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공운수노조  

 국장 오한정  

임금피크제를 해야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

“50세가 넘으면 업무능력이 떨어진다!” 이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만58세인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 말이다. 노동부장관의 말을 좀더 노골적으로 풀이하면, ‘업무능력이 떨어지니까 50대 이상은 원래 해고해야 한다. 그래도 불쌍하니까 해고를 안하는 대신 임금을 깎자’는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와 자본은 사상최악의 실업률에 고통받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업무능력도 떨어지는 주제에 고액연봉을 받아가는 50대 노동자들 때문에 좋은 청년일자리를 만들 돈이 없다. 그러니까 좋은 청년일자리를 만들려면 50대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야 된다’고 선동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이 연일 국민혈세로 광고를 때리면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이라고 내세우는 임금피크제이고, 노동시장 구조개악이다.

사상최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노동자 착취의 결과물

노동소득분배율이라는 것이 있다.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당연히 노동소득분배율이 높을수록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이 커지고, 낮을수록 기업이 가져가는 몫이 커진다.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은 2012년 OECD 통계에 의하면 43.5%로 32개국 중 24위다. 그만큼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주어야 할 몫을 덜주고 자신들은 많이 가져갔다는 의미다. 최저임금을 강요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통상임금을 축소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그 방식도 다양하다.

그 결과로 돈이 없어 일자리 창출을 못한다는 기업의 곳간에는 오히려 역대 최대의 사내유보금이 쌓여있다.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만 700조원이 넘는다. 이돈의 1/5만 써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45만 청년실업문제 해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전부 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작년 9월 대법은 현대자동차에게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노동자 8,000여명을 직접고용해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드는 돈이 2,600억원 정도다.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이 돈이 없다고 대법판결까지 무시하면서 아직까지 직접고용 정규직전환을 회피하고 있다. 명백한 불법이지만 정부는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으면서 봐주고 있다. 2,600억원이 없어서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했던 현대자동차가 감정가 3조 3346억원에 불과한 한전부지는 무려 3배가 넘는 10조 5500억원을 들여 매입했다. 쓸데없이 땅 사는데 무려 7조원이나 더 썼던 것이다. 그리고 그 7조원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착취해서 벌어들인 돈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자본은 이런 사실을 애써 숨기면서 노동자에게 청년실업의 책임을, 비정규직 확대의 책임을, 최저임금의 책임을 모조리 떠넘기고 있다. 왜냐고? 그렇게 해야 더 많은 착취를 할 수 있고,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 반대하는 정부와 자본

일자리 창출은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자 의무라는 것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와 자본은 일자리 창출이 정부와 기업의 역할과 의무가 아니라 노동조합과 정규직 노동자의 역할과 의무로 왜곡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은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신규채용 규모를 늘리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자본은 권력으로부터 특혜를 받을 때마다 내세웠던 고용창출 약속을 단 한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일자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공공기관 일자리를 공공부분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대규모로 없애버린 것이 바로 정부다. 정부의 통제를 받는 공공기관에서는 정부의 정원제한, 총액인건비 제한 때문에 신규고용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공공기관보다 신규채용을 훨씬 적게 했다는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도 나왔다. 좋은 일자리는 제한하고, 나쁜 일자리 늘리기에 데 앞장선 것이 바로 정부다.

왜 자본가들에게는 임금피크제를 적용하지 않나?

얼마 전 심상정 의원이 국정감사 질의 때 “5~6천만원 받는 늙은 노동자들 임금은 삭감해야 한다고 하면서 왜 장관들은 1억2천만원 다 받아가고, 국회의원들은 왜 1억4천만원 다받아가냐”며 노동부장관을 질타한 적이 있다. 노동부장관의 말대로라면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의 대다수가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50세 이상인데, 왜 그들은 임금피크제 대상이 아닐까? 2014년 평균연령이 53.5세이고, 2012년 기준 평균연봉이 11억 6413만원인 100대 기업의 임원들은 왜 임금피크제 대상이 아닐까? 이들 6,928명의 임금만 해도 6조원이 넘는다. 이들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면 연봉 3천만원 짜리 청년일자리를 최소 10만개는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임금피크제는 오히려 이들에게 적용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정규직을 겨냥한 분노를 정권과 자본에게 돌리자

정부와 자본은 보수언론을 앞세워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을 노동자와 예비노동자의 투쟁으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투쟁으로 교묘하게 왜곡해버렸다. 이제는 도대체 누가 사장이고 누가 노동자인지도 모를 판이다. 싸워야 할 대상과는 손을 잡으면서, 정작 연대해야 할 대상에게는 분노의 화살을 날리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가장 심각한 민생현안인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문제, 최저임금의 문제는 끊임없는 자본의 탐욕과 무한착취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온갖 불법ㆍ탈법으로 노동자를 착취해서 벌어들인 사상최대의 사내유보금을 곳간에 쌓아둔 재벌과 이를 비호하는 정부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 나누면 청년실업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사용사유만 제한해도 비정규직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 재벌들의 곳간에 쌓인 사내유보금을 환수해서 좋은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에 쓰도록 강제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자본은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대안은 놔둔 채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임금피크제, 취업규칙 일방변경, 쉬운 해고제, 통상임금 축소,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강행해 더 많은 비정규직,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청년실업을 강요하고 있다. 이제는 정규직 노동자를 향했던 분노의 화살을 정부와 자본에 돌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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