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이종능

웃음은 질박(質朴)했다. 흙냄새가 물씬 풍겼다. 흙의 질감이 그대로 묻어난 꾸밈없는 ‘흙의 미소’였다.

조용하고 편안한 인상이었다. 섭씨1400도 이상의 불가마를 다루는 강열함이나 이글거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만나본 세계적 도예가 이종능(58) 씨의 인상이 그랬다.

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선각자들이 그랬듯이 고고한 아우라가 휘감겼다. ‘조용한 카리스마’였다.

그는 세계 도예계의 빼어난 실험 작가다.

전통 도예의 내면을 곰 삭여 전통과 미래를 아우르는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한 도예계의 선각자다.

그가 창시한 ‘토흔(土痕·흙의 흔적) 기법’은 그의 30년 흙 사랑이 빚어 낸 독창적인 작품세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만의 세계인 것이다.

토흔은 흙 본연의 색조를 살리는 기법이다.

모든 흙은 섭씨 1250도 이상의 고온에서는 원래의 색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대부분 유약에 의존하게 된다.

토흔은 전적인 유약의존의 전통방식에서 벗어났다.

유약도 바르지만 흙 본연의 색과 질감을 그대로 유지했다.

도예계의 어느 계파나 장르에도 구애받지 않고 그만의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작업모습과 작품

흙의 원초적 본능을 살려내 흙이 갖고 있는 순수하고 변치 않은 고유한 질감을 살려낸 것이다.

이 같이 걸출한 세계적 도예가가 제주에서 도자기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다. KBS제주방송 총국 전시실에서다.

‘흙의 설렘’을 주제로 한 전시회에서는 지난 2007년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선보여 찬사를 모았던 달항아리 연작과 토흔 작품, 그리고 뉴욕과 워싱턴에서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켰던 도자기 벽화 등 7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자유분방하면서도 절제되고 소박하지만 천하지 않은 세련된 조형미를 갖춘 독창적인 작품세계라는 전문가 그룹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자연사 박물관 부관장인 폴 테일러(Paul Taylor)박사도 이종능 작가의 작품을 극찬했다.

“이런 작품과 만나게 되어 행복하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폭넓은 작품세계가 신선하고, 특히 도자기 벽화는 기존의 도자기 인식을 탈피한 새로운 시도로서 이 작가의 독특한 창의적 감각에 찬사를 보낸다”고 했다.

작가 최인호, 이상문 고미술 감정가 등도 “토흔은 이종능 도예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흙의 원초적 본능을 도예작품에 승화시킨 빼어난 ‘흙의 예술’이라고 평했다.

이 도예가는 신라 천년고도 경주 태생이다. 거기서 나고 자랐다.

신라 천년의 문화유산은 알게 모르게 그에게는 도자기 예술 작품을 향한 거름이 되었을 터였다.

유년시절 밥상을 덮었던 삼배 조각보를 떠올려 전통의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고 싶었다는 것도  그의 내면세계에 스며들었을 찬란했던 천년 신라문화의 자양분이었을  터다.

황(黃), 청(靑), 백(白), 적(赤), 흑(黑)의 조합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전통 오방색(五方色)을 도예에 입힌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시절 지리산 여행 중 비가 내린 후 보게 되었던 흙의 색깔에 매료돼 도예와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흙과 불의 여행‘ 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을 ‘흙과 물과 불’에 천착(穿鑿)해온 도자기 예술의 길.

행복하다고 했다. “행복한 마음으로 빚은 도자기, 보는 사람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도예의 길 30년을 정리하고 앞으로 걸어야 할 새로운 도예의 길 30년 각오를 다지며 함께 행복하고 함께 설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이다.

4월29일 시작된 전시회는 5월22일까지 계속된다.

그의 도예작품은 러시아 국립미술 박물관, 미국 피츠버그 국립민속 박물관, 중국항주국립다엽박물관, 일본오사카 역사박물관 등과 민간 미술관, 세계적 유명 조각가 등이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녹음 우거져 더욱 푸르른 5월, 제주에서 ‘흙과 물과 불’이라는 인류문명 3원소로 빚어낸 세계적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행운이 아니다.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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