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당 미술관 정원에는  잎새 하나 없는 감나무 가지에 작고 앙증스런 감들이 홍조 띤 얼굴로 백설의 한라산 꼭대기를 목이 빠지도록 쳐다보고 있습니다. 주말이라 잘못 왔나 싶었습니다. 현관문이 닫힌 줄  알고 돌아서려는데 들어오라는 친절한 안내자의 말씀에 현관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미술관 전시실에는 산수화와 풍경화들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천천히 여유롭게  한 점 한 점 감상을 했습니다. 자연은 늘 우리에게 편안한 안식처입니다. 그림에서 만나는 자연들 마다 편안하고 싱그럽습니다.

1층 전시실을 돌아서 2층으로 올라가니 변시지선생님 작품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황토색 바탕에 검은 선이 눈에 확 들어오는  그의 작품에는 쓰러져가는 초가, 구부정한 사나이, 조랑말, 소나무, 까마귀, 나룻배, 바람, 돌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구부정한 사나이는 고독합니다. 조랑말과 까마귀는 그 사나이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듯합니다. 수평선 나룻배 한 척은 사나이가 그리는 동경의 세계일 듯싶습니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사나이는 바로 화가 자신인 듯싶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인간의 그리움. 외로움, 고뇌, 고독, 풍파, 가난이 표현된 작품들입니다. 단순한 채색이면서도 깊이가 있는 채색입니다. 서양화와 수묵화의 만남입니다. 아늑한 느낌이며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작품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만났습니다. 그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백설이 덮인  한라산 자락에는 석양빛이 반사하여 불그스름한 평야가 펼쳐지고 황야에 불을 지르듯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흰 구름이 연기를 내며 하늘가로 날아 올라갑니다.  고즈넉한  저녁 바람에 흔들리는 고운 은빛의 물결 속으로 알몸으로 누워 있는 아름다운 곡선들이 차 안으로  들어와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화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