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國學)의 맥 모두 끊겨

“80년대에 끊어진 민족정신을 20세기 민족사상가인 봉우 선생이 명맥을 이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룡산에서 30여년 동안 '민족정신수련법'을 공부해 온 정재승씨(46·봉우사상연구소장).

제주민예총이 지난달 25일부터 ‘우리문화 문맥찾기'의 강좌로 마련하고 있는 2003 역사문화아카데미 강좌에서 만난 그에게 ‘민족정신론'에 대해 들어봤다.

계룡산은 선도(仙道)사상을 후학하는 이들에게 선각자이자 ‘도인(道人)’으로 일컬어지는 봉우(鳳宇) 권태훈(權泰勳) 선생(1900~1994)의 정신적 함양처(涵養處)이자 후학을 길러내던 본향(本鄕)으로 알려져 있다.

봉우 권태훈 선생은 소설 『단』의 주인공으로 익히 세상에 알려져 있다.

지난 20세기 말 한국 정신계에 ‘단’ 열풍을 몰고 온 선도계의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봉우 선생 자신의 생생한 삶의 모습과 그 이야기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봉우 권태훈 선생의 모든 행정, 일화, 유고 등에 나타난 사상적 요소들을 발굴해 새롭게 현대적 의미를 부여 하자는 취지에서 지난 2001년 2월 봉우사상연구소(www.mindvision.org/publisher/SinSun/preface.html )를 세웠다.

정신문화 가장 많이 남아있어

▲  '丹'은 봉우선생을 주인공으로  다룬 소설이다.
“우리민족의 정신수련법은 국조 단군, 즉 한배검께서 상고시대부터 인민을 가르친 방식을 말합니다”

산중에서 봉우 선생을 만난 인연으로 선도사상에 매료돼 무한한 ‘정신세계’의 체험에 직접 뛰어든 그는 정신세계의 목표가 한마디로 ‘나를 찾는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각분야의 국학(國學)이 있었는데 모든 맥이 끊어졌다”며 “사실 국학의 정신세계는 무당 등의 샤머니즘의 아니라 주로 산(山)에서 도를 닦는 수도자들에 의해 내려왔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이 ‘정신세계’ 문화라는 그는 전국 명산을 중심으로 한 ‘선도사상’이 구전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민족정신 수련법은 유구한 세월동안 우리 조상님들이 계계승승해서 성(成)과 부침을 거듭하며 전해 오던 법”이라는 그는 “후일 백두산에서 중국대륙으로 전해지고 곤륜산을 넘어서 소아시아 지역으로 가고 천산을 넘어 인도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중국으로 가서 유교와 도교가 되고, 인도로 가서 불교가 되며 소아시아로 가서 회교가 되고 또 예수교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한배검 정신이 세계문화와 종교 사상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며 마음을 닦는 차원에서 본다면 민족정신수련법은 유교, 불교, 도교와 예수교, 회교 등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방식”이라며 “다만 그 민족의 관습이나 풍속상의 다른 점으로 인해 뒤로 내려오며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숨을 고르게 쉬는 것이 최대 민족정신수련법

▲ 정재승 소장.
그가 말한 한배검께서 전해 주었다는 정신수양법은 무엇일까?

그는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의 삼법(三法)이라고 잘라말한다.

“지감이란 마음을 잘 다스려서 좋은 방향으로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요. 조식이란 숨을 고르게 쉬도록 함이요. 금촉이란 마음과 숨을 잘 다스리고 더불어 실제로 행동하는 것까지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중에서 숨을 고르게 쉬는 조식법이 바로 한배검의 형이상학적 가르침으로, 이는 서양의학과 달리 사전에 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며 “따라서 불교와 유교와 차별되는 조식법은 정신수련법의 가장 중요한 본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대 한배검님께서 전해주신 조식법의 도맥을 중세에 이어받아 ‘해동선가지방(海東仙家之方)’으로 알려진 북창 정렴선생의 ‘용호비결’로 이어져왔다”며 “근현대에 와서 그 고유 선맥이 이어온 봉우 선생의 ‘연정16법’은 우리 선도(仙道)의 교과서로 삼을 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가 정신을 수양하는 까닭은 ‘나에게서 구함’에 있다”며 “내게서 진정한 나를 찾은 뒤에야 남도 알고, 남을 알아야 사랑할 수 있으며 남 역시 나를 사랑한다”고 풀이했다.

이어 “서로 사랑하는 세상이 바로 홍익인간의 사회이며 진정한 평화세계가 이룩된다는 뜻”이라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정신수련을 추구하는 가장 큰 뜻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통문화의 핵심은 바로 바보같이 묵묵히 앉아 있는 자세로 조식(調息.복식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방법을 생활화하면 돈을 들여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점점 조급증에 걸려있는 현대인에게 그는 하루에 5분간 조식법을 생활화하는 ‘바보되기’를 실천할 것을 당부했다.

▲ 정재승(鄭在乘)은

단기 4291년(서기 1958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봉우 권태훈 선생 문하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철학 및 심신수련법을 수학했다. 『백두산족에게 고함』, 『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문화』, 『민족비전 정신수련법』, 『봉우일기 등 여러 책을 엮어 펴냈다. 현재 봉우사상연구소 소장.

봉우 권태훈 선생(19001994. 선인(仙人). 종교가. 한의학자. 예언가)

▲ 봉우 권태훈 선생.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은 인학(寅鶴), 자는 윤명(允明) 또는 성기(聖祈), 호는 여해(如海), 봉우(鳳宇), 물물(勿勿), 연연(然然). 서울 재동(齋洞)출생. 권율(權慄)장군의 11대손이다.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내부판적국장(內部版籍局長), 평산군수?진도(珍島)군수를 역임한 중면(重冕)이고,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경주 김씨이다.

  중면은 을사조약에 서명한 중현(重顯)과 형제의 의를 끊고, 1907년의 정미칠조약을 계기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권태훈은 이러한 특수한 가계와 집안분위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어머니로부터 6세 때 조식법(調息法)을 배운 이래 선도(仙道)의 세계를 접하였으며, 유교경전들을 섭렵하였다.

  10세 때인 1910년에는 서울 종로구 마동(麻洞)에 있는 단군교 포교당에서 나철(羅喆) 대종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충청북도 영동에서 보통학교를 다니면서 수학 등 근대학문을 접하였는데, 이 때 일본유람단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13세에 선도계의 거인인 우도방주(右道坊主) 김일송(金一松)을 처음 만났으며, 19세에 그를 따라 구월산에 입산하여 3개월간 선도수련에 입문하였다. 이 때 좌도(左道), 우도(右道)의 여러 심법(心法) 등을 전수받았으며, 그 뒤 인천에서 산주(汕住) 박양래(朴養來) 등 선도계의 여러 인물들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3.1운동이후에는 만주에서 독립전쟁에 참여하였고, 국내로 잠입하여 지하운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에 한독당(韓獨黨)에 가입하는 등 정치운동에 나섰으나 고난을 치렀다. 60세 때에 공주에 연정원(鍊定院)을 신축하여 수련을 하다가 65세 때에 상경하여 한의원을 개업, 83세가 되는 1982년에 대종교의 최고지위인 총전교에 취임하였다.

 

▲ 天符經(천부경)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권태훈.1989년 11월).
1984년에는 단(丹)이란 소설을 통해서 선인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1986년에는 한국단학회 연정원을 설립하고 총재에 취임하였다. 1989년에 수필집 백두산족에게 고(告)함을 출판, 천부경(天符經)의 비밀과 백두산족 문화를 구술, 출판하였다. 또한 1992년에는 민족비전(民族秘傳) 정신수련법을 감수, 출간하였다.

   그리고 95세인 1994년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上莘里)에서 운명하였다.

  권태훈은 유선의 여러 사상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주로 선도를 바탕으로 하였고, 시대적 영향을 받아 민족종교인 대종교 사상의 영향도 받은 듯 하다. 6세 때부터 시작한 호흡법을 기본으로 평생 선도수행에 열중하였고, 예언사상 등도 역시 그에 기초한 것이 많았다.

  1951년에 이미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예언하였으며, 원자탄의 발명. 일본의 멸망. 남북의 통일. 중국의 분단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예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을 비판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문명비평가적인 면모도 보여주었다.(도움말=봉우사상연구소)

봉우 선생의 선도수행이란?

▲ 봉우일기1,2(권태훈.1998년 11월).
봉우 권태훈은 선도수련을 대중화시키고자 선도수행법을 소개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체계화시켰다.

선도는 수행방법과 조직, 논리 등이 ‘비인물전(非人勿傳)’, 즉 비공개를 원칙으로, 수행자들간에만 전달되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의적(秘儀的)이고 신비적이었으며,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도수련의 실제와 과정 및 선도인들의 활동을 역사상의 인물은 물론 당시대의 인물들까지 실명으로 등장시키는 등 공개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선도가 일반화되고, 또한 조직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는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裏覺)”이란 문장을 사용하여 행위의 측면을 매우 중시하였다.

   따라서 선도의 초역사성, 탈역사인식을 극복하고 역사성을 가진 사회사상으로 변화시켜 민족역사에 근원을 둔 수행과 인식을 통해 민족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21세기는 문명의 내용과 실현 방법 등에서 전환이 일어나고 주체가 백인에서 황인으로 바뀐다는 ‘황백전환론(黃白轉換論)’을 주장하였다.

  

▲ 봉우선생이 펴낸 '백두산족에게 고함'(1989년 1월).
 이러한 문명의 전환과정에서 한민족이 적극적인 주체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역할론이 바로 ‘백산대운론(白山大運論)’, ‘백두산족론(白頭山族論)’이다. 이러한 문명관은 학문과 수행, 사상적 편력 등을 통해서 단계적으로 형성되었으나, 천지도수의 변화, 원상(原象), 산법(算法) 등의 선도적 방법론도 근거로 하고 있다.

  권태훈의 존재와 사상은 《단이란 책을 통해서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으로 여겨졌던 기(氣)의 존재를 일반화시켰다.

또한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논리화되지 못했고, 조직적인 사회운동이 되지 못했으나 1980년대 인간의 정신과 가치관은 물론 사회문화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왜곡당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시키고, 자긍심을 갖게 하였으며 한민족의정체성을 민족 내부의 문제를 뛰어넘어 세계는 물론 문명의 전환이라는 거시적인 입장에서 생각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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