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냉엄했고 무서웠다. 오만한 불통 정권과 무책임하고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정치권에 보내는 채찍은 예리하고 모질었다.

20대 총선 결과로 나타난 민심이 그랬다. 오만방자했던 집권여당은 원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제1당의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뼈아픈 일격이었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은 지난 16대 국회이후 16년만의 일이다.

‘게도 구럭도 다 잃게 된 집권여당의 비참한 패배’는 현 정권에 보내는 질책이자 경고다.

민심이반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민심은 강물과 같다고 했다. 겉으로는 유유한 부드러움이지만 물속은 도도하다.

예로부터 제왕학의 교과서로 읽혀지는 동양 최고의 리더십 고전인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도 ‘군주는 배, 백성은 물’로 비유했다.

여기서 당태종의 간신(諫臣)이었던 위징(魏徵)은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엎을 수도 있다(水能載舟 亦能覆舟)”고 했다.

민심을 거스르면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군주도 온전할 수 없다는 잠언(箴言)이나 다름없다.

4.13총선에서 보여준 민심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민은 안중에 없이 자기들만의 리그에 취해 치고받는 진흙탕 싸움에 진저리가 난 국민들이 정권과 정치권을 뒤엎어 버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총선과정에서 여야가 보여준 행태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눈뜨고 보기가 민망했다.

공천과정이 그랬고 선거운동에서 보여준 꼴들이 그랬다.

유권자에게 다가서는 정치철학은 없었다. 정책도 실종되고 비전도 보이지 않았다.

공천 학살이니, 저격공천이니, 권력의 리모컨에 의한 꼭두각시놀음이니, 살벌하고 엽기적인 말들이 춤을 췄다.

적개심과 증오심을 자극하는 천박한 말싸움만 난무했을 뿐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길바닥에 끓어 앉아 석고대죄 시늉을 했지만 진정성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눈속임이었다.

비겁하고 무책임한 대국민 사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사실 여론의 극단적 널뛰기 현상은 소망스런 민주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극복해야 할 집단적 히스테리나 다름없다.

그렇게 과학적이지도 않고 전문성이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흥미위주의 경마 식 여론조사 남발은 유권자의 표심을 어지럽히고 판단력을 마비시킬 수밖에 없을 터였다.

내로라 뽐내는 TV방송의 소위 정치평론가나 정세분석가라는 사람들은 어떠했는가.

이들도 널뛰기 여론조사에 오르락내리락하며 논평의 널뛰기에 편승했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예측은 빗나갔다. 말장난 수준의 헛발질이 고작이었다.

그들의 자질과 품격이 얼마나 질 낮은 입담에 그쳤는지 확인해준 꼴이다.

그러나 민심의 강물은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요란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흐를 뿐이었다.

그러나 속의 흐름은 거칠 것이 없었다. 조용하지만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결과는 민심의 준엄한 심판이었다.

권력의 난폭운전이나 정치권의 독단과 독선, 협잡과 무책임, 당리당략과 권력의 탐욕에 대한 징소리 같은 경고음이자 채찍이었다.

철퇴로 내려친 것 같은 선거결과에 여야는 숨을 죽이고 있다. 겉으로는 그렇다.

“국민의 질책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고개를 숙이는 척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다. 여야를 막론하고 계파간, 세력간, 권력투쟁이나 주도권을 겨냥한 내홍이 꿈틀거리고 있다.

특히 공천파동 책임과 총선참패를 두고 집권여당의 ‘네탓 공방’은 어이없고 보기조차 민망하고 안쓰럽다.

선거가 끝난지 닷새가 지나기도 전에 책임공방과 권력 투쟁의 조짐이 보인다는 것은 20대 국회 역시 역대 최악의 국회가 될 수 있다는 시그널이다.

국회 원구성에서부터 삐걱 거릴 공산이 크다.

집권여당은 의석 과반이 안 돼 식물정당으로 기력을 잃을 수밖에 없고 이런 와중에 사실상 3당 체제에서 각 당의 손익 계산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얽히고설킨 뒤죽박죽 정쟁의 전조 증상이다.

이렇게 될 경우 여소야대 국회는 생산적일 수가 없다. 구태를 답습하는 퇴행 국회가 될 것이 뻔하다.

입법기관이 이렇다면 정부의 정국운영도 동력을 잃고 좌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라의 앞날이 캄캄하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은 정치 불신과 경제 불안, 민생불만 등 이른바 3불(不)현상으로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정치권이 처절한 자기반성과 혁신을 통해 민생정치에 다 걸기 해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명령이 그렇다.

국민만을 바라보고 국민만을 위한 상생과 협치의 정치복원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국회에 거는 국민의 기대이기도 하다.

총선에서 국민 심판의 의미를 되새겨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우물쭈물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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