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에 발을 들여놓다

모처럼 추자도에 들어간다. 8월 폭염이지만 제주항여객터미널에는 배를 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필자도 지난 8일 가족과 함께 추자도행에 발을 들여놓는다.

추자도는 한반도와 제주도 본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섬이다. 제주도와는 거리를 두고 있어 마치 또 하나의 독립된 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추자도는 상추자, 하추자, 추포도, 횡간도 등의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군도로 이루어진 섬이다.

어업을 주로 하는 추자도는 바다낚시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갯바위가 낚시터이고 참조기와 멸치젓갈은 추자도의 대표 명물이다. 제주도에 속해 있는 섬이지만 언어와 풍습 등 문화는 전라남도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1271년 고려원종 12년까지 후풍도라 불리다가 전남 영암군에 소속될 무렵부터 추자도로 불렸다는 설과 조선 태조5년 섬에 추자나무 숲이 무성해 추자도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1896년 전남 완도군에 편입되었다가 910년에 제주도에 편입되었다.

최영장군 사당

추자도 올레길은 전체 17.7km로 7시간 정도 걸린다. 추자항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올레길을 따라 바위 탐방에 나선다.

추자항에서 인근 추자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최영장군 사당을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최영장군 사당 위 산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름답다. 특히 사람얼굴 닮은 바위에 시선이 오래 간다.

사람얼굴 바위를 보고 최영장군 사당으로 내려간다. 최영장군은 고려공민왕 23년(1374년) 탐라현 제주도에 있던 몽골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제주도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8월 24일부터 28일까지 나흘간 추자도에 머물렀다.

이후 몽골 군대를 토벌하고 돌아갈 때에도 같은 해 9월 23일부터 10월 10일까지 추자도에 체류했다.

추자도에서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추자도 주민들에게 어망 짜는 법과 어망을 이용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등 어민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주민들은 이러한 장군의 은덕을 기리고자 사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설로는 고려말 추자도에 출몰하던 왜구를 토벌한 최영장군을 위해 그의 뜻을 기리고자 사당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제주도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최영장군 사당 안에는 비석 모양으로 만들어진 위패가 있다. 높이는 1m가량이며, 표면은 검은색이다. 거기에 ‘조국도통대장최영장군신위(朝國都 統大將崔瑩將軍神位)’라 음각하고 빨간색으로 칠하여 놓았다.

위패의 왼쪽에는 영정을 걸어 모시고 있다. 사당 주위에는 돌담을 두르고 사당의 맞은편에 문을 달았다. 사당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 바로 옆에는 최영사당금표(崔瑩祠堂禁標)라는 비가 있다.

비의 앞면에는 ‘신묘금지비(神廟禁地碑)’라 음각되어 있음이 확인되나 측면 글자는 많이 마모되어 알아볼 수 없다.

최영장군 사당에서 왼쪽으로 시멘트로 된 올레길을 걷는다. 폭염에 걷는다는 것은 무리가 따르지만 쉬엄쉬엄 걷는다.

여기서 계속해서 봉글레산으로 향한다. 봉글레산 정상에서 나바론 절벽과 용듬벙을 바라본다.

추자 처서각

봉글레산에서 내려오면서 아담한 추자항 전경을 보고 추자 처서각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처서각으로 가는 길은 동산길이서 조금은 힘이 든다. 그러나 좁은 길 양쪽에 있는 타일벽화를 보는 순간 힘든 것은 사라져 버린다.

추자풍경을 담은 타일벽화를 보면서 걷는 길은 소박하고 아담하다. 타일벽화를 보면서 조금 걸어가니 눈앞에 처서각이 보인다.

박인택은 추자도에 사는 태인박씨의 입도선조로 조선중기에 추자도에 유배 와서 불교적 생활을 하며 주민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불교교리를 가르치면서 살았다고 한다.

처사각이 정확한 건립연도는 알 수 없으나 처음에는 마을 주택가에 소규모의 초가로 건립되어 제를 지내오다가 지금의 장소로 옮겨짓고 2차례에 걸쳐 보수하였다.

문중 후손이 병이 들어 갖가지 약으로도 고치지 못하고 있었는데 꿈에 박인택이 나타나 사당을 건립하고 공을 들이면 나을 것이라 하여 그렇게 하자 바로 병이 낳았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추자 처서각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본 대서리 마을이 정겹게 다가온다.

추자등대공원

추자 처서각에 내려와 추자등대공원으로 향한다. 등대공원으로 가는 길은 오래된 철도 침목으로 사용되었던 나무로 조성했다. 470개의 나무계단(높이 450m)으로 이루어져 있어 힘이 든다.

그늘을 찾아 쉬기를 몇 번 반복 끝에 정상에 오르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넋을 잃게 만든다.

추자교가 보이고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는 물론 전남 보길도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으며 이 전경은 마치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에다 유·무인 군도의 형국이 바다 가운데 ‘가래나무(楸)의 열매를 흩뿌려 놓은 것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추자도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등대 입구에는 전시실, 체험관, 홍보관을 설치해 놓았다. 낚시를 빼곤 내세울 게 없는 추자가 이제 관광과 휴식을 겸할 수 있는 등대가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등대공원을 내려오면서 보는 바다 풍경이 아름답다. 등대공원을 내려와 추자교 쉼터에서 몸을 쉰다.

추자교는 1966년 길이 156m 폭 3.4m의 다리를 완공했다. 그 후 교량의 안전을 위해 4.5톤 이상의 차량운행을 금지시켰으나 1993년 골재를 실은 트럭이 통행하다 다리가 무너져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후 1995년 4월 30일 총길이 212.35m.폭 8.6m로 완공되어 상추자와 하추자를 연결하여 추자주민의 삶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사자바위

사자바위를 수덕도라고도 부르는데 수덕도 바위 꼭대기에서 물새들이 쏜살 같이 바다 속으로 내리 꽂히며 고기를 잡는 모습을 수덕낙안이라 하여 추자 10경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듬직한 모습이 사나운 사자가 누운 상태에서 상체를 바로 세우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수문장처럼 하추자를 지키는 형국이다.

어찌 보면 한 마리 사자가 엎드려 앉아 머리를 쳐든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바위는 바닷가에서도 사자처럼 보이지만, 산 정상에서 보면 그 형태가 뚜렷하게 보인다.

보는 방향에 따라 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찌 보면 물개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추자 사람들은 이 사자바위를 수호신처럼 믿고 있다.

이제 이러한 사자바위를 관광자원화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모세의 기적 일어나는 ‘다무래미’ 섬

첫날 무더위로 인해 다음날은 자동차를 빌려 다무래미로 향한다. 다무래미 섬은 서귀포시 강정동 서건도와 같이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다무래미는 썰물 때만 추자도와 연결이 되는 섬이다. 계단을 내려가면 몽돌해변이 있다.

서편의 바닷가는 고기가 많기로 추자도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작은 물고기 떼가 바로 눈앞에서 물위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무래미 섬 뒤로는 추자10경중 제2경인 직구낙조라 부르는 곳으로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다무래미 섬 왼쪽 맞은편에는 사람얼굴을 한 바위가 시선을 끈다. 이 바위는 서양 사람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다무래미를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용듬벙과 나바론 절벽

용듬범은 해지는 노을이 아름다운 곳이다.

용듬벙 정상을 봉글레산에서 바라보니 돼지머리 형상을 한 바위가 있다. 주민들은 꼭 돼지머리 바위라 부르지는 않지만 바위의 생김새가 꼭 돼지머리 닮았다는 생각이다.

이 바위는 나바론 절벽을 바라보며 절벽을 오르는 사람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두 눈을 지긋하게 감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나바론 절벽은 돈대산, 추석산 등과 더불어 추자를 대표하는 큰 산이다. 절벽 정상에 올라가면 해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급경사면의 기암이이어서 조심해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더욱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아찔해서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추자주민들은 나바론 절벽을 두고 하늘길이라고 한다. 아찔한 절벽을 옆에 끼고 경사가 이어지는 절벽과 해수면과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

영화 나바론 요새의 촬영지를 떠올리게 한다.

<바다로부터 나바론 절벽까지 연결된 벼랑이 마치 용이 기어간 자국처럼 비늘자국이 나 있어 옛날에 여기 살던 용이 날아 올라가면서 남긴 자국이라고 한다. 사진 용등벙>

폭염으로 나바론 절벽은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용등벙에서 나바론 절벽을 바라본다.

용듬벙 초입에서 바라본 나바론 절벽은 또 다른 장관과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용듬벙은 나바론 절벽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고, 나무계단이 놓여있어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 용듬벙은 바다로부터 나바론 절벽까지 연결된 벼랑이 마치 용이 기어간 자국처럼 비늘자국이 나 있어 옛날에 여기 살던 용이 날아 올라가면서 남긴 자국이라고 한다.

용듬벙 초입에서 바라본 주변의 기암괴석과 나바론 절벽의 위용을 느끼며 추자교를 건너 하추자로 향한다.

추자교를 건너 오른쪽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묵리고갯길을 만난다. 여기서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 섬과 섬의 조화를 느낀다. 저 멀리 한라산도 보인다.

여기서 추자 10경의 중의 하나인 장작평사를 거쳐 모진이 해변으로 간다. 장작평사는 신양폭포구의 해변을 말하는데 폭 20여m, 길이 300m의 자갈해변이다.

자갈해변은 모진이 해변 등 추자 곳곳에 있다. 작은 자갈이 해변을 가득 메워 바닷물이 들락거리면서 내도 알작지처럼 돌 사이로 흐르는 소리가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것만 같다.

황경한의 묘와 애기바위

여기서 시멘트로 된 동산길을 1km쯤 가다보면 아름다운 해안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에 황경한의 묘가 있다. 황경한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황사영 알렉시오와 제주관노로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 부부의 아들이다. 정난주는 유명한 남인가문인 정약현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다. 1801년 아들 황경한을 안고 귀양길에 오른다.

제주도에 가던 중 정난주는 추자도에 이르러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을 걱정하여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올려놓고 사공들에게는 죽었다고 말한다. 마친 지나가던 어부가 갯바위 위에서 울고 있는 황경한의 울음소리를 듣고 데려가 키웠다.

묘 앞 전망 좋은 곳에서 동쪽으로 튀어나온 바위 정상부근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이 두 살 아이인 황경한이 버려져 울던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애기바위라고 부른다. 현지를 안내한 주민은 물새들이 날아와 앉는다고 해서 물새바위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신대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랑이 바위

여기서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절벽 왼쪽에 호랑이 바위를 볼 수 있다.

여기서도 호랑이 바위를 볼 수 있지만 신대산 정상에서 바라봐야만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

신대산 전망대에서 보는 크고 작은 섬들이 푸른 바다위에 펼쳐진 풍경을 파노라마에 담아본다.

호랑이 바위는 호랑이가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우는 형상이라고 한다. 딱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통곡하듯 하늘을 쳐다보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어찌 보면 호랑이가 살짝 뒤돌아보는 모습 같기도 하다.

호랑이 바위 허리 아래로는 인조동굴이 있다. 제주 해안 곳곳에서도 볼 수 있는 진지동굴이다. 일본군의 만행의 흔적이 이고 추자도에까지 미쳤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신대산 전망대에서 내려와 예초리 기정길을 약 10분쯤 걷는다. 아름다운 해안 풍경에 넋을 잃게 만든다.

엄바위와 엄바위장승

여기서 바닷길을 따라 길을 재촉하면 길 왼쪽에 커다란 바위인 엄바위와 그 바위 밑에 엄바위장승이 있다.

엄바위는 어찌 보면 바다 속으로 쓰러질 것 같이 기우뚱한 모습을 하고 있다. 생김새는 장엄하고 거대한 바위이다.

엄바위 앞을 지날 때에는 걸음을 멈추고 절을 하고 지나갔고 마을에 액운이 없고 고기가 많이 잡히게 해달라고 기원을 드렸다고 한다.

이 엄바위 밑에 언제부터 억발장사라는 목장승을 세워 놓았다. 1940경에는 장승 2기가 세워졌는데 지금은 돌로 장승을 세워 놓고 있다.

돌장승이 세워지기 전에는 높이 270cm, 지름 20cm의 통나무를 이용하여 얼굴부분만 조각했고, 눈꼬리는 올라가 있고 이빨이 드러나도록 입을 벌린 형태의 목장승을 세워 놓았다.

주민들은 ‘예추장석’이라 부르며 거대한 엄바위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해마다 걸궁을 할 때면 꼭 엄바위 밑에 와 한바탕 놀곤 했다

엄바위와 관련해 재미있는 전설이 내려온다.

엄바위 근처 신양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는 울창한 숲이 있었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도깨비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지 모르지만 그 나무를 베어버리자 나무에서 피가 흘렀고, 이곳에 살던 앵무새가 날아가면서 상추자와 하추자가 연결되면 다시 오겠다며 떠나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엄바위에서 약 150m 쯤 떨어진 바다에 약 500톤이 넘는 공기돌 닮은 바윗돌 5개가 있어 이걸 억발장사 공기돌이라고 했다. 어느 날 엄바위의 억발장사가 공기놀이를 하던 중 심심해서 횡간도까지 뛰어갔다 왔다하다가 그만 바위에서 미끄러져 죽었다고 한다.

또한 횡간도는 지네형이고 예초리는 닭형이어서 닭과 지네는 서로 상극이라서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이 결혼을 하면 청상과부가 된다고 해서 결혼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오지박 전망대

엄바위 장승이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지박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 소나무 숲길을 따라 30m 정도 들어가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면 추포도와 염섬, 예도, 검등여, 횡간도 등 5개의 섬이 보인다. 이들 5개의 섬이 마치 바다 위를 두둥실 떠 있는 모습과 같이 보여 오지박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짚 푸른 바다위에서 아름답게 떠 있는 섬이 한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는 것 같다.

이 오지박 전망대 바위는 8~10m 정도 길게 형성되어 있다.

<본 “제주의 기암괴석, 바위를 찾아” 쪽의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본 글과 사진의 무단전재 또는 재배포를 엄격히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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