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

상영 전부터 화제를 독점했던 <70년 담화>는 8월 14일 오후 6시 개봉되었다. 역사에 남을 명작으로 남을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졸작으로 추락할 것인지 모두가 군침을 삼키며 주시했다.
 
기대와는 달리 결과는 명작도 졸작도 아닌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일관된 작품에 지나지 않았다.
제작, 연출, 감독, 주연이라는 1인 4역을 맡은 아베 수상의 개인적 정치 철학을 교묘하게 나열한 전시성이 돋보일 따름이었다.
 
관객들이 요구했던 <70년 담화>의 "침략" "식민지지배" "사죄" "반성"이 어떻게 반영될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주제 부여에는 "나 자신도 이것을 인정한다"가 아니고 "역대 내각이 인정해 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대로 따르겠다"는 수동적 자세로 일관했다.
 
"침략" "식민지지배" "사죄" "반성"은 아베 수상에게 있어서 금기였으며 트라우마였다. 무라야마담화나 고이즈미담화에서 명백하게 제시된 내용에 대해서 아베 수상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것을 부정하고 전후 <70년담화>에는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겠다고 강조해 왔다.
 
일제시대의 이러한 자학사관(自虐史觀)에서 탈피하여 전후 70년 동안 일본이 세계를 향한 평화주의와 국제사회공헌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예고편처럼 피력해 왔다.
 
이렇게 독선적으로 탈선하는 아베 수상의 <70년 담화> 비전에 대해서 새로운 <아베사관>도 좋지만 국제사회에서만이 아니고 일본 국내에서도 비판과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아베 수상은 지금까지 자기 언어로서 "침략" "식민지지배" "사죄" "위안부" "반성" 등 역사인식의 상징적 단어들을 국회 질의나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자신을 지지하는 보수 세력들의 왜곡적인 "자학사관" 탈피의 압력과 "역사수정주의"라는 객관적 역사인식 세력들의 비난 속에 <70년 담화>에 "침략" "식민지지배" "사죄" "반성"은 삽입 되었지만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이었다.
 
약 3천 3백자의 담화는 2백자 원고지 17매 정도인데 띄어쓰기가 별로 없는 일본어를 감안하면 한국어로는 약 20매에 가까운 한편의 수필 분량이다.  
 
"침략" "식민지지배" "사죄" "반성"이라는 4개의 단어들을 이 속에 전부 넣었다고 가슴을 펴고 있지만 주제에서 밀려난 들러리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들러리 자리라도 제공하느라고 노심초사한 문장력에 필자는 연민을 느꼈지만 수필로서의 울림도 없었다.  
 
A급 전범이었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수상이 미.일 안보조약을 체결하고 작은 외할아버지 사토 에사쿠 수상이 오키나와 반환으로 노벨평화상을 받고, 외무대신까지 역임하여 수상 자리까지 바라보던 아베 신타로 씨가 부친인 아베 수상의 가계는 전통 보수를 대표한다.
 
전통 보수 가계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아베 수상의 정치 철학은 어쩌면 당연한 노선일지 몰라도 이 협의적 시야에서 탈피하지 못한 것은 그의 <태생의 한계>를 다시 한번 노출 시킨 <70년담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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