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내에 등록된 자원봉사단체는 1500여개. 현재 13만명이 자원봉사자로 등록돼 있고, 이들의 활동범위는 다양하다. 생활편의라던가 환경보호, 안전-방범 등의 활동영역이 중점적이고 이외 사회 곳곳의 요구에 따른 자원봉사 단체들도 점차 생겨나고 있다.

통계와 연구에 따르면, 자원봉사 단체의 활동 지속성은 5년 단위를 넘기가 쉽지 않다. 첫 뜻은 좋았으나, 지속성이나 전문성 등 여러 관문을 뛰어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에 대한 사회 인식이 높아지고, 수요도 많아지는 지금. 제주를 대표하는 자원봉사 단체와 자원봉사자를 만나 그들의 활동이야기, 그리고 지속가능한 자원봉사를 위해 현실적으로 필요한 대안을 들어봤다.

딱 알맞은 행복감을 의미하는 ‘노고로기’. 넘치고 모자람 없이 딱 알맞은 그 노고로기의 행복을 전하기 위해 ‘체온’으로 상대의 마음을 치유하는 자원봉사 단체가 있어 눈길을 끈다.

벌써 활동을 시작한지 15년차인 [노고로기 적십자 봉사회].

50명 규모의 이 단체가 움직일 때는 별다른 도구나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따뜻한 ‘체온’. 손끝으로 어르신들의 불편한 몸을 보듬으며 안부를 묻고 소소한 얘기들을 주고받는 일이 이들의 자원봉사다.

간단해 보이지만 한 시간의 자원봉사를 나가기 위해 수십 시간의 ‘스포츠 마사지’교육을 받고, 매달 회원 자체의 교육을 실시한다. 실력은 물론, 자원봉사의 의미를 제대로 새긴다는 평을 받는 단체이기도 하다.

처음 모임을 만든 건 2002년, 단체의 회장인 김재홍씨가 서귀포 성요셉요양원에 들러 할머니 한 두분 어깨를 주물러 드리던 것이 시작이었다.

[노고로기 적십자 봉사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재홍씨. @변상희 기자

“이 일을 시작할 때, 개인적으로 모든 상황이 좋지 않았었죠. 척추 디스크 환자 판정을 받으며 하던 합기도장도 기울기 시작했고요. 그러던 차에 인연이 있던 성요셉요양원에 들러 마사지를 해드렸는데 돌아보니, 그때가 재기의 기회가 된 거더군요.”

스스로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누군가의 몸을 보살피며 그는 오히려 자신을 치유하게 됐다. 소문을 듣고 10여명의 회원이 모였고, 2007년에는 제주시로 활동을 넓혀 현재는 50명의 스포츠마사지 봉사자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요양원, 이시돌요양원, 성요셉요양원, 광양 탑동365요양원과 결연을 맺으며 매주 꾸준히 자원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회원들이 4개조로 나눠 매주 돌아가며 진행하는 방식인데, 한때는 회원이 100명을 넘기도 했다.

“자원봉사점수를 받기 위해 부모가 애들을 데리고 가입하는 경우가 생기더군요. 그러면서 회원이 급격히 늘었는데 그래서는 단체를 통솔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때문에 가입조건을 걸었죠. 스포츠마사지 가격증을 취득하고 30시간 이상의 교육을 수료해야 들어올 수 있게요.”

김재홍 회장이 스포츠마사지 교육을 위해 직접 집필한 책. 비매품인 이 책으로 김 회장은 스포츠마사지사 평생교육원 양성과정 교육을 하기도 하고, 봉사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기도 한다. @변상희 기자

회원들은 공무원부터 회사원, 자영업자, 주부 등 다양하지만 이들 모두 나름의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이다. 지난 2011년에는 적십자 단체로 등록돼 큰 활동체계의 지휘도 받지만, 주된 활동들은 회원들 스스로 이어가고 있다.

“최소 30분 이상을 해야 마사지를 받는 분들의 몸이 풀려요. 일대 일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에 한번 봉사에 가려면 최소 회원이 10명 이상은 돼야죠. 회원들의 책임감도 높고 참여의지도 높기 때문에 인원이 안 되서 봉사를 못한 경우는 없어요.”

노고로기 봉사회 회원들은 매달 한번씩 모여 '교육'을 받는 등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노고로기 봉사회 제공

전국에 스포츠마사지 봉사단은 많지 않다. 새로 생기더라도 채 1년이 안 돼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체계적인 활동으로 전문성을 갖고 지속되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스포츠 마사지라는 게 그냥 주무르는 게 아니거든요. 몸이 불편한 곳에 따라 처치 방법도 다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할 수 없죠. 무엇보다 봉사자의 손길을 받는 요양원 어르신들이 잘 아세요. ‘정(情)’을 갖고 ‘잘’ 해주는 지를요.”

언젠가는 손이 서투른 한 회원만 찾는 할머니가 계셨다. 요양원을 찾아갈 때마다 그 회원에게서만 마사지를 받길 원하셨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었다.

한번은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할머니가 기억력도 없어진 상태였는데, 요양원으로 돌아오시고 봉사단을 보자마자 그 회원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더란다. ‘정(情)’으로 새겨진 그 체온의 기억이 각인됐기 때문이다.

“신입 회원들에게 그런 말을 하곤 해요. ‘당신이 우리의 미래에요. 따뜻한 정으로 스킨쉽을 나누는 우리의 행위가 언젠가 우리에게 돌아올 거에요’라고요. 사실 봉사단체로서 요양원의 어르신들을 치유한다고 하지만, 따뜻한 그분들의 체온을 나누면서 도리어 우리들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가파도나 우도, 추자도 등 노인 인구가 많은 섬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노고로기 적십자 봉사회 제공

회원들은 그렇게 매주 요양원 어르신들과 ‘체온’을 나누는 일이 좋아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가끔 마주하는 힘 빠지는 일도 더러 있다고 한다.

지난 일이지만 어느 곳에서는 봉사자가 가도 기관 직원들이 본체만체 하기도 했고, 몇 년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갔는데도 일과표에 한줄 적어놓지 않은 경험도 있다. 어떤 때는 근무하지 않는 일요일에는 오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마사지 말고 청소나 하고 가라고 한 곳도 있다.

“어디서 돈을 받고 나온 것처럼 대하는 경우도 있어요. 회원들 스스로 회비를 내며 얼마 안 되는 예산으로 운영되는 데도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사회인식의 문제죠. 그럴 땐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느끼니까요. 그런 일들은 그냥 웃고 넘기죠.”

사회인식의 문제다. 자원봉사단체로 활동을 하다보면 눈에 띄는 기관의 활동들이 많이 보인다. 이를테면 ‘자본’을 앞세운 단체, ‘권력’이 얽힌 단체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는 자원봉사단체들이다.

자원봉사의 형태가 다양해지니 누가 옳고 그르다 할 문제는 아니지만, 그 주목에서 벗어나 있는 단체들에 대한 사회인식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돈을 얼마나 지원받고 넉넉히 활동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몇 시간 고되게 봉사를 하고서도 우리는 김밥 몇 줄, 방울토마토 몇 알로 서로 웃으며 하루를 마감해요. 회원들의 자부심은 ‘보람’으로 채워지니까요.”

그 보람을 ‘기억’으로 채워줄 수는 없을까 회장으로서 고민하게 된다. 감사패라던지 표창장 한 장이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봉사자로서 이만한 보람도 없어 해마다 회원들에게 챙겨주려 노력한다.

회장으로서 회원들에게 보람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매해 상장 등을 챙겨주려고 노력한다. 그런 보상은, 단체를 지속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변상희 기자

“회원들에게 뭔가를 돌려줘야 한다고 늘 생각해요. 작은 상장 하나라도 자신의 이름과 업적이 새겨진 것은 기록이고, 추억이 되죠. 봉사점수나 시간을 어디에 기록해 남길 수는 있지만, 그 추억과 기록은 새기지 않으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거든요.”

단체를 지속하기 위해 매달 기술적인 교육도 실시한다. 그러나 회원들을 붙잡고 그들의 첫 마음을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게 붙잡아두는 건 ‘보상’이기도 하다. 그 ‘보상’이라는 게 다른게 아니다. 사회의, 시민들의 ‘고마움의 적극적인 표현’만한 게 없다.

“이 삶이 좋아요. 이제 제 나이가 60을 넘어가는 데, 직업으로 하는 일을 앞으로 몇 년 더할지는 모르겠지만, 봉사만큼은 몸이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 끝까지 할거에요. 이미 생활의 일부이니까요. 지금 제게는 이만한 행복이 없어요.”

회장뿐일까. 그와 오랜 시간 매주 매달 만나는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행여 사정이 있어 한 주 활동에 빠지게 되면 ‘미안하다’ ‘괜찮다’며 서로 다독인다.

실적 쌓기는 물론 중요하지 않다. 지난 달 만난 어르신의 안부를 물으러, 이제는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지 제 몸처럼 훤한 어르신의 ‘체온’을 보듬으러 그들은 매주 움직인다.

“끈끈한 정이 있어요. 형식적인 관계가 아닌 거죠. 우리 단체의 오래가는 비결로 이만한 이유가 없지요.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단체’로 움직이는 일이니, 서로 만나면 행복해야 오래갈 수 있는 거니까요.”

얼마 전에는 회원들이 모여 추자도에도 봉사를 다녀왔다. 오는 7월에는 가파도도 갈 계획이다. 가파도는 매해 들러 회원들이 1박까지 하면서 어르신들께 마사지를 해드리는 데, 80%이상이 노인 이라 특별히 챙기는 곳이기도 하다.

“활동범위를 더 넓히고 싶어요. 지금은 매주 가는 요양원 4곳과 가파도, 또 가끔 도자원봉사센터를 통해 마을에 나가기도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곳에 가서 어르신들의 몸을 치유해드리고 싶지요.”

딱 알맞은 행복감을 말하는 제주어 ‘노고록허다’. 겉치레로 반짝이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곳에 딱 알맞은 ‘안락함’을 전하는 일. [노고로기 적십자 봉사단체]가 퍼뜨릴 그 노고록함이 잔잔하고 따뜻하게 제주 곳곳에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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