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개월 유아를 둔 부모가 영유아검진을 받기 전, 작성해야 하는 문진표와 발달검사지. 총 50문항이 넘는 질문들이다. 영유아검진은 의사 자체의 검진이 아닌 이 문진표와 검사지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상희 기자

부족한 지정병원, 3개월전 예약은 기본

검진은 5분이면 끝 '낮은수가-보여주기식 행정' 요인 

35개월 아이를 둔 A씨는 열 곳이 넘는 병원에 '영유아검진 예약' 전화를 거는 중이다. 집근처 소아과는 이미 6월 9월까지 예약이 찼다. 종합병원도 마찬가지. 아직 영유아검진 대상 기간이 1개월이나 남았지만 A씨는 미리 예약하지 못한 자신의 부모자격을 탓하게 된다. 그렇게 애타게 예약하고 받는 검진은 고작 '5분'도 안 돼 끝날 뿐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말이다.

생후 4개월~71개월 사이에 10차(영유아검진 7차, 구강검진 3차)에 걸쳐 받게 되는 영유아검진. 보건복지부의 출산지원 정책으로 영유아의 발달특성에 따라 시기별로 누구나 무료로 검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제주지역 영유아검진 대상자 2만9258명 중 검진을 받은 영유아의 수검률은 68%. 3명중 1명은 검진을 받지 않았다.

>검진 대상자에 비해 부족한 지정병원

지난해 말 기준, 제주지역 영유아검진 대상자 수는 2만9258명. 그러나 이들이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영유아검진 지정병원은 제주시 29곳, 서귀포시 10곳 뿐이다. 지정병원의 수를 늘리겠다고 보건복지부가 몇해 전부터 얘기했으나, 일년에 한 두 곳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해 영유아검진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은 정체 상태다.

게다가 대부분의 병원들은 하루 중 지정 시간을 따로 정해 예약을 받는다. 제주시 A병원의 경우 오전 1시간 오후 1시간에 나눠 총 4-7명의 영유아 검진을 한다. 물론 해당 시간내 일반진료도 함께 받는다. 예약을 받는 병원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방식이다. 제주시내 지정병원들을 대상으로 전화한 결과 예약을 따로 받지 않고 당일 접수를 받는 병원은 10곳도 안 됐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주말 이용이 필수인데, 가능한 곳은 제주시 4곳, 서귀포는 2곳 뿐이다. 때문에 주말예약이 제일 먼저 차고, 당일 접수하는 인구보건협회 등의 토요일 오전시간은 영유아검진을 받으려는 대기자가 만만찮다.

>예약 6개월전, 검진은 단 ‘5분?’ 하나마나...

그렇게 어렵게 예약하더라도, 영유아검진은 단 ‘5분’도 안 돼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10개월 아들의 영유아검진을 받았다는 B씨는 “엄마들 사이에서 검진 잘한다고 인기 있다는 소아과에 한 넉 달 전에 예약을 미리 했다. 그런데 검진은 정말 별것 없더라. 미리 작성한 문진표, 발달지를 간호사가 미리 의사에게 주면 의사는 한번 쭉 보고는 [이것저것 먹이지 말고, 이것저것 조심하세요. 잘 크고 있습니다.] 몇 마디 얘기하고는 끝이었다. 허무했다”며 “특별한 병이 없더라도, 검진이라는 게 의사랑 상담하는 기회를 얻는 것인데 질문도 제대로 못 하겠다는 게 대부분의 부모들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에서 전액 지원하는 영유아검진은 시기를 놓치면 1만원 가량을 따로 돈을 내고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돈이 아까워서라기보다 ‘제때’ ‘의사’와의 면담을 얻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이 크다.

>낮은 수가? 1명당 2만7130원

따로 시간을 정하고, 하루에 몇 명 안 되는 영유아를 받는 병원의 사정은 ‘낮은 수가’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2016년 3월 현재 기준 첫 검진을 받는 1차(생후4개월~6개월) 영유아 검진 수가는 2만530원, 2차부터 7차까지는 원아 1명당 2만7130원이다.

건강보험공단 제주지부 관계자는 “수가가 낮은 편은 아니다. 매해 일정부분 인상된 금액이고, 이 금액에는 영유아검진에 소비되는 대략의 시간과 의사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포함된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오죽하면 ‘영혼 없는 영유아검진’ 이라는 말이 나올까 싶다. 키와 몸무게가 또래 아이들 중 몇 퍼센트에 포함되는지 보여주는 결과지 말고 검진에서 얻은 게 없다.”며 “아무리 여러 아이들을 검진한다 하더라도, 그 아이들은 생에 딱 그 주기에 받아야 할 검진을 처음 받는거다. 의사들이 좀 더 성의있게 영유아검진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질을 높이지 못한다면 하나마나한 ‘영유아검진’은 지속될 것이다. 수가를 올렸다고는 하지만, 의사들 입장에서는 다르다. 부모들이 원하는 상담을 다 하고 시간 2-30분씩 채우며 2만 7천원대의 수가를 받는 것은 또 어려운 입장이기도 하다. 현실적인 수가를 세우고, 지정병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갖추는 등 행정에서 먼저 기본토대를 갖춰야 영유아검진에 대한 지적을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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