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사람들은 누구나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꾼다. 매일 반복되는 시시포스의 노역 같은 삶이 고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지루한 탓이기도 하다. 시간이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이들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도발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찾을 것이다. 그럴 엄두가 나지않는 이들 중에는 자신의 삶을 초월한 신화에 빠져들어 세상사를 잠시 잊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물론 도전적인 사람이라면 어려움과 맞서며 현실 속에 자신의 이상향을 만들어낼 것이다. 현실의 이상향을 만들어 내거나 낯선 곳의 일탈을 감행하는 것, 신화적 사실주의는 이 모든 경우를 한 보따리에 품을 수 있는 만산장(漫山帳)이다. 만산장은 거미줄로 짠 만든 전설 속의 직물로 세상 모든 것을 덮어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신화가 만산장처럼 모든 것을 감쌀 수 있는 이유는 환상을 통해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는 역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는 만산장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처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갑갑함 때문이었는지 옛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곳과는 사뭇 다른 신비한 세상을 고안해냈다. 그것은 파라다이스 같은 안락과 평화의 섬으로 그려지거나, 이 세상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운 지옥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세계를 둘러싼 또 다른 세상에는 수많은 이계(異界)가 있는 듯하다.

사방이 바닷물로 휘감겨 도는 제주섬을 대표하는 이계는 바다의 왕국 용궁일 것이다. 오늘 지면을 통해 공개할 놀라운 이야기는 제주에 용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게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제주의 옛 사람들은 이 관문에 ‘용궁올레’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과연 용궁올레는 어디에 있을까?

표선면 신천리 해변의 용궁올레

성산읍 신풍리와 신천리의 경계, 끝도 없이 펼쳐진 잔디밭이 장관인 신천마장 바다기슭에 서면 기암괴석의 밀림 사이로 파도가 넘나드는 용궁올레를 두 눈으로 볼 수 있다. 이 바닷가는 기기묘묘하게 생긴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에 '용머리'라고도 불린다. 날카로운 갯바위만큼이나 물살이 거칠고 다른 곳에 비해 수심이 매우 깊은 탓에 근동의 ᄌᆞᆷ수와 어부들은 예로부터 남해용궁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라고 여겨왔다. 워낙 물살이 거칠어서 위험한 곳이기도 했거니와 신성한 곳이라 누구도 함부로 드나들지 않았던 금단의 바다기슭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칼선다리’와 더불어 ‘고망난 돌’로도 불리는 ‘창곰돌’이다.

표선면 신천리 해변의 칼선다리

바위의 모양이 칼날이 하늘을 찌를 듯이 곧추 선 모양을 한 ‘칼선다리’는 제주도 무속의 신점(神占) 의 하나인 신칼점 중 가장 나쁜 점괘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이 ‘칼선다리’는 세경본풀이 속의 자청비가 시부모가 낸 시험에 들 때 건넜던 서슬 퍼런 칼날로 된 다리에서 유래했다. ‘창곰돌’은 인간의 범접을 막기 위해 남해용궁의 수문장이 경계를 서는 용궁의 입구다. ‘창곰돌’이란 말도 ‘창구멍을 낸 돌’이라는 뜻으로 말하자면 누군가가 파수를 서는 망루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사는 세상과 다른 차원을 잇는 ‘용궁올레’의 전설 속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엮여 있어 그곳의 신비감을 더해준다.

표선면 신천리 해변의 창곰돌

제주의 여느 바닷가 마을처럼 이곳의 여인들도 힘든 물질로 하루하루를 연명했었다. 물질에 능한 이 마을ᄌᆞᆷ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ᄌᆞᆷ수 송씨’의 물질솜씨는 어느 누구보다 뛰어났었다고 한다. 송씨는 다른 ᄌᆞᆷ수들보다 담도 커서 겁 없이 용궁올레에서 물질을 하곤 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용궁올레로 자맥질해 들어간 송씨는 알 수 없는 광채에 휩싸여 정신을 잃고 말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송씨 앞엔 더 이상 깊은 바다 속이 아닌 듯 육지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놀란 그녀 앞에 어디선가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나 마치 자기를 쫓아오라는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송씨가 강아지를 쫓아 들어간 곳은 남해용궁의 입구였다. 용궁의 진풍경에 넋이 나가 우두커니 선 송씨 앞에 이번에는 선녀처럼 아리따운 여인이 나타나 인간이 올 수 없는 곳에 나타난 그를 보고 깜짝 놀라며 어서 뭍으로 달아나라고 충고했다.

그제야 이곳이 어딘지 알게 된 송씨는 선녀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허위허위 헤엄쳐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를 헤엄쳐 갔을까? 이제 뭍에 거의 다 왔다고 여긴 송씨는 두 번 다시 용궁의 진풍경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참을 수 없었다. 끝내 그녀는 용궁을 떠나올 때 절대 고개 돌려 뒤돌아보지 말라는 선녀의 당부를 어기고 말았다.

송씨가 고개를 돌려 용궁을 바라다보는 순간 삽시에 물속이 칠흑 같이 어두워지더니 어느 틈에 쫓아온 남해용궁의 수문장이 시퍼런 칼날을 겨누며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느냐는 수문장의 문초에 저간의 사정을 낱낱이 고한 송씨는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그가 측은했던지 수문장은 칼을 거두며 어서 나가라고 말했다. 이윽고 그를 용궁으로 이끌었던 강아지가 나타났고 그는 다시 강아지의 인도를 따라 뭍으로 올라왔다.

죽을 곳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송씨가 뭍에 발을 디디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바닷가에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가 일더니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칼날 같은 바위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랐다. 다시는 어떤 인간도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남해용왕이 칼을 거꾸로 세워놓고 뭍사람들의 출입을 막은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신천마장 해안가에는 남해용궁 수문장의 칼날인 ‘칼선다리’와 그가 파수를 서는 ‘창곰돌’, 그 너머엔 짙푸른 물살로 일렁이는 ‘용궁올레’가 바위의 모습으로 다듬어지게 된 것이다.

아름다움 풍광과 전설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 용궁올레의 사연처럼 제주의 굿에는 또 다른 용궁올레의 모습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제주에는 다른 어떤 지방도 넘볼 수 없는 수많은 본풀이를 낳은 아름다운 굿이 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1만8천신들의 고향’이기에 굿이 다채로울 수밖에.

우도면 하우목동 돈지당의 궤

그렇게 다채롭다는 굿 가운데 용궁올레는 과연 어떤 굿에서 모습을 드러낼까?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어 제주토박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영등굿’에 또 다른 용궁올레가 있다. 영등굿은 음력 2월 초하루부터 보름날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해안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굿이다. 이 때문에 제주에서는 2월을 달리 ‘영등달’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에 따라서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라고도 하고, 2월 전체를 영등달이라고도 한다. 초하루에서 보름까지건 한 달 전체이건 이 기간 안에 풍어를 기원하며 치르는 굿이 영등굿이다. 풍어를 기원하는 의식은 영등굿 말고도 ᄌᆞᆷ수굿, 요왕굿(용왕굿), 풍어굿 등이 있는데, 영등굿과 거의 차이가 없다. 다만 영등달에 치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름을 갖게 된 것일 뿐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을 지닌 굿들이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는 바다 일을 하는 이들이 가장 크게 신봉하는 신이 용왕이기 때문이다. 풍어의 의식 또한 그를 모시고 대접하는 ‘요왕맞이(용왕맞이)’가 중심이 된다.

요왕맞이에서 용궁올레의 모습을 어떻게 형상화될까? 제주의 굿에서 ‘요왕질’이라고 불리는 용궁의 관문은 굿청에 기다란 멍석을 깔고 좌우에 오색종이로 만든 ‘너울지’를 매단 솜대 여덟 개를 세워 꾸며놓은 것으로 마련된다. 여덟 개의 솜대를 ‘요왕문’이라고 부른다. 여덟 개의 요왕문 하나하나는 바다의 신들을 상징하며 제각기 이름이 있다. 각각 ‘천금산 요왕문, 적금산 요왕문, 동해 청요왕문, 서해 백요왕문, 남해 적요왕문, 북해 흑요왕문, 동경국 대왕문, 세경국 부인문’으로 불리는데 굿을 집전하는 심방(무당)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심방들은 이 관문을 만드는 것을 두고 ‘요왕문 잡는다.’라고 하며 모두 잡고나면 요왕질을 닦는 ‘요왕질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요왕질침은 음악과 춤, 노래를 동반해 신명나게 펼쳐지는데 그 과정은 마치 사람들이 나다니는 길을 새로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길을 만들 장소의 상태를 알아보는 과정인 ‘요왕수정국질 돌아봄’에서 시작해 따비로 땅을 파고, 파낸 흙을 치우고, 돌을 고르고, 흙을 다지고, 깨끗한 이슬을 뿌리는 등 여러 가지 공정이 이어진다. 심방은 마치 도로공사를 하는 것처럼 전 과정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하며 매 과정마다 호미, 괭이, 작대기 등을 든 것처럼 팬터마임 같은 동작이 섞인 춤을 춘다. 노동의 동작을 춤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보면 연극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다른 지방의 굿춤처럼 발을 구르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동작보다 종금종금 잔걸음을 걸어가며 요왕질을 따라 이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용궁으로 오가는 길을 만드는 요왕질침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망자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굿에서는 ‘영게질침’이라는 과정이 펼쳐진다. 이때에도 요왕질침과 비슷한 ‘영겟질’을 잡은 뒤, 역시 비슷한 과정을 이어가며 저승길을 만들어 망자를 저승으로 떠나보낸다.

건입동 본향 칠머리당 영등굿 中 요왕질침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할 것은 용궁을 잇는 요왕질과 저승을 잇는 영겟질 모두 마치 살아있는 사람이 현실의 공간을 이동하는 것처럼 또 다른 세상을 넘나든다는 점이다. 제주도 무속과 신화에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하늘옥황, 요왕수정국, 서천꽃밭, 영등땅, 웨눈베기섬, 강남천자국 등 다양한 이계(異界)가 존재한다. 하늘옥황이라고 해서 반드시 두레박을 기다리는 나무꾼처럼 수직으로 날아올라가야 하는 곳이라고 여길 일이 아니다. 저승이라고 해서 땅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제주의 신화들을 살피다보면 아흔아홉 갈림길을 걸어 걸어 저승에 닿는 강림차사도 있고, 천리둥이, 만리둥이라는 개마저 쫓을 수 있는 정도의 길을 걸어 서천꽃밭에 도착하는 할락궁이도 만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ᄌᆞᆷ수 송씨가 드나들었던 용궁올레도 마찬가지다. ‘하늘-땅-땅속’ 또는 ‘하늘-땅-바다 속’이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제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신화들은 보통 현실계와 이계를 아우르는 우주의 모양을 수직적인 구조로 펼쳐낸다. 그러나 제주신화 속 우주의 모습은 수평적이다. 하여 요왕질을 치는 심방의 춤 또한 수평적인 동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지역이 모두 수직적이고 제주는 무조건 수평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념이 우세한가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환경적으로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 탓에 제주토박이들의 우주관은 바다를 건너거나, 산길을 걷는 등 수평적 이동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굿이 대본이랄 수 있는 본풀이가 그러하니 요왕질의 모습이며 심방의 춤까지 모든 것이 수평적 우주관의 지배를 받는 셈이다.

조천읍 와흘리 본향 한거리하로산다의 궤

현실을 초월한 세계가 걷거나 헤엄치고 노 젓는 것만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이것은 마치 각박한 도시살이와 영혼 없는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제주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해 만사 젖히고 찾아드는 최근의 이주러시와도 닮은꼴이다. 제주토박이들은 육지사람이 제주를 동경해 찾아드는 것처럼 또 다른 세상으로 가고 싶어 했고, 갈 수 있는 현실감 있는 곳으로 창조해냈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마음만이라도 떠맡길 이상향을 가까이 두려했던 것이다. 그래서인가. 나는 올레코스로 이어진 신천마장 용궁올레 앞에 서서 바다로 이어진 용궁의 게이트를 보노라면 그대로 몸을 던져 망망한 바다 어딘가에 있다는 요왕수정국을 찾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이따금씩 느끼곤 한다.

*참고자료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제주설화집성

현용준, 제주도 무속연구, 집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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