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원 상당의 고급 골프 세트'. 제주도청 소속 5급 공무원이 업무와 연관성 있는 건설 업체로부터 받았다는 뇌물이다.

지난 18일 경찰이 검찰에 넘긴 뇌물수수 사건 송치 기록 등을 감안하면 이번 사건은 단순한 공무원 독직(瀆職)사건이나 의례적 또는 관행적(?) 선물 수수 등으로 유야무야 넘길 사안이 아니다.

그동안 쉬쉬하면서 말로만 떠돌던 공무원과 건설 업체 간 형성된 강고한 비리 유착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을 통해 제주공직사회가 얼마나 썩었으며 공직자의 자질과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천박하고 심각한 수준인가를 말해주는 것이어서 그렇다.

뇌물 공여자는 제주영어교육도시 아파트 건설 시행사였다.

뇌물을 받은 문제의 공무원은 건축계획 심의 등을 담당했었다.

이 같은 관계의 양측이 뇌물을 주고받았다면 이미 부정부패나 비리유착 연결고리에서 자유롭지가 못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했다. 뇌물은 의도된 대가를 노리고 주고 받게 마련이다.

규율과 룰의 제약을 피하고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는 은근하고 은밀한 검은 거래가 공짜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오고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뇌물은 분명하고 부정한 썩은 거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 공무원과 건설업자 간에는 부정한 검은 거래가 오갔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경찰 조사에서 해당공무원은 “생일 선물로 골프채를 받았다”고 했다. 뇌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단지 후배로부터 소개받았다는 영어교육도시 아파트 건설 시행사가 생일 선물로 공무원에게 500만원 상당의 고급 골프채를 줬다는 이야기가 된다. 누가 이를 믿겠는가.

그렇다면 도청 5급 이상 간부 공무원들은 생일 선물로 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럼없이 받고 있다는 말인가.

길 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문제의 공무원이 건축업무와 연관이 없다고 해도 건축업자가 그 비싼 골프채를 선뜻 선물 했을 것인가.

사회적 의례로 주고받는 선물이라고 해도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이 있으면 그것은 이미 선물이 아니라 뇌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생일 선물로 받았다”는 관련 공무원의 변명은 비겁하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

변명이 사실을 덮지는 못한다. “죽을 죄 지었다”고 땅 바닥에 머리를 짓이기며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선물 운운’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은 사회 일반의 정서나 정상적 사고의 틀을 깨뜨리는 것이다.

땀 흘리며 열심히 살아도 고단하고 어렵기만 한 도민들을 우롱하고 모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제주공직사회가 썩었다는 비판이 나온 지가 오래다.

뇌물수수, 비리 유착 등 일부 부패공직자가 선의의 전체 공무원들의 얼굴을 더럽히고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미꾸라지 한 마리가 우물을 흐리게 하는 꼴이다.

지난 12일에는 제주지법에서 풍력발전 사업과 관련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불법을 저지른 도청 소속 공무원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 했다.

이 역시 공무원과 업자간의 은밀한 검은 커넥션이 얼마나 얼키설키 형성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공무원과 사업자간의 비리 유착, 풍력발전 사업이나 골프장 인허가 과정 등에서 뇌물수수, 사회복지보조금 횡령, 해양 수산분야의 부정부패와 비리 등 온갖 독직사건으로 공직사회가 얼룩지고 악취를 풍겼다.

제주공직사회가 도민 적 지탄을 받아왔던 이유다.

이런 현상은 시도별 공직 청렴도 평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지난 2012년 이래 제주공무원의 청렴도는 전국 시도 중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2014년도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평가결과 제주도는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6위로 최하위 권이었다.

도민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청정제주 이미지에 먹칠하는 칙칙하고 더럽고 부끄러운 제주공직 사회의 뒤틀린 얼굴이다.

이 같은 현상에 도 당국은 지난 2월 도 간부공무원에 대한 청렴행위 기준을 제정하기도 했다.

직위·직무·직책 등을 이용한 금전·선물·향응 수수나 요구 금지, 특정업체의 수의 계약 또는 하도급 계약 체결을 위한 영향력 행사 등 14개 항을 담았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도 당국이 사실상 공직사회에 이러한 부정과 비리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썩어 있으면서 향기롭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위에서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도의 공직 청렴 실천이 형식적이거나 말로만 끝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지금까지 도가 보여준 한심한 공직 청렴 실천 효과를 보면 그렇다. 문제가 터져야 부랴부랴 대증(對症)요법으로 어물쩍 넘어갈 뿐이었다.

마침 이른바 ‘김영란 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공직자등의 비리를 규제하는 강화된 반부패법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말함이다.

지금까지 ‘스폰서 검사’나 ‘벤츠 여검사 사건’ 등에서처럼 공직자가 금품수수를 했더라도 공직자의 직무와 상관이 없다며 무죄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김영란 법’은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공직자의 금품수수를 처벌할 수 있게 했다.

골프채 뇌물 수수사건을 계기로 도 당국도 근본적이고 실효적 반부패 공직 청렴 실천 강령 등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부정부패, 비리유착 공무원에 대한 파면 등 공직사회 영구 퇴출, 관련업체나 업자에 대한 입찰제한 등 강력한 패널티 등 공직사회의 정수(淨水)장치가 필요하고 시급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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