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다는 것

                                                     김경훈

87년 6월항쟁 이후 30년 동안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현장을 떠나갔다

혹은 다른 길로 다른 노선으로 혹은 전향하여 다른 곳으로

혹은 먼저 세상을 뜨기도 하였다

결국 반에 반도 남지 않았다

한번 간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진짜로 남는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버리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는다는 것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모두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서 마지막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최후의 임종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지 않은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을 지키려는 것이다

 

모두가 희망이 없다고

조선은 틀려버렸다고 해방은 오지 않는다고

체념하고 절망하고 전향하고 배신할 때도

그 마지막까지 남아서

지조를 지키며 독립의 등불을 치켜든 투사들처럼

 

모든 관심에서 벗어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오히려

비웃고 비야냥대고 대놓고 능멸하고

욕설을 퍼부어대도 오직 한 마음 한 뜻으로

맹세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그 맹세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까지 남아 새날이 올 때까지

깨어나서 외치는 그 함성을 새기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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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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