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한라대 A 교수는 지난 21일 동부경찰서 사이버 수사팀의 조사를 받았다

'족벌사학'의 끊임없는 소송

제주도를 상대로 수백억원대 학교재산을 재단 소유로 바꾸게 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제주한라대학 재단(이사장 김병찬). 이번엔 총장이 동료 교수에게 소송을 걸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대학은 이사장과 총장이 부자지간(父子之間)으로 제주의 대표적 '족벌사학'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어 왔다.

제주한라대 총장(김성훈)은 지난 7월 같은 대학 소속 A교수에게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A 교수가 뜬금없이 제주동부경찰서 사이버수사대로부터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조사 건으로 출석 요구서를 받은 것은 지난 8월 초. 그는 담당경찰관과 면담을 하고서야 자신을 고소한 사람이 바로 자신의 대학 총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동부경찰서에서 A교수에게 보낸 출석요구서

이 대학 총장이 문제를 삼은 것은 A교수가 지난 학기 초 학과학생들에게 보낸 카톡의 일부 내용. A 교수가 카톡을 보낸 것은 같은 학과 B 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수업거부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의 카톡 내용에는 지난 몇 년간 극심한 내홍을 겪어 온 이 대학의 모든 내부적 갈등과 모순이 압축돼 있었다.

카톡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2013년 3월 이 대학 교수들은 총장의 전횡에 반발하며 교수협의회(이하 교협)를 발족시켰다. 같은 해 8월 이 대학 총장은 교협에 소속해 있던 B교수를 수업 중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구실로 이 대학 사상 최초로 교수직에서 해임시켰다. 그리고 B교수는 대학을 상대로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에서 완승을 거둬 교단에 복직했다. 

재판부는 "B씨가 사용한 수업교재에 일부 성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어 성적인 표현을 과하게 사용한 것으로 강의와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한 중앙 언론의 보도였다. 해당기사를 인터넷으로 찾아 봤다.

한 중앙 언론의 기사

“너 고자냐"…성희롱 발언 일삼은 교수 구제해준 법원”이란 제목부터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선정적인 제목이 언론의 정도에 벗어나 있었다. 재판에서 이긴 것은 B교수였다. 하지만 제목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바뀌어 있었다.

그 기사는 B교수는 배제한 채 대학 측의 주장만을 담았다. 총 15개 문장으로 이뤄진 기사였다. 이 중 재판부 판결문을 발췌한 10개 문장을 제외하면, 5개 문장이 모두 피고인 제주한라대 측의 법정 주장만을 인용해 그대로 나열하고 있었다. 대학 측 주장의 일부는 법정에서 증거로도 채택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 기자가 직접 사용한 단어들도 “성희롱 발언 일삼은”, “빈번히 성희롱”, “혐오감을 느끼게” 등 과장된 표현들이 많았다. 이에 대한 원고인 B교수의 반론은 전혀 묻지도 않았다.

그 기자는 수년간 심리에서 나온 재판부의 판결은 틀렸고 자신의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판단만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리고 판결문이나 제대로 읽어본 후 내린 판단일까. 기사가 불공정한데다 주관에 좌우됐다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잖아도 '갑을' 간 극심한 불평등과 불균형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 요즘 우리 사회다. 그것도 공적 감시의 무풍지대에 있는 지방 '족벌사학'임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곳에서는 다른 직장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교수직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취재했던 교수들은 자신들이 ‘을’의 처지에서 족벌체제의 엄청난 ‘갑’질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감수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학을 상대로 B교수는 지난 3여년에 걸친 법정 싸움으로 경제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도 심리치료를 받고 있을 정도다.

계속되는 소송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제주한라대 전경

상처뿐인 영광 그리고 치졸한 보복

판사로부터 결백함을 입증 받은 B교수. 그러나 그는 이 기사로 인해 여론으로부터 격려가 아닌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여론은 사건의 진실보다는 선정성에 더 관심을 가졌다. 알다시피 판사의 판결은 오랜 기간 철저하고 엄격한 심리를 거쳐 사실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법조문은 글이 딱딱해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상업성을 위해 대중적 기호에 논지를 맞추는 상업적인 언론의 기사가 대중에게는 더 호소력을 갖기 마련이다. 흔히 여론에서 진실과 거짓의 구별이 역전되는 한 이유다.

B교수는 인터뷰에서 “부당한 징계를 당했던 교수가 억울한가, 아니면 부당한 징계를 내린 대학 측이 억울한가”라며 반문했다.

이 보도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불똥이 튀었다. 학생들이 기사 내용을 이유로 B교수의 수업을 받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평소 시사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이 어떻게 이 기사를 알아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취재에 응한 한 교수는 “총장과 가까운 교수들과 교직원들이 계획적으로 학생들을 움직이지 않고선 있을 수 없을 일”이라고 단정했다.

수업을 거부한 진짜 이유

또 다른 교수는 수업 거부의 진짜 이유가 “깐깐하기로 소문난 B교수의 열성적인 수업에 학생들이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B교수는 미국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실력파 학자로 평가 받는다.

결국 A교수가 학생들의 설득에 나섰다. 총장이 교수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이나 다름없는 재임용권한을 쥐고 있는 사학의 현실에서 매우 위험스런 행동이었다. A교수가 학생들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에서 이 대학 총장이 문제 삼은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총장이 B교수를 해임한 진짜 이유가 성희롱발언이 아니라 보복성 조치라고 말한 것.
둘째, 총장이 아부하지 않는 교수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구실을 찾는다고 말한 것.
셋째, 문제의 보도 기사를 학생들에게 제공한 것이 학교로 추측한다고 말한 것.

A교수의 설득에 학생들은 주저주저하면서도 끝내 수업거부를 철회하지 못했다. B교수도 수업을 강행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당국의 지시를 받은 교직원들이 강의실입구를 철통같이 막아섰다.

총장의 자질

대법원에서의 최종 승소에도 불구, B교수는 이후 학교로부터 재징계를 받아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맡지 못할 예정이다. 또 교육자의 신념에서 비롯된 A교수의 용기도 결국 총장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총장은) 아부하지 않는 교수들에게 징벌을 준다”는 문제의 두 번째 사항을 사실로 입증해주고 있었다.

A교수는 지난 금요일(8월 21일) 동부경찰서 사이버 수사대에서 4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총장이 이 문제를 꼭 법정으로 갖고 가야만 했을까. 교수들은 대화의 의지도 능력도 없는 총장의 자질을 비판했다. 그들은 “앞으로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싸우면 경찰서에 끌고 가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관련 사안에 대한 총장과 대학관계자의 반론을 듣기 위해 연락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대학은 흔히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의 ‘아고라’(민주광장)라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대학만큼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족벌체제의 쇠창살 속에 가둬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우물 안 어느 개구리 가족의 한줌 권력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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