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회가 들끓고 있다. 달아오르는 용광로 형국이다.

지역사회 저변에는 담즙(膽汁)처럼 쓰디 쓴 분기(憤氣)가 고약하다.

국민의 군대, 해군에 대한 도민사회 일각의 시각이 매몰차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보위의 최후 보루로 믿었던 군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는 위험 신호가 아닐 수 없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최근에 있었던 해군 참모부의 행정행위 때문이다.

법적 조치라는 막무가내 행정행위가 전체 해군의 명예와 자존심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군은 지난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구상권 행사 소장을 제출했다.

제주해군기지 공사 지연으로 거액의 손해가 발생했고 공사를 방해한 개인과 단체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구상권 행사 대상은 5개 단체와 강정마을 주민 등 121명, 청구액은 34억5000만원에 이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건설업체의 손실비용 배상요구에 의한 수십억 규모의 추가 구상권 행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 농성천막 절거와 관련, 강정주민들에게 8900만원의 행정 대집행 비용이 부과되기도 했다.

시위와 관련하여 강정마을 주민 등에게 부과된 벌금만도 3억원이 웃도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죽해야 강정마을회가 벌금 납부를 위해 마을회관 매각 방침까지 세웠겠는가.

물론 해군 등 당국이 주장하는 바, 불법시위 등으로 인한 공사 지연은 수긍이 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그러기에 외부의 직업적 전문 시위꾼들의 원정 불법 과격시위와 특정단체의 지나친 반대시위 선동 등에 대한 따갑고 비판적인 질책도 없지 않았다.

이처럼 외지 전문 시위꾼의 개입으로 인한 불법적 폭력 과격 시위에 도민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비판적이었다.

그들에 의해 도민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더욱 첨예해졌고, 따라서 그들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대다수 도민 여론이나 주장이 그랬다.

그러나 순수한 붙박이 강정주민들은 다르다.

그들의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조상전래로 지켜온 수 백 년 역사의 마을과 아름다운 자연자원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 같은 시위 불가피 명분은 차치하더라도 해군기지 입지 선정과 진행과정의 절차적 하자와 부당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항거이기도 했다.

이러한 강정주민들의 생존권 수호 차원의 몸부림은 그야말로 군사작전 하듯 여지를 주지 않고 밀어붙인 정부와 해군과 제주도 당국이 빌미를 제공한 것이었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밀어붙이기식 행정행위가 원인이다.

그런데도 사실상 원인제공자나 다름없는 해군측이 마을주민 등을 상대로 거액의 구상권 행사를 하는 것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이며 자가당착(自家撞着)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구상권 행사의 주체는 해군일 수가 없다. 강정마을 주민이고 제주도민 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해군의 구상권 행사는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 지난 10년 동안 제주사회는 엄청난 갈등과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깊은 내상을 입고 아픔의 고통에 시달려 왔다.

강정마을은 공동체가 붕괴됐다. 서로 돕고 살아왔던 마을의 공공선이 해체됐다.

형제간, 가족간, 이웃간, 반목과 증오와 미움은 설촌 450여년의 전통과 미덕을 여지없이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이로 인해 지불해야 할 경제적 정신적 사회적 기회비용은 정확히 계량하기 힘들다.

수 천 억 원에서 수조원에 달할 것이다. 그런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붕괴된 공동체나 해체된 공공선의 복원은 요원해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원인 제공자였던 정부가, 해군이, 제주도정이, 이 비용을 부담하고 갈래갈래 찢겨진 도민 상처 치유에 나서는 것이 순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원인 제공의 한 축인 해군이 강정마을주민 등을 대상으로 한 거액의 구상권울 행사했다. 해당주민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강정마을에 대한 해군의 또 다른 경제적 수탈이며 마을을 유린하는 또 다른 초토화 작전에 다름 아니다. ‘4.3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무자비한 폭거다.

도민사회에 반목과 갈등과 분열구조에 기름을 끼얹어 불을 댕기는 격이다.

국가 최고 권력을 틀어쥔 대통령이, 해군이, 자기방어 수단이 없어 몸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힘없고 불쌍한 주민들에게 무자비한 경제적 칼날을 휘두르는 것은 정상국가의 정상적 통치행위일 수가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국군의 사명이다. 소중한 가치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강정마을 주민 등에 대한 구상권 행사는 이러한 군의 사명과 거리가 멀다.

되레 국민의 생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하는 반동적 폭압이다.

해군의 구상권 행사는 그러기에 법과 원칙에 따른 전략상 이유라기보다, 그동안의 반대시위에 대한 앙갚음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통치 전략상의 징벌 적 공동체 파괴 공작이며 비열한 보복 작전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하는 자유 민주 국가 군대가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어떠한 민주국가 군대가 이처럼 자국민을 향해 ‘경제수탈의 융단 폭격’을 가하겠는가.

강정마을과 제주해군기지는 싫든 좋든, 앞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상부상조의 공생관계인 공동 운명체나 다름없다.

벽을 세워 서로 삿대질하며 미워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처내는 적대적 관계일수가 없다.

갈등과 분열은 사회발전의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증오와 미움의 상처만 깊게 하여 뼈저리게 할 뿐이다.

이를 근절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해군은 당장 구상권 행사 소송을 철회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가슴을 열고 손을 내밀어 강정마을과 화해하고 상생의 깃발을 올릴 일이다.

아무리 좋은 판결도 화해보다는 못하다는 ‘법언(法諺)이 있다.

법조 출신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해군 측에 법에 의한 해결보다는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법만 좋아하는 사람치고 망하지 않는 사람 없고 법적 소송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어 상처를 영구화 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법 맹신 주의’에 대해 경고했다.

법의 잣대가 항상 선일 수만은 없다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강정문제는 적법이냐, 위법이냐, 만으로 재단할 성질의 사안이 아니다.

절차적 정당성 훼손에 대한 당국의 진솔한 반성을 전제로 풀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박근혜대통령도 강정문제와 관련 “그동안의 갈등을 극복하고 해군이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화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2월 26일 제주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준공식 축하 메시지를 통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은 대통령의 주문이 나온 지 갖 한 달 지난 시점에 대통령의 메시지를 비웃듯 ‘구상권 행사’라는 최악의 카드를 내놓았다. 그것은 갈등과 분열구조를 더욱 확대 재생산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생과 화합’이라는 대통령의 의사전달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는 군 최고 통수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통수권자의 명령을 거부하는 항명이자 불복종에 다름 아니다.

대통령이 주문한 지역사회와의 상생과 화합보다는 갈등을 통해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겠다는 것인가. 거친 말을 동원하자면 ‘화해와 상생’에 대한 반동이자 대통령에 대한 반역이라 할 만하다.

이런 험한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도 해군이 할 일은 자명하다. 구상권 행사를 자진 철회하는 일이다.

그것이 그나마 국군 최고 통수권자의 뜻을 받드는 일이며 강정마을 주민과 제주도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며 도리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