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친구 생태텃밭 오연숙

집 전체가 들썩거리는 심한 바람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희미한 새벽이 창가에 기대어 내방을 엿본다.
'섬 하나 산 하나' 모 선배의 판화 문귀처럼 망망한 대해에 외로이 떠있는 섬.

해상왕국으로서 맹위를 떨치다 한반도에 귀속되고 한때는 200년간 출륙 금지령이 내려졌던 곳.
보롬코지 빌레왓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자긍심을 갖기까진 참으로 모진 바람이 많이 불었던 섬에 며칠째 바람이 분다.
시계보다 몸이 먼저 시간을 아는지 알람보다 일찍 깼나 보다. 최대한 작게 맞춘 알람소리도 방안 가득 울린다.
핸드폰 알람을 옆으로 밀어 재워 놓고 일어날까 말까 망설이다 다시 이불속으로 쏘옥 들어간다.
고치처럼 이불을 반쯤 말고서...
그루잠(깼다 다시 자는 잠)이 주는 평화로움~

아... 근데 이놈의 바람~!
이불을 귀 위로 올려 덮어도
지축을 흔드는 바람...!!!
전깃줄을 악기 삼아 위이이잉~~~~
안되겠다 ... 텃밭 애들도 걱정되고 소변도 볼 겸 후다닥 이불을 젖히고 바지랑 모자달린 파커를 챙겨 입고 문 밖으로 나선다.
점점 지구온난화 현상때문에 이상기후가 자꾸 발생하고 이번 겨울은 더 유래 없는 엘니뇨현상으로 따뜻한 겨울이 지속되고 연일 비가 와서 작물들이 썩고 병충해가 극성이다.
그러다 간만에 겨울다운 추운 바람이 분다. 추위는 싫지만 "혼번 와싹 추워나사 내년 농소에 조은다"
어른들 말씀이 생각난다.그래... 병충해 걱정도 덜려면...추위를 받아들인다.
눈이 온다 해도 기쁠 것 같은 농사꾼 맘이다.
이 바람은 하늬보름(주로 겨울철에 많이 부는 북서풍 찬바람)이라 부르는 아주 지독한 놈이다. 머나먼 바다를 건너와 지칠 법도 한데 드디어 뭍을 만나니 심통 부리듯 거칠게 휘몰아친다.
빌레동산 위 까마귀쪽낭 가지를 흔들고 뼈만 앙상히 남은 억새 손끝을 잡아채고서 고망 배롱배롱한 제주 밭담 사이를 빠져나와 내 허락도 없이 우리 텃밭을 마구 마구 휘젓고 있다.
진한 붉은색의 적갓과 적겨자는 바람의 생채기로 흰 얼룩이 져서 못쓰게 됐고 묶어놓은 월동배추도 배춧잎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뿌리를 흔들면 영락없이 죽을 판인데 덩치가 크기에 다행이다.
겨울을 감지한 어린 애기배추나 봄동 배추 들은 다른 계절에는 하늘 향해 날아오를 듯 잎을 벌리다가 이 계절엔 다들 납작 땅에 붙어 바람을 피하니 이 작은 식물들의 지혜가 놀랍다~

반면 추워야 당이 오르는 브로콜리와 비트는 잎이 짙다.
보리밭은 싹이 푸릇푸릇 잘 자라고 한 담 넘어 윗 밭에 심은 양파 밭도 파랗게 잘 자라고 있다.
먼저 심은 곳은 벌써 키가 차이 난다.
늦게 심는 토종 고추는 11월까지 가지가 휘어지게 달려서 참 맛나게 먹었는데 늦가을 텃밭 정리할 때도 매우 싱싱해 몇 그루 남겨뒀었다 고추 뒷그루에 정식한 토종배추는 이제 손바닥 만하게 컸고 앙상한 고추나무에 빨갛게 말라가는 고추들도 어여쁘기만 하다.
두어개 따서 찌개에 넣어볼까 당겨보니 질기다.
마지막 잎 새처럼 끝끝내 버텨서 겨울을 날듯이 한 손으론 안 돼 두 손으로 공손히 딴다.
죽은 가지조차도 꺾을 땐 아플까 미안하고 고맙다.

내친김에 무도 한 뿌리, 쌈배춧잎도 열댓 잎 땄다. 농사짓는 과정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이것으로 뭐해 먹을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기쁘다.
"어~! 저건 부추~? 어떠난 야이가 죽지 안행 살아 이시니~??? "
반갑다. 하우스 앞 남쪽에 키 작은 포리롱헌 부추가 모드락허게 보인다.
‘요걸루 굴국밥이나 해먹으카, 그렇치 굴도 제철이구 마트강 굴이영 두부 상 와사켜~^^'

사진제공=오연숙

그리고 그날 저녁...수선화 심고 깻잎 따서 공판장 내치고 귤 20개를 기술센터 갖고 가서 당산도 측정하고 왔다 갔다하니 벌써 날 저문다.
"쫄랑한 겨울 해 작대기 바투라"
해 받힐 작대기가 없길 다행이다.
또똣헌 밥 행 먹고 쉬어야지

사진제공=오연숙

예상치 못한 반가운 얼굴~
달려와 (내 작은 키에 맞춰 덥석 )품에 안기는 아들이닷~!
마지막 휴가를 포상특박 받아서 하루 일찍 나왔단다. 된장국에 김치만 내도 맛나게 먹어줄 아들 (당연 엄지 척~!)
"야~~~ 역쉬 엄마 밥이 최고!"
꿀처럼 맛나게 먹었다~♥

이제 마지막 휴가 11일 지나면 제대 하고 바로 복학 예정이구 딸도 대학 입학해야 된다. 우리 인생의 겨울인 최대 경제난 시기이다.
어쩌나...
고3 딸도 시험 끝나자 바로 알바중이고 아들 휴가기간도 알바 구하겠단다.

모든 겨울을 견디는 것들은 몸속에 봄을 예감한다.
어쨌거나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볼 일이다.
텃밭에 자라는 푸르른 생명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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