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환경운동연합  김정도

제주도 풍력자원의 공공적 관리와 지역 에너지 자립을 위해 출범한 제주에너지공사가 창립 3주년을 맞았다. 그간 제주에너지공사는 현물 출자를 받은 풍력단지를 운영하면서 행원단지의 노후 풍력발전기를 교체하는 사업을 시작으로 30MW 규모의 동복풍력발전단지 신규 건설을 진행하고 있으며, 풍력발전시스템 출력성능 및 전력품질 시험 국제공인시험기관으로 인증 받는 등 풍력발전 확대보급과 제주도의 에너지자립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 또한 도내 가정에 태양광발전시설 설치비를 지원하고 사회복지기관에 기부하는 등 도민사회와 함께하려는 노력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주에너지공사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당초의 설립 목적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더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뼈아픈 비판마저 뒤따르고 있다.

중고장과 중대사고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제주에너지공사

제주에너지공사의 설립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것은 기존의 도 직영 풍력발전단지의 효율적인 유지․운영의 필요성이었다. 이런 필요에 의해 설립된 제주에너지공사는 운영중인 풍력발전기에 대한 기본적인 관리와 안전진단 등을 하고 있지만, 중고장 수리와 정밀진단 등의 핵심적인 유지보수업무는 외주용역을 맡겨서 수행하고 있다. 이는 중고장과 중대사고에 대응하기 힘든 구조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지난 7월 7일 제주도가 2010년 설치하여 2012년 에너지공사에 현물 출자한 김녕풍력발전실증단지의 750kW급 풍력발전기 1기에 화재가 발생해 나셀을 완전히 태워버리고 블레이드마저 일부가 타버리는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2010년 10월 25일 발생한 행원풍력 2호기에 이어 제주도에서는 2번째로 발생한 풍력발전기 화재였다.

화재발생과 사후처리과정에서의 제주에너지공사의 모습은 참담했다. 사고에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화재 이후 대처는 더욱 심각한 수준이었다. 사고조사를 하느냐 마느냐로 시간을 허비하고, 고작 2시간짜리 육안조사로 사고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에너지공사는 이번 화재사고가 브레이크계통의 오류로 발생한 사고로 정확한 원인을 밝힐 주요부품이 모두 타버려서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낼 수 없었다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풍력발전기 화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화재 경험이 국내외에 축적된 상황에서 화재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낼 수 없다는 것은 황당함 그 자체였다. 더군다나 같은 기종이 이미 화재를 경험한 바 있음에도 관련내용을 살펴보거나 지난 화재사고에 대한 보고서를 검토하지도 않았다는 점은 이번 화재를 조용히 묻고 지나가겠다는 것으로 밖에 읽히지 않았다.

이번 사고는 화재를 조기에 진화할 장비를 갖추지 못한 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화재의 발생과 진행과정에서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는 대응구조를 갖춘 제주에너지공사의 책임 역시 작지 않다. 제주에너지공사가 중고장과 중대사고에 대응할 체계를 갖췄다면 이번 사고가 이렇게 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주에너지공사의 풍력발전 집착은 제주도 에너지자립에 장애물

제주에너지공사의 사업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카본 프리 아일랜드 제주 2030’ 계획이다. 제주에너지공사의 중장기계획에도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 또한 바로 이 계획이다. 이 계획의 가장 큰 골자는 2030년까지 모든 에너지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주도내 모든 자동차도 전기자동차로 바뀐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의 핵심은 풍력발전 그중에서도 해상풍력이다.

그래서일까 제주에너지공사는 마치 제주풍력발전공사인듯 굴러가고 있다. 모든 에너지사업이 사실상 풍력발전 하나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여러 가지 우려가 제기되는 해상풍력을 추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하지만 해상풍력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이성구 사장은 취임 이후부터 해상풍력은 제주도의 유전(油田)이라면서 이 사업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최근 제주지역 전력거래단가(계통한계가격, SMP)가 하락함에 따라 이전처럼 육상풍력발전사업에서 큰 수익을 얻기 힘들고, 육상풍력 보다 막대한 규모의 사업비가 투자되는 해상풍력사업은 경제성은 더욱 불확실하다. 원희룡 도지사 또한 지난달 말 TV토론에 출현해 해상풍력은 경제성이 없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더욱이 풍력이라는 한 가지 에너지에서 전기를 집중 생산하는 방식은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풍력발전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를 극복할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생산을 분산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풍력발전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태양광, 파력, 바이오가스 등 다양한 분야로의 신재생에너지 연구와 보급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제주에너지공사는 관련 조례에 따라 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이외에, 석유․가스․석탄 등의 생산, 수송, 분배, 판매, 그 밖에 이와 관련된 사업과 집단에너지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기술력과 에너지공사의 자본력으로 추진하기 힘든 해상풍력사업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제주도민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에너지수급을 위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LNG발전소 폐열 재활용 난방공급, CNG를 이용한 공영차량 연료충전, 한림화력발전소의 LNG 연료전환에 따른 잉여 유류탱크를 활용한 석유류 수급 및 비축사업, 집단에너지 사업, 동복․북촌풍력단지 인근에 조성되는 폐기물매립장 및 소각시설 등에서 나오는 폐기물자원을 이용한 에너지사업 등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 중 일부는 이미 2014년 3월 에너지공사가 수립한 중․장기 발전전략 수립 보고서에도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의 추진상황은 현재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제주에너지공사는 도약과 추락의 갈래길에 서있다.

이번 풍력발전기 화재의 대응과 사후대처를 통해 제주에너지공사의 민낯이 그대로 들어났다. 조직도 커지고 사업양도 늘었지만, 풍력발전기의 중대사고와 중고장에 대응할 능력이 전혀 없을 뿐 만 아니라, 사고에 대한 원인규명과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마저 져버렸다. 도민에 의해 설립된 에너지공사로서의 전문성은 고사하고 공공성과 공정성마저 완전히 놓아버린 것이다. 더욱이 이번 화재사고에 대해 제주에너지공사는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책임조차 지지 않고 있다. 그저 도민의 뇌리에 잊혀지길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이런 조직이 도민사회를 위해 필요한 조직인지 의문이 따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제주에너지공사가 이번 화재사고를 털고 일어 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다시는 이와 같은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제주에너지공사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풍력발전산업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부분들을 바로잡아 진정한 도민의 에너지공사로 돌아오는 일이다. 이마저도 해내지 못한다면 제주에너지공사에게 남은 일은 도민의 신뢰를 잃고 추락하는 일 뿐이다. 부디 이번 화재를 자성의 기회로 삼아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제주에너지공사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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