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번째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아빠다. 첫째 아이 '윤슬'이 때는 1년 육아휴직을 했고, 둘째 아이 '은유'와는 4개월째 육아휴직 중이다. '은유'는 이제 18개월 된 남자아이다. 3월이 되면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고 나는 해방(?)이다. 솔직히 3월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새벽 두 시, 잠자러 가야할 시간이 아니라 막 잠에서 깼다. 아이 둘 다 자주 내 옆에 붙어서 잔다. 둘째 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아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잔다. 일찍 잠들면 괜찮지만 늦게 잠드는 날은 고문이 따로 없다. 첫째는 자주 팔베개를 해달라고 한다. 머리 내주고, 팔 내주고 자다보면 "이 놈들 언제 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여하튼 세 남자가 엉켜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일이 부지기수. 조금 전에는 머리 세 개가 한 베개를 나눠썼다. 답답해서 잠이 깼다. 첫째 아이라도 엄마 옆에 가서 자면 좋으련만, 오늘은 엄마에게 혼이 나서 그럴 리 만무하다. 

나는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는 늦게 잠자리에 드는 편이다. 아이들 재우고 난 밤이야말로 하루 중 유일한 자유시간이다 보니 밀린 드라마를 보다든지, 맥주를 마신다든지 하면서 놀다가 늦게 잔다. 그러다보면 남자 셋이서 늘어지게 늦잠을 잔다. 나마저 복직하고 나면 매일 전쟁 같은 아침이 될 테니까, 지금이라도 여유 있게 아침을 보내자고 스스로 위안을 하고 있다. 아내는 남자 셋이서 출근할 때까지 방에 엎드려 자는 일이 빈번하니까 아예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의도하지 않게 아내 건강까지 챙겨주는 남편이 됐다. 사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이 둘 아침밥 차려주기, 첫째 아이 어린이집 등원 준비하고 승용차로 데려다주기 등 아침부터 쉽지 않다. 둘째 돌보고,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는 금방 가고 곧 첫째 어린이집 하원 시키러 가는 시간이 된다.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신없이 지나간다.

보물섬 어린이집에서 형들이랑 놀고 있다. 이미 어린이집 적응은 반쯤 마친 셈이다. <사진제공=박진현>

첫째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보물섬'이다. 둘째도 3월부터 다닐 예정이다. 매일 아빠와 형을 따라 '보물섬'에 가다보니 벌써 적응은 마친 셈.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부모에게 열려있다. 다른 어린이집은 부모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지만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내 집처럼 드나들 수 있다. 둘째는 보물섬 이곳저곳을 이미 탐색했고, 심지어 보물섬에서 놀기를 좋아한다. 보물섬 아이들도 은유를 다 알고 있고, 귀엽다고 쓰다듬는다. 더 놀고 싶다고 우는 둘째를 강제로 차에 태워 집으로 오는 경우도 흔하다.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하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휴직이라는 단어가 주는 '직장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이라는 환상이 있지만, 현실은 '육아의 굴레에 속박당해 나는 없는 시간'이다. 출근도 퇴근도 없다. 게다가 아빠는 육아휴직을 하면 '외톨이'가 되는 게 십상이다. 엄마들처럼 육아의 고단함을 나눌 동지도 없다. 학교와 사회는 육아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사실 학교와 사회는 육아뿐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은 그 어느 것도 가르쳐 주지 않지만). 첫째 아이 육아휴직을 1년 하고 복직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잘 쉬고 왔냐"였다. 1년 동안 육아전쟁을 벌이고 온 사람에게 "잘 쉬고 왔냐"라니. 현실이 이렇다보니 어떤 준비도 없이 육아를 시작했다 낭패를 보는 아빠가 한둘이 아니다. 나 역시 첫째 육아휴직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고, 지겨웠고, 우울했다. 군 제대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시간이 안 갔다. 처음 하는 전담육아였기도 하지만, 아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기 전까지는 주로 아이와 둘이서만 보냈기 때문이다. 

 

얼마전 은유랑 자연사박물관에 놀러갔다. 아이는 새와 동물들을 보고 무척 즐거워했다. <사진제공=박진현>

지금은 좀 다르다. 제법 바쁘다. 제주에 와서 내가 일하는 곳이 주부들이 대다수인 한살림이다 보니 낮에 이런저런 모임들이 있다. 또 다들 아이 키우는 엄마라서 "잘 쉬고 있(왔)냐"라는 소리보다는 "고생이 많다"라는 격려를 받는다. 둘째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의 한살림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원래는 아내가 참가하다 복직하고 나서는 내가 바톤을 이어 받아 참여하고 있다. 제주 남자랑 결혼한 제주토박이 여자, 미국 남자와 결혼한 제주토박이 여자, 제주 남자와 결혼한 육지 여자와 캐나다 여자, 미국 남자와 결혼한 육지 여자, 부부 둘 다 이주민인 육지 여자 그리고 청일점인 나까지 포함해서 정말 각각 다른 7,8명이 또래 아이를 키운다는 공통점에서 매주 모임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각자가 반찬을 만들어 와서 서로 나누기 시작했다. 덕분에 밑반찬 만들기 실력도 늘었고, 반찬 걱정도 덜었다. 3월이면 대부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나서도 모임을 이어가자고 얘기를 하고 있다. 지금처럼 반찬을 나누는 것은 기본, 아이 키우면서 닥치는 현재와 미래의 어려움, 교육 문제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고민도 나누는 '엄마'모임을 계속 할 계획이다. 


육아휴직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어느 방송국 다큐프로그램 작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는 사람을 찾다가 전에 내가 쓴 글을 보고 연락하게 되었다면서 몇 번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했다. 지금은 연락이 오지 않아 방송국 측에서 촬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몇 번 전화 인터뷰를 해도 묻는 게 같았다. "나만의 특별한 아빠 육아 노하우가 있습니까.",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그 프로그램 측에서는 나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바란 모양이다. 내가 육아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유명인도 아닌데 말이다. 내 대답은 "나는 지극히 평범하다"였다.

일상에 특별함이 없듯이 육아에도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오늘은 아이 뭘 먹일까 고민하고, 실컷 만들어 준 밥 안 먹는다고 씨름하고, 하루에 몇 번은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아이랑 바람 쐬러 나들이 가고, 아이가 낮잠 잘 자주면 아이가 무척 고맙고 예쁘고, 아이가 갑자기 열나고 아프기라도 하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아내가 야근하면 너무 싫고... 아이 키우는 즐거움도 있지만, 독박육아를 하면 엄마든 아빠든 할머니든 이 일상이 힘들어도 너무너무 힘이 든다. 인류는 수만 년 전 부터 가족공동체가, 마을공동체가 아이를 함께 키워 육아의 어려움을 나눴다. 이제는 그것이 없어졌다. 지금 육아의 특별함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해왔던 아이 키우는 지혜를 잊었다는 데 있다. 마을공동체가 없어진 핵가족시대에 이제는 사회가 육아의 어려움을 함께 나눠야 한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구호만 난무하지 대통령 공약인 무상보육마저 위기에 처해 있는 형편이다.

요즘 북유럽으로 이민을 가는 사람이 많다는 기사를 봤다. 복지가 잘되어 있어 삶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국민들이 1930년대 사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면서 복지국가의 초석을 이뤘다. 스웨덴 국민들이 사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배경에는 저출산 문제가 있었다. 1930년대 스웨덴은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저출산 문제가 심각했다. 보수진영은 가정을 중요시 하지 않는 사회문화와 문란한 성관계, 낙태 등을 문제 삼았다. 이때 사민당은 "예방적 사회정책"이라는 개념을 국민들 앞에 내놓는다. 사민당은 저출산 결과만 놓고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아 교육,주택,보육 그리고 여성노동의 증가 등 산업화로 인한 사회문제로 바라봤다. 1930년대 스웨덴은 씻을 수 있는 수도시설이 있는 주택이 10가구 중 2가구 밖에 안됐다.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로 노동자, 국민들이 누리는 생활의 질은 형편없기 짝이 없었다. 스웨덴 사민당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방적 사회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 정책이 보편적 복지개념으로 이어졌고, 스웨덴 복지국가를 이룬 원동력이 됐다. 우리 사회는 이와 비교하면 암울하기 그지없다. 작년 11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아기를 많이 낳는 순서대로 여성 비례공천을 줘야 하지 않냐라는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그런 사람이 국민들에게 180석을 달라고 호소하고 있어 뻔뻔하기도 하지만, 무서운 것은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는 지인의 귤 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귤을 땄다.
딴 귤을 옮기기 위해 수레를 가져오자 두 아이가 먼저 냉큼 올라탔다.
<사진제공=박진현>

얼마 전 SBS에서 한 '엄마의 전쟁'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 키우는 어려움을 다룬 내용이었다. 공감 백배였지만, 부러웠던 것도 있었다. 1부에서 나온 두 부부 다 친정엄마든 시댁엄마든 도움을 어느 정도 받고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올곧이 우리만의 힘으로 육아를 하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장면이었다. '엄마의 전쟁' 1부에서는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라는 고민을 한다. 아빠는 그런 고민에서는 일단 열외다. 우리 집에서는 좀 반대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아내가 진지하게 "자기가 집에서 살림할래?"라고 물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도 했지만 전업주부가 되지는 않기로 했다. 나 역시 아빠이면서도 남자이고 사람이다. 아이와 가족을 사랑하지만, 자아실현의 욕구 역시 억누르기 힘들다.

첫째 윤슬이는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 사랑해 아빠"라는 말을 자주 한다. 윤슬이 작년 생일 때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받아 온 생일축하 카드를 봤다. 대부분 내용이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 "우리 집에 놀러와"였다. 아이들에게 "같이 논다"는 것은 단순히 노는 게 아니다. 노는 즐거움과 함께 관계를 배우고, 사랑을 느끼는 시간이다. 우리 사회는 엄마, 아빠가 아이와 놀아주기 힘든 사회다. 엄마, 아빠가 아이와 같이 놀아줄 수 없는 사회는 스스로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빌헬름 라이히는 인간내면의 정서적 사막이 자연의 사막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인간내면의 정서적 사막의 뿌리는 갓난아기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빌헬름 라이히는 "갓난아기들에 관심을 집중하고, 인간의 주의를 사악한 정치에서 돌려 아이에게 향하게 하자"고 촉구했다.  

4월부터 복직을 하면 맞벌이 부부로 육아전쟁을 치러야 한다. 7살 남자아이지만 텃밭과 낚시를 좋아하고, TV 여행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윤슬이. 이런 아이를 위해 따뜻한 제주의 봄이 오면 주말에 캠핑을 시작할 생각이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라 온전히 모든 시간을 너희한테 쓰지 못해 미안하지만, 너희들이 좋아하는 쉬는 날이 오면 오전에는 텃밭에서 야채를 따고, 낮에는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하고, 밤에는 한라산을 비추는 별을 보면서 숲에서 놀 생각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별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윤동주님의 시처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을 할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주면 좋겠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큰 동지가 되고 있는 한살림 육아사랑방 참가자들<사진제공=박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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