인의 인생 속에 이러한 꽃들은 아기자기하게 피어나 가슴 진한 향기를 내뿜는다.

라일락꽃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항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다음은 꽃과는 전혀 다른 시이다.

삼대8. 사격명령

사격명령이 떨어지던 날
탄창 속의 M16A1 신형 탄알처럼
징발된 민간차량에 가지런히 탑승되어
비포장도로를 달려갔다.
정갈한 저녁바람은 예년처럼
보리수염을 쓸어가고
개인호를 파고 들어앉은 우리 앞에
인도지나의 풍문으로만 듣던 안개가
호남평아를 기어오고
바리케이트 뒤에서 몰래 탄창 제일번 실탄을
거꾸로 장전하는 짧은 순간
가장 깊은 밤의 이슬이
어깨를 밀고 들어왔다.
그 밤 터무니없는 죽음의 가도에서
고려 중기의 젊은 농군을 만나고
亡伊(망이)와 亡所伊(망소이)를 만나고
鄭仲夫(정중부)의 다듬어진 칼과 普賢院(보현원)의 차디찬
화강암에 이마를 부딪고 쓰러진
그 흔한 죽음의 기록도 없는 한 야사의
문신들을 만났다.
십칠번 국도 위에서 역사를 우롱하던 바람은
한 찰나도 빼놓지 않고 피묻은
뻐국새 울음을 귓가에 실어오고
부대끼는 밤구름을 능선위에 옮겨왔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겨도
이제 나의 개인화기는 발화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역사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는 역사여
구름 그림자에 눌리운 이 깜깜한 오월의 국도 위에서
참으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인지
당신도 헤아리고 있는가



4월 어느 날 하루 종일 비 내리는 날 향기에 이끌려 가 보니 라일락 나무 한 구루가 있었다.
향기는 꽃의 언어라는 시인은 "나를 부른 이유가 무엇일까?"하고 주변을 서성이다가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라는 꽃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서정적인 환경과는 달리 어느 5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다가온다. 광주민주항쟁 때 필자는 일본에서 매일 이 뉴스를 고통스럽게 텔레비에서 보고 있었다.

군인들의 무자비한 진압 광경이 영화처럼 뉴스로 나올 때마다 군인들에 대한 비난은 거세졌다. 필자는 시민들의 참상에도 치를 떨었지만 획일적인 비난만을 들으면서 진압을 하는 젊은 군인들에게도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었다.

어쩌다 불행한 시대에 군인의 몸이 되어 광주에서 이 부조리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의 안타까움을 텔레비를 같이 보는 사람들에게 역설하기도 했었다.

"바리케이드 뒤에서 몰래 탄창 제일번 실탄을/ 거꾸로 장전하는 짧은 순간"은 옹이처럼 박힌 그 당시 생생한 기억의 편린들이 되살아났다. 안타까웠던 군인에 대한 연민들이 도 종환 시인에 의해 구원되었다.

들일

들일을 다니며 가을 한 철 보냈다
뒷주머니에 찔러주던 백 원짜리
환희 담배불을 꺼내 불을 붙이면
니코틴 색으로 손에 배는 고적한 피로
콩과 깨를 거두고 무 두 접 뽑아 묶어
얼지 않을 땅에 묻고 땀을 닦으며 일어서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의 노역
베고 또 베어 버려도 벌판은 남아 있고
지난 날의 쓸쓸함도 거기 어디 남아 있고
등에 얹은 볏가마니는
지고 가야 할 나이보다 무거웠다
먼지를 털어 올려다보는 새털구름 밑으로
하늘은 배고픔처럼 어두워오는데
시간은 나를 앞질러 갈 만큼 간 걸 알겠다
돌아오는 거리에서 마른 구역질을 하고
공연히 주먹을 쥐었다 펴곤했다
내일은 소장수 백씨네 아래텃논
마당질을 끝내려 가야 한다
호박잎을 걷어낸 양철지붕 위에서
붉은 녹을 걷어차며 바람이 떼를 지어
종점 빈터로 몰려가는 늦가을 저녁


제대를 하고 돌아온 집에서 아버지는 남의집 소작농을 하고 있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나의 노역/ 하늘은 배고픔처럼 어두워오는데/ 돌아오는 거리에서 마른 구역질 하고/ 공연히 주먹을 쥐었다 펴곤했다/" 늦가을 저녁놀의 아름다움들이 상실된 황량한 절망의 귀로였지만 시인은 굽히지 않았다.

교사로 발령 받고 시골 학교로 부임한 시인은 또 다른 가난과 만난다. 가난으로 허덕이는 제자가 동생들의 수업료를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대전으로 일하러 간 것을 안 시인은 자신의 가난한 삶까지 털어내면서 돕는다. "스승의 기도"는 시인의 "주기도문"이다.

스승의 기도

날려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이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당신께서 저희를 사랑하듯
저희가 아이들을 사랑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당신께 그러하듯
아이들이 저희를 뜨거운 가슴으로 믿고 따르며
당신께서 저희에게 그러하듯
아이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거짖 없이 가르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아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저희가 있을 수 있듯이
저희가 있음으로 해서
아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힘차게 나는 날개짓을 가르치고
세상을 올곧게 보는 눈을 갖게하고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 있는 퐁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저희를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더더욱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서로 다정하게 마주앉아서 나눌 시간마저 허용되지 않았던 부부의 일상들이었다. 그래서 뒷모습만을 보고 살다낳은지 네 달 좀 지난 딸아이를 남겨두고 부인은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 자기가 죽거든 눈을 다른 아이에게 기증해달라면서.

접시꽃 당신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저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아가고 싶습니다

교사협의회를 만들면서 감옥에 가고 나와서 해직교사 복귀운동을 벌이면서 벽에 부딪치는 암담한 일상을 "담쟁이"이라는 시로 써냈지만 절망은 없었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드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하면 미국 작가 오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언제나 떠올랐다. 무명의 노인 화가가 비바람 치던 날 폐염을 앓고 있는 젊은 여성이 담쟁이가 다 떨어지면 자기도 죽는다는 말을 듣고 담쟁이 하나를 그리고 자기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앓다가 죽는다.

도 종환 시인의 <담쟁이> 시는 <마지막 잎새>만이 갖고 었었던 "담쟁이"에 대한 부과가치를 앞으로는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담쟁이 잎 하나가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군더더기처럼 설명이 필요 없는 시이다. 설명은 시의 아름다움을 해칠뿐이다. 끝으로 "분꽃"을 소개한다.

분꽃

내가 분꽃씨만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거기 어머니와 꽃밭이 있었다
내가 아장아장 걸음을 떼기 시작할 때
내 발걸음마다 채송화가 기우뚱거리며 따라왔고

무엇을 잡으려고 푸른 단풍잎 같은 손가락을
햇살 속에 내밀 때면
분꽃이 입을 열어 나팔소리를 들려주었다

왜 내가 처음 본 것이 검푸른 바다 빛이거나
짐승의 윤기 흐르는 잔등이 아니라
과꽃이 진보라빛 향기를 흔드는 꽃밭이었을까

민들레만하던 내가 달리아처럼 자라서
장뜰을 떠나온 뒤에도 꽃들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사나운 짐승처럼 도시의 골목을 치달려갈 때면
거칠어지짖 말라고 꽃들은 다가와 발목을 붙잡는다

슬픔에 잠겨 젖은 얼굴을 파묻고 있을 때면
괜찮다 괜찮다고 다독이며
꽃잎의 손수건을 내민다

지금도 내 마음의 마당 끝에는 꽃밭이 있다
내가 산맥을 먼저 보고 꽃밭을 보았다면
꽃밭은 작고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꽃밭을 보고 앵두나무와 두타산을 보았기 때문에
산 너머 하늘이 푸르고 싱싱하게 보였다
꽃밭을 보고 살구꽃 향기를 알게 되고
연분홍 그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유장함에 대해 생각하기 되었다

내가 처음 눈을 열어 세상을 보았을 때
거기 꽃밭이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지금도 내 옷 소매에 소박한 향기가 �어 있는 것이


충청도 시골 고모네 집은 크고 또 꽃밭이 있었다. 그곳에서 고종 사촌들과 놀던 기억이 집에서 지내 놀던 기억 보다 더 많았다는 시인은 꽃과의 인연이 풍부하여 풍요스러운 내면 정서를 키워 주었다.

지난 7월 2일 필자는 도 종환 시인과 우연히 한국 국회에서 만났다. 필자는 <"타케시마의 날"을 다시 생각하는 모임>의 이사로서 오사카에서 모두 7명이 갔는데 국회의원과의 조찬 <한.일독도포럼>에 도 종환 의원도 참석했었다.

그 인연으로 2011년에 초판 1쇄, 2014년에 초판 8쇄를 발행한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를 받고 읽을 수 있었다.

모두 5부로 나눠진 47편의 자전 에세이에 67편의 자작시가 게재되었는데 원고 청탁에 의한 숙제 같은 창작 작품들이 아니었다. 일상들을 진솔하게 쓴 <시로 쓴 일기>들이었다.

일제시대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전쟁터에서 전사한 시인의 큰 아버지의 유해가 2009년 7월에야 일본에서 고향으로 모셔졌다.

65년만의 무언의 귀향인데 일본에 사는 필자에게 아물지 않은 한.일관계가 아직도 곳곳에서 진행 중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도 종환 시인은 1954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시집으로는 <접시꽃 당신> <부드러운 직선> <해인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등이 있고 <사람은 누누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마음의 쉼표> 등과 동시집 <누가 더 놀랐을까> <정순철평전> 등이 있다.

신동협창작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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