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1892~1982)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현재의 역사가 사이의 대화 또는 해석이나 선택’이라는 이야기다.

‘역사는 본질상 ’변화‘라고도 했다.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항상 다시 기록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근대 역사학의 확립자라는 독일의 랑케(1795~1886)역시 “역사 해석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했었다.

감히 이들의 도저(到底)한 학문영역이나 심오한 역사 인식을 넘볼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거나 ‘역사해석은 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와 닿는 대목이어서 인용해본 것이다.

모든 사건에 대한 역사해석은 ‘만고불변의 진리일 수만은 없다’는데 동의하고자 함이다.

일획일자도 고칠 수 없는 성역은 아닌 것이다. 무오류의 역사해석은 불가능 한 일이어서 그렇다.

앞말이 길어졌다.

최근 한 원로작가의 ‘4.3’관련 강의가 타의에 의해 무산된 것도 역사해석이나 역사 인식의 시각차에서 비롯된 사태로 볼 수 있다.

현길언작가(76. 전 한양대 교수)는 제주출신 원로 소설가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소설도 여럿 있다. 지금도 활발하게 작품 또는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이다.

현작가는 지난 9월 28일 ‘4.3 평화공원’에서 ‘제주의 가슴 아픈 현대사, 4.3’을 주제로 ‘특강이 예정돼 있었다.

지난 28일부터 30일까지 방송작가, 방송PD, 로케이션 매니저 등을 초청해 진행 했던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창작물 발굴 차원에서 문화관광체육부가 마련했다.

제주도와 제주영상위원회가 공동 주관 기관으로 참여했었다.

그런데 특강은 무산됐다.

‘4.3 유족회’ 등 4.3 관련 단체의 반발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현작가를 ‘4.3 왜곡 인물’로 매도하고 있다.

‘4.3 왜곡 인물’이 ‘4.3을 이야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작가는 지난 2003년 자신이 편집 발행인으로 있는 정기간행물 ‘본질과 현상’ 여름호와 지난 6월 발간한 책 ‘정치권력과 역사 왜곡’에서 ‘제주 4.3사건 진상 조사보고서’를 비판했었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는 지난 2003년 10월 15일,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를 최종 확정했다.

여기서는 ‘4.3’에 대해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해,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작가는 ‘제주 4.3사건은 의로운 저항이 아니라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반란이며 진상보고서가 이를 왜곡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장봉기냐’, ‘반란이냐’,는 용어선택의 충돌은 사건을 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본질에 접근하는 이 같은 시각차가 ‘너는 악’이고, ‘나는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된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진상보고서가 절대 선’이고 ‘현작가의 시각이 절대 악’이라고 충돌할 때나 그 반대의 경우, 갈등은 더욱 심각해 질 수밖에 없다.

이번 현작가의 ‘4.3 관련 특강 무산’이 이러한 이분법적 현상의 결과라면 여간 안타깝고 슬프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양성을 긍정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보다 성숙한 토론문화 기대는 요원한 일인가.

그렇지 않아도 현작가의 ‘4.3반란’ 주장과 관련하여 제주도내 ‘4.3 관련 단체’ 등으로부터 무차별적 인신공격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악의적 곡필이자 악필’, ‘순한 양의 탈을 벗어버린 괴물’, ‘보수 세력의 앞잡이’, ‘영혼 없는 존재’, 등 등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언어폭력이 난무했다.

무자비한 인격 살해나 다름없다.

감정적 증오나 적나라한 욕설은 논리의 취약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성적 영역에 감정이 간섭하고 들어오면 논리보다 언어폭력이 앞서게 된다.

그렇다면 현작가의 ‘4.3 특강’은 무산시킬 것이 아니라 성숙한 논리적 공방의 장으로 승화시켰어야 했다.

특강을 듣고 거기서 ‘4.3 보고서’와의 충돌 부분을 변별해내고 잘못을 바로잡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성숙한 대응이 필요하지 않았겠는가.

나의 생각과, 나의 시각과, 나의 해석 방법과 다르다고 상대의 논리나 주장을 짓밟아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적 완승주의에는 상생이 숨 쉴 여지가 없다. 상생의 기본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긍정하는데서 출발한다.

아직도 ‘가슴 아픈 역사 인식’에 대한 멱살잡이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 섬뜩하고 씁쓸해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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