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자원봉사자들의 땀이 빛을 발했다.

5일 새벽,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태풍 ‘차바’가 제주 곳곳에 생채기를 남겼지만, 태풍이 잠잠해지자마자 현장에 투입된 자원봉사자들의 땀에 하나 둘 복구되기 시작했다. 

중장비 등을 이용한 시설복구가 필요한 곳 이외의 피해현장은 5일 오전 중 곧바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열일 제치고 달려온 자원봉사자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현장 복구에 애를 썼다.

제주지역의 재해 재난현장에 빠질 수 없는 이들의 활약을 직접 만나봤다.

태풍이 올 때마다 상습 피해를 입는 제주시 용담동 용한로.

태풍이 지나간 5일 오전 현장을 찾아보니 용한로 근처에 주차됐던 차들은 새벽 물에 휩쓸려 서로 뒤엉킨채 밀려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도로는 두꺼운 진흙탕과 나뭇가지들로 덮였고, 아직 채 빠지지 못한 물에 도로 일부 구간이 잠겨 있어 시민들의 통행이 어려운 상황.

그때 자원봉사자 한 명이 근처 공사장에서 뜯어진 나무 합판 하나를 들고 횡단보도로 향한다. 제법 무거운 합판을 횡단보도 진입 구간에 내려놓자, 두꺼운 진흙탕에 고인 물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던 시민들이 수월하게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5일 오전 태풍 피해가 컸던 용한로에서 자원봉사자 양운기(60대)씨가 근처 버려진 합판을 갖고 횡단보도 근처 통행이 어려운 구간에 임시 통행로를 만들자 시민들이 수월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게 됐다. @변상희 기자

누가 시키지도, 누가 청하지도 않은 일. 그 사소한 도움 하나로 시민들의 발은 젖지 않고 피해현장을 지나칠 수 있었다.

기꺼이 합판 하나로 임시 다리를 만들어 시민들의 통행에 도움을 준 자원봉사자 양운기(60대)씨,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용한로로 향한 그였다. 용담1동 통장협의회 소속이기도 하지만, 10년 넘게 태풍 재해재난 현장에서 땀흘려온 나름 베테랑 자원봉사자다.

“마을 책임자이니 달려오기도 하지만, 당연히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 생각하고 매번 태풍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달려오지요”

가장 기억나는 때는 2002년 태풍 ‘루사’때였다.

“난리도 아니였지요. 여기 용한로가 다 침수되고 집들이 물에 잠기고, 도로 정비하고 물빼는 데에만 1주일 넘게 고생을 했지요. 그렇게 고생을 하더라도 그 보람과 내 스스로의 의무감을 생각하면 이런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안 올 수가 없어요”

5일 오전 태풍 '차바'가 휩쓸고 간 용한로 피해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복구에 힘을 썼다. @변상희 기자

탑동과 한천이 만나는 동한두기 근처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도로 정비에 열을 올린다. 폭우에 강풍에 의한 높은 파도에 탑동의 동한두기는 태풍피해 상습지역 중 하나다. 현장을 찾은 시간은 아직 오전이었지만 수십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돼 도로는 금새 정리가 됐다.

“매해 오지요. 오는 12월 되면 제가 이렇게 자원봉사를 시작한지도 30년을 채우게 됩니다.”

동한두기 피해 현장에서 만난 이정수(60대)씨. 삼도2동 통장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복지며 환경이며 교통이며 안 해본 봉사가 없다.

태풍때마다 피해가 발생하는 동한두기, 이번에도 도로 복구에 나선 자원봉사자 이정수(60대)씨. 재난재해 복구 현장에서 만난 그는 구슬땀을 흘리며 신속한 도로 정비에 힘을 쏟았다. @변상희 기자

시작은 88올림픽 때였다. 마을 환경을 보다 낫게 하는 데 손을 걷어부쳤던 일에서부터 태풍 재해재난 현장에 바로 바로 달려오는 자원봉사까지. 이제 곧 30년차니, 안 겪어본 태풍이 없었다.

“가장 기억나는 건 2001년 태풍 ‘나리’죠. 여기 탑동 동한두기에 밀려온 통나무며 자동차를 치우는데만 3일이 넘게 걸렸고, 침수 피해 가구의 물을 빼는 데도 한참 시간이 걸렸으니까요.”

갖가지 태풍을 다 겪어보고 나니, 재난 피해 현장에서 필요한 건 ‘예방’이라고 한다.

“상습 침수지역에 사는 어려운 가구들을 보면 피해 입은 데 또 입고 반복이지요. 집의 시설이 열악해서 더 그렇고요. 물이 안 들어가게끔 미리 모래주머니를 근처에 쌓아놓던가, 시설 보수에 지원이 더해졌으면 해요.”

동한두기 근처가 물바다가 될 때, 근처 노인들을 대피시키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자원봉사자의 더 많은 인력은 물론 그 중 ‘젊은 인력’의 힘이 아쉬울 때가 바로 그런 때다.

“사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항상 이 피해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나면 드는 생각이에요. 그 어지럽고, 뒤죽박죽된 현장을 다 치우는 게, 그냥 장비로 모두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요. 장비는 몇 없어도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치우는 거죠. 하고나면 그래서 더 보람차요”

태풍 피해가 발생한 동한두기에서부터 탑동 방파제 구간까지, 자원봉사자들이 방파제 넘어오는 파도를 맞으면서 도로 정비에 힘을 보탰다. @변상희 기자

현장서 만난 최금옥(50대)씨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어려운 성장기를 겪으며 받아왔던 사회의 혜택을 환원하기 위해 자원봉사에 뛰어들었다는 그녀다.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잖아요. 그래서 내 일을 다 제쳐두고 오게 돼요. 이런 현장에서 힘을 보탠지 10년째가 되가는 데, 올 때마다 늘 보람돼요”

도자원봉사센터 회원이기도 한 그녀는 양로원, 장애인 시설 봉사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저 내가 받은 걸 되돌려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하면서 쌓이는 보람을 찾는 즐거움도 적지 않다.

다만 아쉬운 건, 힘과 장비다. 재난재해 현장에서 인력이 할 수 있는 한계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시절 받았던 사회의 혜택을 환원하기 위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는 최금옥(50대)씨. 5일 태풍 '차바'가 강타한 이후의 재해복구 현장에서도 묵묵히 땀을 흘리며 봉사하는 그녀다. @변상희 기자

“도로정비에도 장비가 함께 거들면서 하면, 아무래도 더 신속하게 정리가 될 것 같아요. 무거운 것들을 들고 치우고 할 일이 있을 땐, 젊은 사람의 ‘힘’이 아쉽기도 하죠”

용한로와 동한두기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은 연령대가 5-60대. 젊은 군인들이 투입돼 있기도 하지만 자발적인 시민들의 도움에서 ‘젊은 인력’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10년째, 20년째, 30년째 자원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분들이 대다수인 재난재해현장. 이들이 더는 힘을 보태기 어려울 때, 그 자리엔 누가 있을까 고민이 남는 자원봉사 현장이었다.

“맨 손과 땀만으로 재해현장을 복구시키는 일. 누구에게만 정해진 일은 아니죠. 다만 우리가 ‘꼭 해야 할 일’로 생각한다면, 다른 누가 할 일이 아닌 ‘우리가’ 해야할 일로 생각한다면 좋겠어요. 그런 사회의식이 퍼진다면, 이런 현장은 단 몇 시간 안에 복구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는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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