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쿠마모토 지진피해지 자원봉사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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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쿠마모토 지진피해지 자원봉사 체험기
  • 제주투데이
  • 승인 2016.05.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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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 부터 13일가지 쿠마모토 지진피해지 자원봉사

"정말로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 혼자만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겠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85세의 할머니가 우리가 찾아갔을 때의 첫 인사였다.

 
"몇 차례 자원봉사자센터(일본에서는 "볼런티어센터"라고 한다.)에 연락해도 자원봉사자 일손이 부족해서 사람을 못 보낸다고 하다가 며칠 전에 왔었습니다."
 
"그 분들은 무너진 담장의 블록들을 조각처럼 깨트려서 쓰레기봉투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래야 시에서 수거하러 온 때에 갖고 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죄송하지만 부서진 집안의 단수들을 버리는 지정 장소까지 운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이 있고 할수 있다면 정원의 나무를 잘라 주시기 바랍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정성껏 다 하겠습니다." 하고 우리들은 할머니 지시대로 우선 단수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오사카에서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3명이 쿠마모토 지진 피해지에 자원봉사자로 갔다.
 
<일반사단법인 일본유기산업경영자동우회> 주최로 이 단체에 가입한 회사들을 상대로 일본 전국에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여 2차에 걸쳐서 20명씩 갔었다.
 
오사카에서 11일 오후 12시 45분 비행기로 한시간 15분 걸려서 후쿠오카공항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집결지인 후쿠오카 오무다(大牟田)시에 있는 여관까지 쾌속 열차와 보통 열차를 타서 약 두시간 후인 오후 5시에 도착했다.
 
첫 날은 전국 각지에서 온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협의를 마친 후, 다음 날 아침 7시에 대절 버스를 타고 "쿠마모토시 사회복지협의회 쿠마모토시 재해 볼런티어센터"에 가니 오전 9시 30분이었다.
 
이곳에서 각자 인적 사항을 적고 자원봉사 신청을 하고, 피해 현장에 가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A4사이즈의 앞뒤에 자세히 적힌 안내장과 설명을 들었다.
 
자기 안전은 절대로 자기가 지켜야 하며 작업을 의뢰한 피해주민으로부터 제공하는 모든 음식들과 서비스는 정중히 사양할 것과 기념사진처럼 찍는 사진 촬영도 억제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었다.
 
피해 주민으로부터 의뢰 받은 작업 내용과 인수에 맞게 자원봉사자들을 선정해서 거기에 알맞는 작업 도구들은 그곳에 있는 것을 갖고 갔다.
 
각 작업팀마다 리더를 정하고 작업을 마치고 센터에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4시인데 꼭 지키고 남은 작업은 보고서에 작성하고 인근에 다시 자원봉사자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그것도 적고 오라고 했다.     
 
이렇게 체계화된 센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몇 사람의 시 직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었었다. 그리고 토쿄 어느 회사는 4월에 입사한 신입사원 전부를 자원봉사자로 연수 겸 파견하기도 했었다.
 
피해 지역까지는 센터에 대기하고 있는 자동차를 타고 갔으며 작업을 마쳤을 때도 연락을 하면 데리러 왔었다. 그 사이 점심과 음료수는 모두 각자가 준비해야 하는데 원칙적으로 모든 것이 자비부담의 철저였다.
 
이렇게 헤서 우리는 4명이 필요하다는 할머니 혼자 사는 곳에 가서 집안의 단수들을 옮기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때도 구두를 신고 그대로 집안에 들어와도 된다고 할머니는 말해었지만 우리는 준비 물건에 써있는 실내화를 갖고 가서 신었다. 피해 입은 사람들에 대한 마음 가짐과  배려 차원의 준비 품목이었다.
 
집안의 가구들을 옮긴 후 정원에 있는 40년생 "먼나무"를 자르는데는 사전에 몰랐기 때문에 도구를 안 갖고 가서 이웃에서 조그마한 톱을 빌고 했지만 4명이 거들어도 솔직히 힘들었다.
 
나무도 쓰레기 거수차가 싣고 갈 수 있도록 사철나무인 먼나무의 가지와 잎들도 전부 자르면서 지정 장소까지 갖고 가야 하는데 우리만 하면 너무 미안하다면서 말려도 옆에서 거두는 할머니를 보니 가슴이 찡했다.
 
저의 아들은 쿠마모토 시내의 회사에 근무하고 있지만 회사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집에 와서 정리할 시간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 자신도 위험 판정이 난 집에서 잘 수 없으니 밤에는 20분 걸리는 피난소에 가서 지내다가 낮에는 이렇게 와서 가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돌아간 저의 주인이 40년 전에 심은 나무로 애착이 가지만 자르는 것은 이 나무가 다시 지진으로 쓰러지면 겨우 남아있는 벽이 무너지면서 이웃 집을 덮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쉬지를 않는다
 
"여진(餘震)이라는 말은 지진 때마다 들어서 잘 알지만 본진(本震)이라는 말은 좀 생소합니다. 설마 본진이라고 생각했던 지진이 여진이고 나중에 일어난 지진이 본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물론 쿠마모토현(熊本縣)의 지진은 전문가들도 상정(想定) 이외라는 결과의 지진이었다. 진도 6을 넘는 지진 후에 다시 그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 예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처음 일어난 지진 후에 집안 정리에 가족 모두가 힘을 다했는데 본진이 다시 일어나니까 무력감에서 자포자기의 마음이 들고 해야 한다는 기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작업하는 곳에 와서 이웃이지만 이렇게 오셔서 거들어 주시니 더없이 고맙다면서 50대 아주머니가 인사와 함께 당시의 심정을 들려주었다. 현지에서 들으니 이 말이 더욱 가슴 깊게 다가왔다.
 
그 아주머니 집도 지붕 기와장이 떨어져서 씨트를 쳐 있고 벽담의 블록도 무너진채 한곳에 모아서 방치한 그대로였다. 사람이 없어서 처리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시간은 오후 3시를 넘어서 철수할 시간이었다. 자른 나무도 곁가지들은 다 자르고 옮겼지만 큰 몸통까지는 손도 쓸수 없었다.
 
내일이 될지 언제일런지 모르지만 다른 봉사자들이 또 와서 작업을 마무리 시키도록 전할테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했고, 이웃집에 그냥 방치한 블록들도 치울 수 있도록 보고한다고 해서 마중 온 차로 센터에 이동했다.
 
센터에 가서 작업보고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한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한 시간 걸리는 곳의 숙소도 쿠마모토 시내에는 20명이 머물 곳도 없었지만 2차 피해에 대한 예방이기도 했다.
 
이 날도 쿠마모토시는 오후 5시 넘어서 여진이 진도 5여서 오사카에서 안부룰 확인하는 전화가 올 정도였다. 
 
다음 날은 오전 6시 30뷴에 숙소를 떠났다. 어제 고속도로가 침체 돼서 도착 시간이 좀 늦었다. 오늘도 버스 속에서 나눠 준 주먹밥 두개를 먹고 고속도로를 나와 쿠마모토 시내 편리점에서 점심 도시락을 사고 센터에 가니 오전 9시 전이었다.
 
우리 4명은 될 수 있으면 어제 마무리짓지 못한 곳에 가서 다시 작업하고 싶다니까 그렇게 하라고 오늘도 작업하러 간다고 연락을 해주었다.
 
톱과 블록을 깰 해머를 준비하고 갔더니 어제로서 끝인 줄 알았는데 오늘도 이렇게 와줬다면서 할머니와 이웃집 아주머니가 더없이 반겨주었다.
 
2명씩 우리는 두팀으로 나누고 뙤약 볕 속에서 나무 자르기와 블록 깨기 작업을 시작했다.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도중에 쉬면서 하라면서 드링크와 바나나를 갖고 왔다.
 
정중히 사양하고 받으면 안된다는 센터에서의 사전 설명도 있어서 고맙다면서 사양했지만 그래도 계속 권하는데 거절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고맙다면서 받은 바나나는 먹을 기회가 없어서 필자는 오사카 집에까지 갖고 와서 마누라에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해서 주었다. 
 
"저 혼자 살고 나이도 80을 넘었는데 집을 뜯고 새로 짓는 것도 암담하고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어서 정말 걱정입니다."
 
짧은 2일 동안 거두는 우리들에게 먼 곳에서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웃으면서 되풀이하면서도
한숨과 함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말은 위로의 말을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이었다.
 
어쩌면 할머니는 이 현실을 감당 못하고 한평생을 살았던 집을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갈런지 모른다. 아담하고 조용한 주택가였지만 한 순간에 엄습한 지진은 마지막 노년기를 송두리채 빼앗았다.
 
작업을 마치고 할머니와 아주머니랑 우리는 서로 포옹과 악수를 하면서 건강히 지내시라고 해서 헤어졌다. 차가 골목을 빠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진의 나라 일본에서도 가장 안전지대로 알려진 쿠마모토에서 본진과 여전의 진도가 거의 비슷한 시진이 계속 일어난 사태에 지역 주민들에게는 말할 수 피해와 공포를 안겨주었다.
 
"위험"이라는 빨강색의 딱지는 출입금지이고 노랑색의 "요주의"는 말 그대로 주의하라이고 "검사완료"라는 초록색의 딱지는 괜찮다는 전문가의 판정이 지금도 집집마다 게속되고 있다.
 
한달이 지난 오늘(19일) 현재까지도 쿠마모토 피난자만 하드라도 9907명이고 인적 피해는 사망 49명, 관련사망추정 20명, 행방불명 1명, 부상자 1731명이다. 

사진 가운데가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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