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반찬 몇 가지가 아니다. 매주 배달돼 오는 반찬꺼리를 받으며 홀로 사는 노인들은 그제야 타인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눈다. 집안 소소한 도움이 필요한 것부터 살아온 인생 넋두리까지... 봉사자들의 방문을 하루가 멀다하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어쩌다 한번 들르고 어쩌다 한번 봉사할 수 없는 이유다. 때문에 제주사회복지협 온누리봉사회 소속 봉사자들은 쉬지 않고 10년 이상 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했지요. 한 달에 한 번. 2주에 한 번... 개인적으로 처음 부탁받고 그렇게 시작했던 게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제주사회복지협의회 온누리봉사회 홍태욱 전 회장. 그는 지난 2001년부터 매주 독거노인 밑반찬 배달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변상희 기자

홍태욱 전 회장이 그렇게 온누리봉사회 활동에 함께 해 온지 15년째. 온누리봉사회가 창립한 게 1992년이니 절반이 넘는 기간을 몸담았다. 홍 전 회장은 밑반찬 배달 일을 매주 매달 그렇게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다.

밑반찬을 만들고 배달하는 일. ‘어르신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뭘까?’라는 물음에 봉사회가 선택한 일이었다.

“밑반찬 몇 가지를 만들고 배달하는 일이 우리 봉사의 전부가 아니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 찾아뵙기도 어려운 때, 혼자 사시는 어르신을 찾아뵙는 건 그분들께도 저희에게도 오고가는 정을 찾는 일이 됐지요.”

다른 봉사단체의 도움에서 벗어난 사각지대를 찾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독거노인, 조손가정을 정해 매주 반찬배달을 하며 건강상태도 묻고, 여름날엔 방충망도 살펴드리고 집안 장판이나 누수된 곳도 봐드린다. 많은 자원봉사단체들이 있지만 어르신들의 삶에 필요한 세세한 부분까지 봐드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제가 오늘 배달하는 이 반찬이 그분들 인생의 마지막 반찬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면 찾아 뵙고 눈 맞추고 얘기하는 일을 서둘러 할 수가 없어요. 한 군데 한번 배달하는 일이 좀 더디더라도 정성을 다해 시간을 보내려는 이유죠.”

언젠가는 반찬 만드는 행복나눔터 앞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후원인이 '상품' 감귤을 몇 박스씩 놓고 갔다. 쌀이나 과일이나 이렇게 여러 방법으로 후원해 주는 분들과 단체가 적지 않다. 온누리봉사회가 사명감을 갖고 독거노인 밑반찬 배달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온누리 봉사회 제공

홍 전 회장이 15년째 반찬배달 봉사를 해오면서 돌아가신 어르신이 10분 정도. 거의 매해 1분씩 돌아가셨다. 자식얘기, 살아온 얘기 하나 하나 꺼내놓으시던 어르신과의 정(情)을 생각하면 그런 순간들이 안타깝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이 봉사를 멈추지 못 한다.

“조리하는 분들도 힘드시고요. 배달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이 봉사는 우리가 베풀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삶의 활력소가 될 만큼 어르신들에게 받는 힘이 더 커요.”

현재 온누리봉사회는 60가구에 밑반찬을 배달하고 있다. 예전에는 100가구 이상도 했지만 인력이 부족해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젊은 층의 관심이 필요한 때란다.

“힘든 건, 사람이 부족하다는 거에요. 반찬 만들 돈이야 후원도 있고, 회비도 있고 그렇게 채우면 돼요. 하지만 꾸준히 함께 할 사람을 구한다는 게 쉽지가 않네요.”

밑반찬 배달 일은 한 사람이 많아야 1~3군데 집을 돈다. 반찬을 만든 당일 바로 따뜻한 온기가 돌 때 배달 일을 해야 하는데, 여러 곳을 돌면 그만큼 어르신들과 눈 마주칠 시간이 줄기 때문이다. 천천히, 정성을 다해 봉사를 해야 된다는 회원들의 마음이다.

홍 전 회장이 매주 밑반찬을 배달하는 곳은 3곳.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집안 소소한 것들을 고쳐내기도 한다. 정(情)이 그만한 기간 동안 차곡차곡 쌓여간다. @온누리봉사회 제공

“내가 맡은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배려의 마음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누군가를 ‘돕는다’가 아니라, 일상의 부분을 누군가와 ‘나눈다’로 생각한다면 봉사가 어려운 건 아니죠.”

온누리봉사회는 매주 화요일 오후 1시에 행복나눔터에서 밑반찬 조리를 하고 이어 그날 중 배달을 완료한다. 외도에서 조천까지 제주시 60가구를 대상으로 봉사하고 있고, 매주 밑반찬 조리에는 10명 배달에는 15명이 함께 한다. 또 매달 첫째 토요일과 넷째 일요일에는 요양원을 찾아 청소와 목욕봉사도 하고 있다. 많지 않은 회원으로 매주 밑반찬 봉사와 요양원 봉사까지. 그렇게 바쁜 활동을 이어가도 상-하반기 소양교육은 빼놓을 수 없다.

“봉사마인드를 유지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해요. 따라서 상-하반기에 나눠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봉사교육도 마련하죠. 우리의 봉사활동이 오래 가기 위해선, 활동도 중요하고 교육도 중요하니까요.”

홍 전 회장은 말벗이 절실한 독거노인 반찬 배달일을 앞으로도 할 수 있는 한 이어가겠다는 다짐이다. 10여년 넘게 활동해온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바쁜 삶 속에서 약간은 다른 일을 해본다는 것. 그 안에서 보람을 찾는다는 것은, 어디서 찾을 수 없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봉사요? 글쎄요... 봉사란 ‘내 삶의 활력소?’.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네요.”

제주사회복지협의회 온누리봉사회 자원봉사자들. 이들 대부분이 10년 이상 활동을 이어온 베테랑들이다. 보람과 의미를 생각하면 힘들어도 봉사일을 멈출 수 없다고 한다. @온누리봉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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