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벚꽃들은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무엇이 그리 좋아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가

 

좀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깔깔대는 웃음으로

피어나고 있다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기쁜지

행복한 웃음 피어난다‘

 

토요일(2일)엔 꽃길을 걸었습니다.

용혜원의 시 ‘벚꽃’ 소절들을 떠올리며 걸었습니다.

제주시 신제주에서 삼양동 방면의 연삼로 어간(於間), 양 켠으로 줄지어선 벚나무 가로수에는 잘 튀긴 팝콘처럼 자락자락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어났습니다.

까르르 까르르 하얗게 눈부신 웃음들이 왁자하게 구름처럼 피어났습니다.

봄볕은 부드럽고 솜사탕처럼 달콤했습니다. 살짝 스치듯 볼을 간지럽히는 봄바람은 겨우내 잠자던 감성을 일깨웠습니다.

4월의 첫 번째 주말, 제주의 봄은 그렇게 눈부신 햇살과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바람을 타고 달려왔습니다.

하얀 꽃향기에 묻어 향기롭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제주에는 시방 지천에서 꽃잔치가 한창입니다.

병아리 솜털 같은 노오란 개나리꽃은 눈웃음치며 재잘거리고 있습니다.

겨울 동안 한 겹 두 겹 속살 여미던 목련꽃은 아미(蛾眉)고운 여인의 자태처럼 농익어 하얗게 살이 올랐습니다.

무슨 사연 저리 많아 벚꽃은 자지러질듯 한꺼번에 꽃망울 터트리고 머리 젖혀 호들갑일까요.

‘순결’이나 ‘절세미인’을 상징하는 벚꽃의 꽃말처럼 순결한 평화가 나무를 감싸고 아름다운 꽃무리로 웃음짓는 것일까요.

꽃샘추위를 이겨 화사하게 봄날을 열고 봄비에 젖어 홀연히 떠나는 잠깐의 만남과 오랜 이별의 안타까운 몸짓일 수도 있겠지요.

참으로 오랜만에 꽃 멀미 일으킬 듯 한 꽃그늘에 취해, 그 사이를 비집고 쏟아지는 눈부신 봄빛에 취해,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는 봄날이면 그대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시인의 노래처럼 두근거리는 이 주책은 어인 일일까요.

꽃은 사람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봄꽃은 더욱 그러하지요.

꽃의 매력은 아름다운 침묵에 있다고 합니다.  말없이 묵묵히 시련을 이기고 역경을 이겨내야 자태가 보다 아름답고 향기가 더욱 진해진다는 것입니다.

조화(造花)가 아닌 이상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고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의 시처럼 꽃이나 사랑이나 사람도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 보다 튼실하고 보다 아름다운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지요.

꽃이 향기로운 것은 꽃의 원초적 본능이 빚어낸 것입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본분은 무엇일까요. 어떤 향기를 빚어내고 뿜어내야 하는 것일까요.

교조(敎條)적 언사를 동원하자면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요.

거짓없이 진실하고,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닐까요?.

거기서 사람다운 냄새가 나고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침 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이 아흐레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정치권이나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국민을 위해, 지역을 위해, 나라를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하겠다고 머리 조아리며 표를 구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던지는 말씀이나 행동거지는 여간 살똥스럽지가 않습니다.

독설과 증오와 미움은 그들의 목걸이요 변절과 배신은 그들의 어깨띠나 다름없습니다.

현란한 꽃그늘에서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혹독한 계절의 시련을 겪고서도 고고하게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입니다.

매화는 고결한 지조와 절개의 상징 입니다.

조선시대 4대 문장가로 알려지고 있는 신흠(申欽.1566~1628)의 시구(詩句)는 그래서 지조나 절개와 관련한 강력한 교훈입니다.

‘매화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시구입니다.

요즘 배신과 변절을 밥 먹듯 하는 정치권에 내려치는 뼈아픈 죽비(竹扉)가 아닐 수 없습니다.

향기를 뿜어내지는 못할망정 지조와 절개를 팔아먹는 탐욕의 정치꾼들에게 보내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일갈입니다.

꽃비내리는 찬란한 봄날, 갑자기 ‘정치권 일탈’이 떠오른 것은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무의식을 흔들어대는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토요일에는 꽃비가 내리더니 일요일(3일)엔 봄비가 내렸습니다. 흐드러진 벚꽃 만개(滿開)를 시샘하듯 후줄근한 봄비가 추적 거렸습니다.

비에 젖어 그 화사하던 벚꽃도 후줄근하게 떨어져 내렸습니다.

잠깐의 만남, 긴 이별을 재촉하는 신호가 아닌가 안타깝습니다.

봄빛에 취해, 꽃그늘에 취해 아련하게 설레던 마음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떨어져 내리는 꽃 잎처럼 안타깝게 마음도 후줄근하게 젖어버리는 우일(雨日)입니다. 우울한 봄 날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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