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세이고등학교가 우승을 했다니 그 학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일본 전국 고교야구 하기대회>에 오사카부 대표로 출전하게 된 "오사카 카이세이(偕星)학원 고등학교"는 일약 전국에 알려졌다.
 
"영광입니다. 이번 대회는 꼭 이긴다는 장담을 했습니다만 막상 실현되고 보니 떨릴 정도입니다. 이게 다 여러분들의 성원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명홍(金 明弘.61) 카이세이고교 이사장은 축하 말을 들을 때마다 만면에 웃음을 띄우면서 정중히 머리 숙이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김명홍 카이세이고교 이사장
<사진출처=http://eo.presidentfamily.com/tokushu/seigakusha/>

<일본 전국 고교야구대회>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시합 중의 하나인데 3월 말에 열리는 춘기와 8월 초순에 개최하는 하기대회가 있다.
 
춘기대회는 전년도 각 지방 추기대회 성적을 참고로 고교야구협회가 선발하고 하기대회는 각 지방대회에서 우승한 학교만이 참가할 수 있다.
 
오사카부의 지방대회는 격전지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곳이다. 전국 우승을 몇 차례나 재패한 강호교들이 즐비해서 사실상의 전국 결승전이라고 불리울만큼 주목을 끌었다.
 
올해의 오사카부 하기대회는 모두 180개교가 참가했는데 강호교들을 물리치고 카이세이고교가 당당히 우승을 했다.
 
1929년에 설립한 카이세이고교는 현재 재일동포 최대 밀집지인 이쿠노구(生野區:전체구민수 약 12만 9천명 중 재일동포가 약 2만 5천명)에 있는데 이쿠노에는 고등학교가 모두 6개교가 있다.
 
여자고교와 야간학교를 빼면 4개교인데 이쿠노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카이세이고교의 우승은 카이세이고교라는 하나의 사립학교의 쾌거만이 아니다. 이쿠노의 지역주민인 재일동포의 영광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민단을 비롯한 재일동포사회 제단체들의 슬로건 중에 "공생. 공영(共生. 共榮)"이라는 단어는 빠질 수 없는 필수 단어이다. 공생 공영은 동포들의 생활문화의 기본 이념이다. 이 기본 이념에는 일본사회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이라는 것도 부정 못할 사실이다.
 
동포 최대 밀집지인 이쿠노에서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오사카부 대표로 야구의 성지인 코오시엔(甲子園)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동포사회의 "공생. 공영"의 상징성을 크게 부각 시킴과 동시에 수동적 이념이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능동적 개념으로 전환 시켰다. 받는 공생. 공영에서 주는 공생. 공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생도 모집의 부진과 경영자 문제 때문에 경영난에 빠져서 저에게 후계 요청이 있었습니다. 재일동포가 제일 많은 이쿠노에 있는 사립학교라는데 친근감을 느끼고 사설학원 경영에 있어서 (교실 개설) 도움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도 갚을 겸해서 인계 받았습니다."
 
5년 전인 2010년 카이세이고교 이사장으로 취임한 김 명홍 씨의 술회였다. "일본 학교 이사장에 외국 국적인 예는 미션스쿨에 외국인 신부나 목사, 수녀들은 있지만 한국 국적으로서 한국계 민족학교가 아닌 일본 일조교(一條校. 학교교육법 제1조) 이사장은 저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일본 교육계에 스스로 몸을 담고 수동적 자세에서의 공생. 공영을 능동적 자세로서의 역발상에서, 교직원(교장 카지모토 슈우지:梶本 秀二)과 한국 인천 "태평양 돌핀스" 구단에서 1년간 활약했던 야마모토 세키(山本 晳) 야구감독과 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카이세이고교를 취임 5년만에 오사카부 대표교로 성장 시켰다. 
 
이것은 하나의 사립학교에 불과하다는 김 이사장의 겸손과 협의적인 개념에서 탈피해서 재일동포사회가 광의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공생. 공영을 확립 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코 동포사회가 아전인수격인 "우리들만이 사회"가 아니고 일본사회 특히,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일본 교육계에 새로운 시각에서 재일동포가 공헌했다는 상징성에 큰 의미가 있다.
 
김명홍 이사장은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이 본적지이며 부친 故김창오(金 昌五) 씨, 모친 故오무송(吳 茂松) 씨 사이에 4남 2녀의 막내로 오사카시에서 1954년에 태어난 2세이다.
 
쿄토 리츠메이칸(立命館) 경제학부를 1976년에 졸업하여 1982년에 오사카부 토요나카시(豊中)에서 <카이세이(開成)교육세미나>라는 사설학원을 설립했다.
 
그후 오사카부를 중심으로 쿄토, 나라현(奈良), 효오고현(兵庫), 시가현(滋賀)과 토쿄에 진출하여 1987년 1월에 주식회사 <세이가쿠샤:成學社>를 설립하여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2008년 "토쿄증권거래소JASDAQ"에 상장했다.
 
"저는 아버지로부터 인생과 일에 대한 마음 가짐과 기본예의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있어서 은사이며 제주인으로서 기질과 미풍을 배우고 근면, 견실, 검소면에서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양식과 도덕성을 겸비한 훌륭한 경영자였지만 저에게는 상인이 되는 것보다 고육으로서 사회에 공헌 할 것을 원했었습니다. 제주도의 역사와 아버지의 존재가 없었다면 제가 교육의 길로 나가지 못했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야구대회에서는 아깝게 2회전에서 패했지만 확고한 신념 속에 교육자로서 외길을 걸어온 그는 일거에 천여명의 재학생이 있는 카이세이고교의 위상과 지명도를 전국대회 출전으로 높혔다. 
 
"전국대회 출전 후, 학교에 대한 평판이 아주 좋습니다. 특히 선수들의 가능성을 자상한 인간교육을 통하여 키워 온 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별처럼 빛나게 하는 것이 교명(校名)에 들어있는 본교의 이념이며 이것을 야구에 의해 실증 시킨 것이 아주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진학 교육과 스포츠 교육의 양면에 있어서 일류 사립학교로 발전 시키고 싶습니다."
 
대학 시절 <한국문화연구원>에 속해서 동포 학생들과 공동학습과 그후, 독학으로 배운 유창한 한국어는 듣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동포사회단체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현재 "민단오사카본부 부단장",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오사카 한국상공회의소 고문". "관서제주특별자치도민협회 고문" 등을 맡고 있으며, 일본단체에서는 사단법인 내각총리대신인가 "일본청소년육성협회 이사", "학교법인 리츠메이칸협의원","재단법인 카이보리(海堀)장학회 평의원" 등을 맡고 있다.
 
외국인으로서 일본 사립학교 이사장직을 맡고 애로 사항은 없느냐는 물음에는 학교교육법에 의거하여 학교 운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사장이 외국인이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으니까 일본인과 다름없다고 한다.
 
"재일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학교 교육을 통해서 일본사회발전에 기여함으로써 다문화 공생의 국가 형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포사회에 새로운 차원의 가능성을 보여준 김명홍 이사장의 교육관에 동포사회는 물론 일본교육계에서도 주시하고 있다. 2014년 7월에는 한국 경북고등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일본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일본어로 "우치나루코쿠사이카:内なる国際化"라는 말이 있다.
 
"안에서의 국제화"라는 의미이다. 일본이 외국에 나가서 하는 국제화도 좋지만 일본국내에서도 재일외국인에 대한 폐쇠적인 정책들을 완화 시켜 국제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김 명홍 이사장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것은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도 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의 가족은 재일 2세인 부인 박 귀미(朴 貴美. 본적지 경북 월성군) 씨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고 결혼한 장녀에게 외손녀가 하나가 있으며 장남과 차녀는 서로 다른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돌아가신 양친의 산소는 재일동포사회에서 유일한 종친회 공동묘지를 운영하는 <광산김씨 종친회전용영원:靈園> 묘지가 있는 나라현 이코마군 헤그리쵸(生駒郡平群町)에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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