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6일전쟁>은 많은 신화를 낳았다. 아랍의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등의 대연합군을 소국 이스라엘군이 6일 전쟁 속에 대 승리를 거두었다."

"소국 이스라엘군이 대연합군을 상대로 전쟁에 이겼다는 그 신화보다 더 뛰어난 신화가 있다. 외국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국민들이 국가 수호를 위해 스스로가 앞다투어 귀국해서 이 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외국에 살고 있던 국민들이 조국의 전쟁 참전을 위해 스스로 귀국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역사는 인류 전쟁사에 없었던 일이다."

"이것은 군인의 귀감으로서 영원히 기록될 것이며 이 군인정신을 우리는 본받아야 할 것이다."

46년 전, 1970년도에 한국 육군에 입대한 필자는 1973년도 제대할 때까지 각종 훈련이나 정훈 시간 때마다 교관이나 상관에게 이스라엘 국민의 애국 정신과 군인 정신을 들어왔다.

이 중동전쟁은 1967년 6월 5일부터 10일까지 아랍의 연합군과 이스라엘 사이에 일어난 제3차 중동 전쟁이었다.

40배나 큰 아랍 연합군을 상대로 싸운 이스라엘군은 6일만에 승리를 거두고 아랍 연합군의 항복을 받아내서 쌍방이 유엔 정전협정을 수락했는데 이 전쟁을 <6일전쟁>이라고도 한다.

속전속결 속에 승리를 거둔 이스라엘의 영웅 모세 다얀 국방장관은 전쟁이 임박하자 이스라엘 국민들에게  이 전쟁에 참가할 지원병을 호소했었다.

지원병은 이스라엘 국내에서만이 아니고 외국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국민들도 참전하여 세계를 감동 시켰으며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끈 전쟁으로서 유명했다.

필자가 군에 입대하기 3년 전의 전쟁으로서 6일만의 이스라엘 승리에는 세계가 놀랐고 역사에 남을 새로운 전쟁사를 쓰게 했다.

필자가 군에 입대하여 군인으로서 다시 이 전쟁을 교본으로 교육을 받았을 때, 그들의 위대한 조국애와 행동력에 머리를 숙였던 당시의 현실성과 긴장감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1973년 군 복무를 마치고 일본에 온 필자는 1989년 9월부터 재일 대한민국 민단 오사카 이쿠노(生野)북지부 사무부장으로 근무했었다. 그후 필자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당시 북지부에 김규봉(고인)고문이 계셨는데 <재일학도 의용군>으로서 한국전쟁(6.25동란)에 참전했다는 사실이었다.

필자가 재일동포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처음 알았고, 이것을 한국 군대에서는 가르치지 않고 이스라엘군에 대해서만 귀에 멍이 들도록 가르쳤었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에 재일동포가 의용군으로서 참전 한 것은 이스라엘 재외국민이 참전 한 것보다 17년이나 앞섰던 것이다.

필자가 1973년 군에 있을 때까지 재일동포 의용군 참전은 들어보지 못했으며, 그 당시 지금까지 조국 전쟁에 오직 이스라엘만이 재외국민 참전국으로서 알려져 높게 평가 받았었다. 

재일학도 의용군은 모두 642명의 참전하여 전사, 행방불명이 135명. 일본 귀환자가 265명. 일본에 재입국을 거부 당한 미귀환자가 242명이었다.

미귀환자는 참전 당시 일본이 미군정하에 있어서 미군정과 협의해서 참전했는데 1952년 4월 28일에 발효된 미국과 일본간의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영향 때문이었다.

이 조약은 제2차대전의 공식적인 종전이 선언되고 국권을 회복한 일본은 재일학도 의용군에 대해 "일본의 허가를 받지 않고 임의 출국한 자들"로 규정하고 일본 재입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살면서 고국 전쟁에 참가한 재일학도 의용군들의 전사와 행방불명은 물론 일본이 재입국을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이산가족을 낳은 젊은 학도들의 숭고한 희생의 역사였다.

차별 받는 일본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동포사회의 지도자가 될 젊은 학도들이 이스라엘 보다 앞선 참전사가, 필자가 입대한 1970년도에도 군에서 가르치지 않았던 사실에 필자는 아연실색했었다.

창단 70주년을 맞이한 민단은 금년에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재일한국인의 역사를 기재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지금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식민지 종주국에서 거주국의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일상생활에 있어서 편리한 일들이 많겠지만 재일동포는 한국 국적을 고수하면서 민단 조직을 만들어 동포의 구심력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과거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외국 일본에 살면서 한국 국적을 갖고 일본 전국에 단일 조직 단체를 만든 것은 세계사에 지금도 민단 밖에 없다면서 유럽의 사회학자들도 놀라고 있다.

민단이 벌이고 있는 서명에는 첫째, 재일학도 의용군의 참전. 둘째, <주일한국 공관의 기증>. 셋째, <서울올림픽 성금과 IMF 위기 송금 등 조국공헌>이다.   

둘째의 <주일한국 공관의 기증>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당시 한국의 경제력은 미약했다. 동포들은 자신의 어려움도 무릅쓰고 대사관과 영사관을 포함해서 공관 10군데 중, 9군데의 공관의 토지, 건물을 기증했다.

셋째의 <서울올림픽 성금과 IMF 위기 송금 등 조국공헌>은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애는 재일동포의 헌신적인 많은 공헌이 있었다.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것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올림픽성금 일화 100억엔(한화 1.500억원)>, 1997년 IMF 위기 때의 송금 운동이다.

민단 스스로가 서명 운동을 벌이지 않아도 이렇게 재일동포가 고국을 위한 공헌과 업적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앞장서서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도록 교육적인 면에서 노력해야 했었다.

늦어도 많이 늦었지만 이 서명 운동은 운동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관철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며, 고국에서도 이 운동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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