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하늘 높은 곳에서 날아온 바위가 산꼭대기에 내려앉아 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런 바위가 실제로 존재하는 마을이 있다. 조천읍 와산리가 그곳이다.

눈미, 눌미라는 옛 이름을 간직한 조천읍 와산마을 당오름에는 마을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왕석(王石)’이라고 믿는 바위가 있다. 아버지의 심기를 거슬린 탓에 인간세상으로 귀양을 당한 옥황상제의 셋째 딸 ‘불도삼싱또’의 화신이 이 왕석이라고 본풀이에 전해온다. 여신의 이름과 지명이 합쳐진 당의 이름은 ‘눈미불돗당’이다. 마을사람들은 이 당을 간단히 부를 때 ‘불돗당’ 또는 ‘웃당’이라고 한다. 이 당이 마을 위쪽인 당오름자락에 있고, 마을 가까운 곳에 본향당인 ‘베락당’이 있어 그 곳을 ‘알당’이라고 이르던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하지만 본향당인 베락당이 이미 사라진지 오래 되어 마을사람들은 웃당인 불돗당에 나다닌다. 그 때문에 당굿을 벌이는 음력 3월 열사흘에는 본향당신인 ‘베락ᄉᆞ제’도 함께 모셔 제향을 바친다. 흥미로운 사실은 베락ᄉᆞ제 또한 옥황상제격인 천지왕의 신하로 하늘의 신인데 이 마을의 본향당신으로 좌정했다는 사실이다.

조천읍 와산리 눈미불돗당의 왕석

하늘의 신들이 마을의 당신(堂神)으로 좌정한 경우는 다른 마을에서도 더러 나타난다. 하늘옥황천지왕의 아들 대별왕또와 소별왕또는 각각 해안동 동동본향당과 오등동 본향당인 오드싱당의 당신이 되었고, 농업의 신으로 널리 알려진 상세경 문국성과 중세경 자청비는 각각 구좌읍 덕천리의 금산당과 노형동 광평마을 너븐드르본향의 당신으로 좌정했다. 제주섬의 창조주 설문대가 송당리의 ‘샛손당’마을과 표선리 ‘당캐’의 당신으로 눌러앉았다는 사연과 비슷한 사례들이다. 하늘의 신들이 지상의 신으로 좌정하는 사연이 담긴 제주의 본풀이들은 엉클어놓은 실타래처럼 복잡한 수수께끼를 내어놓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를 빌려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바위로 변신한 눈미불돗당의 여신 불도삼싱또를 최초로 목격하고 그 신성에 놀라 기원한 이는 와산마을의 여인이었다고 한다. 마침 그 여인은 자식이 없어 근심하던 터라 당오름 꼭대기까지 힘겹게 올라가 피 흘리는 왕석 앞에서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간절히 발원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아니나 다를까 여인은 아기를 배게 되었고, 감사의 인사를 올리기 위해 다시 당오름 꼭대기를 향했다. 하지만 임신한 몸으로 오르기엔 너무나 가파른 산세인지라 더는 발을 내딛지 못한 채 여인이 오름 중턱에 멈춰 서서 “영급이 있으면서 중턱까지만 내려오소서.” 하고 기도를 했더니, 놀랍게도 왕석이 여인의 코앞까지 절로 굴러 내려왔다고 한다. 축원을 올리고 돌아온 여인은 몇 달이 지나 아이를 순산하게 되었고, 다시 감사드리러 당오름을 찾았지만 몸을 푼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탓에 중턱까지 오를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당오름 어귀에서 발만 구르던 여인이 다시 한 번 기도를 하자 왕석이 다시 움직여 현재의 자리에 떡하니 버텨 서게 되었다고 한다.

피를 흘리고 스스로 움직이며 생명을 점지해주는 돌의 사연, 이 이야기는 두 말할 것 없이 돌이 지닌 생명창조력을 형상화한 신화이다. 우리는 이미 제우스의 돌 ‘옴파로스’와 이슬람의 신성 ‘카으바의 검은 돌’ 등을 통해 돌이 지닌 생명창조력과 영원불멸의 힘을 확인한 바 있다. 눈미불돗당의 왕석 또한 옴파로스나 카으바의 검은 돌처럼 신성이 깃든 바위로 여성성이 부여된 ‘모석(母石)’이라고 할 수 있다.

눈미불돗당의 왕석처럼 바위가 생명을 낳은 사연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심지어는 바위가 직접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이 바위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함경도의 천지창조신화 중에는 불도삼싱또처럼 돌로 변신했다가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온 ‘강방덱이’라는 건축의 신 이야기가 전해온다.

하늘의 신 중 하나였던 강방덱이는 옥황상제의 벼루를 깨뜨린 죄를 지어 인간 세상으로 영원한 유배를 당한다. 바위 속에 갇힌 강방덱이의 혼령은 하루가 멀다고 쿵쾅거리는 소리를 냈고, 옥황상제는 시끄러운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고 강방덱이를 다시 하늘로 불러들인다. 옥황상제를 알현한 강방덱이 오랜 세월 바위 속에 봉인된 채 집 짓는 기술을 연마했다고 자랑하며 옥황상제의 궁전을 짓겠노라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모시두레 모시각시’가 나서서 자신은 모시 천 동을 짜고 강방덱이는 궁전을 짓는데 누가 빨리 하느냐 내기를 제안한다. 함경도의 셍굿이라는 무가(巫歌)에 포함된 강박덱이의 사연의 결말은 그의 패배로 끝이 난다. 강방덱이가 내기에 졌다고 해서 돌이 지닌 창조력이 퇴색되지는 않는다. 다만 직녀의 화신 모시두레 모시각시의 모성이 좀 더 강했을 뿐이다.

사람이 바위로 변하는 이야기는 강방덱이의 사연이 아니라도 수두룩하다. 제주의 대표적 명물 산방산에 맺힌 전설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산방산의 선녀로 지상에 내려온 산방덕과 가난한 나무꾼 고성목의 사랑, 그것을 질투한 고을사또의 음모, 사랑의 파국으로 치닫는 이 러브스토리는 산방굴로 들어가 끝끝내 차디찬 바위로 변신한 산방덕의 눈물로 끝이 난다. 산방덕의 영이 깃든 산방굴에 터를 잡은 산방굴사에는 오늘날에도 자식 점지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이 불공을 드리러 끊임없이 찾는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전설이야 슬픈 사랑이야기이지만 돌로 화한 산방덕은 불도삼싱또처럼 생명창조의 여신으로 좌정했다고 볼 수 있다.

돌이 지닌 생명창조력과 영원불멸의 시원성은 많은 세월이 흐르며 기자(祈子) 신앙으로 변화했다. 제주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다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좆바위, 씹바위, 공알바위 등으로 불리는 기자석(祈子石)이 그 것이다. 돌이 지닌 영력 가운데 시원성은 퇴색하고 생명창조력은 각광 받은 결과 남근석과 여근석이라는 원초적인 신앙이 탄생한 것이다. 사람의 생식기를 닮은 바위에 기원하거나 심지어는 유사 성행위를 하면 자식을 얻게 된다는 관념은 비슷한 것을 통해 바라는 바를 이룬다는 유감주술의 결과물이다.

좆바위나 공알바위처럼 원초적인 기자석이 없다고 해서 제주에 기자신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주의 기자신앙은 주로 ‘돌미럭’이라고 불리는 미륵불을 섬기는 조금은 점잖게 드리는 치성으로 존재한다.

애월읍 광령리 마씨미륵당의 돌미럭

‘돌미럭’을 향한 기자신앙의 대표적인 사례는 제주의 전설적인 인물 ‘마용기 스님’과 그가 생전에 기거했던 ‘마씨미륵당’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의 실존인물이었던 승려 마용기는 기골이 장대해 키가 매우 크고, 잘 생긴 외모를 지닌 그는 광령리 중산간 목장지대에 돌미럭을 모신 미륵당 옆에 기거하며 1970년대까지 살았었다. 자식을 바라는 집안의 여인들 사이에서 ‘마씨미륵당’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용하기로 소문이 나서 기자불공을 치르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마용기의 신통력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그곳에 다녀온 여인들은 백발백중의 결과를 얻어 무자식 팔자에서 벗어났다고 하며, 또 방목하던 소를 잃어버린 이들도 그에게 부탁하면 마침내 찾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어떤 면으로 보아도 신비에 싸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마용기의 신통력이 어찌나 대단한지 지금도 마씨미륵당을 종종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지난해 겨울 그곳의 상태를 알고 싶어서 눈발을 헤치며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이미 오래 전에 그가 불귀의 객이 된 마당에 누가 그 높은 산중턱까지 올라가겠느냐며 좀체 믿지 않았었는데 놀라운 광경을 보고 말았다. 때마침 눈보라가 날리는 벌판 가운데 잡목들로 겨우 바람을 가린 마씨미륵당에 연신 손발을 비벼가며 기도드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신통했던 마용기 스님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고, 그가 살았다던 집도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돌미럭에는 영험이 아직까지 남아있는지 이즈막에도 기원은 끊이지 않는 모양이다.

저출산이 국가적인 문제로까지 떠오른 한국사회이지만 그래도 대가 끊기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보수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마씨미륵당을 찾는 사람들을 봐서도 그렇거니와 제주읍성의 수호불인 동자복과 서자복, 복신미륵을 둘러싸고 풍문처럼 떠도는 세간의 이야기에서도 사실임을 실감하게 된다.

제주시 서한두기 용화사 경내의 서자복
제주시 서한두기 용화사 경내의 서자복과 좆대바위로 알려진 동자미륵

몇 해 전 일이다. 뭍에서 이주해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인 제주의 최근 풍경 때문에 좋든 싫든 그들과 친교를 맺게 되는 제주토박이들이 많다. 그렇게 토박이들과 친분을 쌓은 이주예술가 한 사람과 제주의 굿에 대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웃음을 참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마침 신혼이었던 그 이주 여성 화가는 용담 1동 한두기 바닷가 근처의 용화사 경내에 있는 서자복의 사연을 애기하면서 ‘좆대바위’를 아냐고 물어왔다. 금시초문인 ‘좆대바위’. 미륵불인 서자복 말고 그런 게 있었나 하며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 이는 다시 불상 옆에 의자만 한 돌기둥이 있어서 아기를 바라는 여성이 거기에 앉았다 일어나면 틀림없이 임신하게 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을 이어갔다. 그런 대화가 오고간 며칠 뒤 ‘좆대바위’의 정체를 찾아서 서자복을 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자복 미륵불상 앞에 조그만 화강석 기둥이 앙증맞게 웅크리고 있었다. “이 돌을 놓고 좆대바위라고 불렀던 것이구나.”

민속학자 고광민의 ‘제주의 돌문화’에 따르면 본래 이 돌은 서자복과 같은 민불(民佛)로 동자미륵불상이다. 제주에는 없는 화강암 재질로 만들어진 동자미륵상이 세월의 풍파에 마모되어 불상의 모습은 사라지고 야릇한 모양으로 변형되어 누가 보아도 남근석처럼 여길 만도 했다. 다시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한편으론 유쾌하기도 했다. 미신이라고 여기는 왜곡된 시선 때문에 제주의 고유한 신앙이 점점 위축되는 것이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마당에 마씨미륵당을 찾는 사람도 있고, 서자복을 찾아서 기자치성을 올리는 사람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좆대바위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이야기에 대해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언뜻 보아서는 근래에 생겨난 새로운 민담인 듯하다. 물론 마을사람들 중에 더러는 좆바위, 좆대바위라고 부른다고 하지만 이런 사연이 동자미륵상에 입혀진 지는 그리 오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 이야기가 전설적인 인물 마용기의 사연처럼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새로운 신화가 탄생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과학만능주의로 인해 신성이 미신으로 치부되고,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물성이 그 자리를 차지한 마몬의 시대에 이런 신앙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영성을 회복할 희망의 싹이 아직도 움을 틔우고 있다는 기대감을 선물해준다. 다소 해학적이지만 소박한 미륵신앙에 담긴 생명을 잉태하는 돌의 신성을 확인하고 싶다면 가까운 서자복을 찾아가거나 멀리 한라산줄기를 따라 마씨미륵당까지 소풍을 다녀오는 것도 즐거운 경험일 것이다.

* 참고자료

고광민, 제주의 돌문화, 제주돌문화공원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조현설, 동아시아의 돌 신화와 여신 서사의 변형, 구비문학연구36, 한국구비문학회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민속원

한진오 작가는 2001년 4.3대서사극 “애기동백꽃의 노래”의 공동극본을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의 시나리오 및 총연출을 하고 있다. 2005년 제46회 한국민속예술축제 “龜里겉보리농사일소리” 대통령상 및 연출상 수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11년 제주MBC 라디오 특별기획 토크멘터리 드라마 3부작 “유배”로 한국방송대상 지역다큐멘터리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모노드라마 “이녁”, 제주MBC 마당놀이 “이랴이랴 마생전” 등 다양한 극본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2015년 “서순실 심방 본풀이”(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 공저)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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