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아홉 살 때였다. 훗날 돌아보니 내 사는 이 섬에 3만 여명이 죽었단다. 옹기종기 모여살던 작은 마을 84개가 사라졌다. 내 마을 내 가족, 내 친척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그러고 산 세월이 일흔 해가 넘게 지났다. 엄마만 보면 슬펐던 내 어린시절의 그 마음에는 그러나 그만한 세월은 흐르지 않았다.

△황금녀 시인/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출생/ 1960년 MBC창사기념 문예공모 수기 당선/ 고른베기(2013년 동시집), 착한둥이(2015, 제주어동시집) 등 다수 작품/ 현) 창조문예회원, 제주어보존회 회원

시인 황금녀는 애써 위로를 건네지 못했던 어머니를 향한 이야기를 여든 중반을 넘어서야 할 수 있었다. 그 ‘어머니’는 시인의 어머니이면서 4.3으로 맺힌 가슴의 한(恨)을 달랠 길 없었던 우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난 못해. 난 못해. 했지요. 우리 엄마만 보면 슬펐는데, 가만 보니 그 아픈 가슴들이 수도 없는거라. 젊은 때 애를 하나 낳고, 둘을 낳고 그렇게 농사만 지으며 살던 그 어머니들이 남편 잃고 자식을 잃고, 아버지를 잃으며 얼마나... 하이고... 그 가슴들을 말로 어떻게 다 표현해. 그래서 난 못한다 하고 시작도 못 했지”

황금녀 시인이 올 3월 펴낸 [베롱헌 싀상](도서출판 각). 그동안 4.3시집-제주어 시집은 많았으나 '제주어로 된 4.3 시집'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9살 때 겪은 4.3에 대한 기억과 침묵으로 보내야 했던 긴 세월에 대한 시를 모두 제주어로 써냈다.

어느 날 보니 당시 엄마였고 며느리였던 그 여인들이 세상을 하나 둘 떠나고 있었다. 스무살 앳된 새댁이 방밖으로 걸음 하나 내놓지 못 할 만큼 나이가 든 세월. 시인은 더는 미룰 수 없어 그 어머니들을 향한 위로를 시로 엮었다. 오로지 제주어로만 튼해 낸(기억을 꺼내다의 제주어)  4.3의 시는 당시 어머니들의 한(恨)이 서린 ‘말’을 그대로 퍼 올린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위로고 삶의 증언인 시(詩). 무자기축년, 온 마을이 절망에 빠져들었던 그때의 그 허망한 이야기를 잊지 말아달라는 후손을 향한 당부이기도 하다.

△함덕지서가 불태워지던 날, 참 무서웠지요.

시인 황금녀. 여든 중반을 넘은 그녀에게 여전히 4.3은 또렷하다. 사연을 풀어내자면 한도 끝도 없을 이야기. 당시에 시인의 아버지도 죽고 외삼촌도 죽고 외삼촌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죽었다. 어느 날에는 동네에 불이 타올랐는데, 함덕지서가 불타던 그 광경은 지금 떠올려도 소름끼치게 무서운 기억이다.

“외삼촌이 마을이장이었는데, 어느날 연설을 들으러 관대모살밭으로 나오라 했다는 거라. 가보니 모래구덩이 앞에 마을 청년이 하나씩 서 있었어. 아이고... 이 청년들 한번만 살려줍써. 외삼촌이 그추륵 빌었는데, 그 자리에서 마을청년들이며 외삼촌까지 다 쏴 죽였지..

외삼촌의 하나 밖에 없던 아들도 지금의 정뜨르 비행장에서 참변을 당했다는 소식이 어느날 들렸어.. 그 젊은 아들에게는 20대의 아내와, 5개월 된 아들이 있었는데... 그러니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홀 어멍이 되분거라.”

외가댁에 가던 날, 돌도 안 된 아이를 달래며 재우는 며느리의 자장가 소리가 골목까지 들렸다. 구덕을 흔들며 그 애달픈 가슴을 달래야 했던 젊은 며느리. 그 며느리를 달래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시어머니. 어느 날에는 빈 구덕을 그렇게 흔들더란다. 세차게. 자장가를 부르며. 그 여인들의 한(恨)을 잊을 수가 없었다. 시인은.

애기 재우는 소리 [황금녀/ 베롱ᄒᆞᆫ 싀상]

...(중략)...

죄 엇이도 죽을수가 이섯구나

무자년 그 봄엔 

ᄒᆞ다ᄒᆞ다 울지말라

느가 울민

나 가심에 불ᄉᆞᆷ암저

느 가심이 나 가심이여

늘랑 날 직산ᄒᆞ곡

날랑 늘 직산ᄒᆞ곡

두린 손지 키와사 ᄒᆞ느네

자랑자랑 왕이자랑

왕ᄀᆞᇀ이 귀헌 우리 애기 잘도 잔다

금을 주민 너를 사멍

은을 주민 너를 사랴

애기구덕 흥글어가멍

이 가심에 불이나 끼와지곡

우리 메느린 ᄒᆞ다ᄒᆞ다 울지말라

어멍 젯꼭지가 연드러웡 젯맛이 좋으민

어멍 ᄆᆞ심이 좋은 날이로구나 ᄒᆞ곡

어멍 젯꼭지가 굳엉 젯맛이 엇이민

우리 어멍 ᄆᆞ심에

거시린 일이 싯구나 ᄒᆞ멍

애기가 패와지질 못ᄒᆞ느네

자랑자랑 왕이자랑

왕ᄀᆞᇀ이 귀헌 우리 애기 잘도 잔다...(중략)...

집안의 맏딸인 그녀는 어느 날부턴가 어린 동생을 둘러업고 ᄀᆞ팡으로도 숨고 컴컴한 곳은 어디든 찾아야 했었다. 아침이 되면 집 마당에는 삐라가 널렸는데 산으로 안 오면 친척들을 다 전멸시키겠다는 내용도 담겼단다. 아버지는 본인만 희생하면 된다하시며 산으로 가셨고, 시기를 틈타 탈출했지만 곧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다.

간간히 이어지던 편지가 끊겼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버렸다. 몇 해 전인가 대전형무소 근처 어느 산에 수많은 유골들이 발견됐단다. 당시 마을 주민의 증언으로는 수 없는 사람들을 산 채로 묻었다 했다. 아버지의 유골은 아직, 찾지 못했다.

“몇 해 전인가, 미국의 한 학생이 친구들을 쏴죽였다는 뉴스를 봤지요. 그런데 보니, 총을 쏜 아이한테도 사람들이 꽃을 바치는 거라. 그렇게 상처를 받았는데도. 그 아이도 피해자로 보는 거지. 그 마음이 아름다운거지”

검게 멍든 자욱이 아직도 선명한 가슴을 묻고, 화해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시인의 말. 그 말에 담긴 무수한 의미를 헤아려본들 다 알 수 있을까. 팔순 중반의 시인이 또렷한 아홉 살의 기억을 한 자 한 자 시의 언어로 풀어낸 데에는,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깊고 준엄한 당시 어른들의 가르침도 담겨 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전하는.

“잘 하고 못 하고 떠나서 모두 다 피해자라. 그 죽은 3만여명이 사상이고 뭐고로 죽은 게 아니라. 서로들 화해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서로 보듬으멍 살아야지, 그런데 지금 하는 거 보면 그렇게들 안 하니... 우리 후손들은 그 역사를 교훈 삼아서 얽힌 싸움들, 이해관계 떠나서 평화롭게 살아야 하지. 그 때 그 여인들이 번찍 들러서는 밤을 보낸 일을 잊지들 말고. 선한 사람 착한 사람이 전부인 세상을 서로 양보들 하면서 만들어야지”


하늘은 [황금녀/ 베롱ᄒᆞᆫ 싀상]

하늘은 밤세낭 벨밧을 붸와 주엄수다

밤세낭 돌을 붸와 주엄수다

누게가 벨을 다문 멧개라도 안앙 가불카?

누게가 ᄃᆞᆯ을 ᄋᆞᆨ꼿 들렁 가불카?

ᄌᆞ들아지지도 안 ᄒᆞ는 생인ᄀᆞ라양

밤읜 안앙 가불기 좋은 ᄀᆞ리인디도

 

하늘은 들거리 엇인 생이우다

 

햇볏, 공기, 물도 술락술락 주엄시난에

땅이선 뽕끄랭이 먹어가멍덜 들이씨멍덜

아고겐! 행실머리

저 호랭이질광

저 범벅싸움덜

 

벨도 ᄃᆞᆯ도 못 봉그는

우린 두루붕이

우린 벙게

 

인터뷰 중 만난 독자에게 '넘이넘이 사랑햄수다' 라고 사인을 남겨주는 황금녀 시인. 그녀는 제주어를 지키는 노력을 더 키워야 한다며 안타까워 했다. 의태어와 의성어 등 미적감각이 뛰어난 우리 제주어를 더는 '변두리어, 사투리어'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줘야 할 '우리들의 언어'로 살려내야 한다고 말한다. 유네스코는 세계기록유산 '희귀 고문자'로 제주어를 인정했지만, 2010년 말 소멸위기의 언어 4단계로 경고한 바 있다. 다음 5단계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언어를 뜻한다.

#관련태그

#N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