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신들의 고향 제주에는 여신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섬 자체가 거대한 여신들의 신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의 세상도 다른 지역과 달리 여성의 사회활동이 두드러지고 진취적인 것을 두고 여신들의 기운이 세서 그렇다고도 말한다. 농담 섞인 이야기를 굳이 진지하게 따져 묻기 머쓱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에게 인간처럼 성별이 있겠냐는 말이다. 물론 외형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아서는 그들도 남성과 여성이 뚜렷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성과 여성성 중 어느 것이 우세한가를 겉모습에 덧씌운 결과다. 모든 신들은 본질적으로 남녀 양성 모두를 갖추고 있다. 제주의 여신들도 마찬가지다. 아리따운 여신의 모습을 황홀하게 연출하지만 그 이면에는 건장한 남성의 위용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너무 취하지 마시라.

제주의 여신들에게는 공통점이 두 가지 정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창조와 풍요의 권능이다. 먼저 창조는 자연창조와 생명창조로 다시 나눌 수 있는데 자연창조의 대표적 여신은 당연히 설문대할망이다. 생명창조에는 아이를 점지하는 삼싱할망이 있다. 제주의 마을마다 있는 일뤳당의 여신 일뤠할망도 육아치병신이라는 점에서 삼싱할망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풍요의 권능을 여신으로는 세경할망 자청비와 영등할망 등이 있다. 물론 이밖에도 많은 여신들이 창조와 풍요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

창조와 풍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권능은 사실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을 점지하는 일이나 오곡의 씨앗을 뿌려 풍요를 일구는 것이 사실은 모두 창조의 권능이지 않은가. ‘창조=풍요’라는 등식이 성립된다고 쳐서 창조의 권능으로 압축해보자. 만물과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에 여신이 어울릴까 남신이 어울릴까? 아무래도 여신 쪽이지 않을까. 지구상의 생물 대부분이 암컷이 잉태하고 2세를 낳는다. 자연의 이치가 이렇듯이 모성이야말로 창조의 원천이다. 때문에 제주도 신들 중에 창조의 권능 쪽은 여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양성을 구유하되 여성성이 강한 신들의 섬이라는 말이다.

창조의 행위는 모든 것이 신비롭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것만큼 깊은 전율을 일으키는 것은 없다. 태초의 신들은 대부분 스스로 태어난다. 제주의 신 중에서도 심방들의 말처럼 무위유화(無爲而化)한 존재들이 많다. ‘한라산 섯어깨, 송악산 백모레왓, 남산 아양동출땅’에서 솟아나거나 백일불공 끝에 어렵사리 탄생한 신도 있다. 무엇보다 신이 신을 경우가 가장 강한 모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가이아가 크라노스를 낳고, 레아가 제우스를 낳은 것처럼 제주의 여신들은 또 다른 신을 낳았다.

신을 낳아 신들의 어머니가 된 존재, 오늘 만날 첫 번째 여신은 제주신화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출산을 선보이는 ‘노가단풍아기씨’다. 정확히 말하면 ‘앞 이망에 햇님이 뒷 이망엔 ᄃᆞᆯ님이 이 산 압은 줄이 벋고 저 산 압은 발이 벋어 황금산 노가단풍 테역단풍 모에단풍 왕대월석 금하늘 ᄌᆞ지멩왕아기씨’라는 긴 이름만으로도 모두를 압도하는 이 여신은 제주도 신화의 근본이 되는 ‘초공본풀이’ 속의 성모(聖母)다. 심방들은 초공본풀이를 ‘신불휘’, 이공본풀이를 ‘꽃불휘’, 삼공본풀이를 ‘업불휘’라고 부르며 가장 중요한 신화로 여긴다. 세 가지 본풀이를 뭉뚱그려 이를 때는 ‘세불휘’라고 하는데 세 가지 뿌리라는 뜻을 담은 말이다. 초공본풀이의 신불휘는 신의 뿌리라는 뜻을 말이며 무당의 조상신 탄생이야기다. 이공본풀이의 꽃불휘는 인간의 생명과 이어진 생불꽃의 사연을 담았다는 뜻이다. 삼공본풀이의 업불휘는 인간의 업보와 이어진 타고난 운명을 좌우하는 신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임정국 대감과 짐정국 부인이 자식이 없어 백일불공 끝에 귀한 딸을 얻어 아름다운 수사를 있는 대로 쓸어 모아 기나긴 이름을 붙인다. 아기씨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부모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천하공사와 지하공사를 떠나며 집을 비우게 되고 그 사이에 황금산 상저절의 황주접선성이라는 젊은 중이 찾아와 마법으로 임신을 시킨 뒤 사라진다.

임신 사실은 알게 된 부모가 아기씨를 쫓아낸다. 아기씨는 불도땅이란 곳에서 아들 세쌍둥이를 낳아 기른다. 각각 ‘본멩두, 신멩두, 살에살축삼명두’라는 이름으로 성장한 삼형제는 삼천 명의 선비들에게 ‘젯부기 삼형제’라는 놀림을 받으면서도 악착같이 글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했다. 그러나 이들을 질투한 삼천선비들이 중의 자식들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은 안 될 일이라며 항의했다. 결국 삼형제는 과거급제를 취소당하고 말았다. 삼천선비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삼형제의 어머니인 노가단풍아기씨를 ‘삼천전제석궁’이라는 하늘나라 어딘가에 감금해버린다.

어머니를 구해낼 방도를 알기 위해 삼형제는 아버지 황주접선성을 찾아간다. 황주접선성은 아들들에게 팔자를 그르쳐야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무당의 상징인 ‘신칼·산판·요령’을 내려준다. 아버지에게서 물러나온 삼형제는 비슷한 처지의 ‘너사무너도령 삼형제’와 의형제를 맺고 ‘북, 설쒜, 데영’ 등 제주굿의 악기를 만들어 굿을 크게 펼치니 삼천전제석궁에 갇혔던 어머니가 풀려났다. 그리하여 어머니 노가단풍아기씨는 이승에서 ‘신칼·산판·요령’를 비롯한 무구(巫具)의 신이 되고, 아들 삼형제는 저승의 삼시왕이라는 신직(神職)을 받게 된다. 그 뒤 육형제는 삼천선비 중의 하나였던 유정승의 딸에게 신병(神病)을 내려 인간세상 최초의 심방(무당)이 되게 했다.

신과 인간을 잇는 영혼의 중개자인 심방의 조상신을 낳은 신의 어머니 노가단풍아기씨는 단지 신을 낳은 것만으로 신의 지위에 오른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노가단풍아기씨의 신성이 아들들에게 유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그 탄생부터 남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었고, 부모가 집을 비운 동안의 감금생활, 집에서 쫓겨남, 가슴과 겨드랑이로 세쌍둥이를 낳는 신비로운 출산, 삼천선비에 의한 또 다른 감금. 이 모든 일이 그가 신성을 획득하는 시험과정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획득한 신성이 아이들에게 전수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문전본풀이의 조왕신 ‘여산부인’은 문전신 ‘녹디성인’을 낳았고, 칠성본풀이의 주인공 ‘칠성아기씨’도 일곱 딸을 낳아 그들과 함께 칠성신으로 좌정했다.

두 세대에 걸친 신성에는 어머니 여신이 고난을 거치며 획득한 권능이 전제된다. 어머니가 신이 되지 않고서는 자식들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신성의 지위를 얻지 못한다. 물론 자식들이 공짜로 신성을 상속 받는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저마다 시련의 관문을 통과한 끝에 신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전제된 신성인 어머니가 없고서는 이들의 신성획득은 요원한 일이다. 신을 낳는 어머니의 신성을 모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무한한 사랑의 존재이듯 어머니 여신의 신성은 거룩한 모성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으리라.

한편 신성을 낳는 위대한 모성을 지니고도 미미한 존재로 잊혀져버린 여신들도 있다. 다행이도 제주의 경우처럼 영원히 신성한 존재로 기억되는 여신들은 대부분 구전신화 속에 남아있다. 제주의 노가단풍아기씨와 거의 같은 사연을 지닌 ‘당곰아기’를 비롯해 ‘바리데기’ 등 다른 지역의 위대한 여신들은 구전신화 속의 존재들이다. 이와 달리 기록신화 속의 여신들은 위대한 모성을 ‘출산’ 하나에만 쏟아 붓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다. 단군신화 속의 웅녀, 고구려 건국신화 속의 유화부인 등을 보시라. 단군과 추모를 낳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단군과 추모가 신성한 왕, 샤먼킹이 되는 동안 어머니 여신들은 종적을 감췄다. 유화부인이 고구려의 호국신으로 추앙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존재감을 어디 아들에 비길 수 있겠는가.

기록신화 중에서도 건국신화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각색된다. 선사의 신화시대와 이별하고 남성 중심의 역사시대로 접어든 이상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향하며 새 시대의 비전을 역설했을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장밋빛 청사진을 그리며 미래를 위한 개혁의 언사를 쏟아내는 요즘 정치인들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남성본위와 국가중심의 신화는 여신이 좌정할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제주신화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세경본풀이’에도 남성본위의 관점이 나타난다. 스스로 태어나 생사의 관문을 여러 차례 통과한 자청비는 세 자리의 농경신 중에 ‘중세경’의 신직(神職)을 맡는다. 반면 ‘문국성 문도령’은 자청비의 남편인 것 말고는 별다른 고난도 겪지 않고, 신비한 능력조차도 없는데 떼어 놓은 당상처럼 떡하니 ‘상세경’을 맡는다. 이것은 고대의 신화가 많은 시대를 거치는 동안 빚어진 결과다. 아마도 유교적 남성우월주의가 제주에 유포되던 시기에 세경본풀이 또한 적잖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그나마 자청비는 농경신 중에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말 그대로 찬밥덩어리신세로 전락한 신도 있다. 강원도 삼척시의 서구암이라는 바위에는 마귀할멈으로 추락한 ‘서구할미’의 사연이 있다. 거대한 자연석에 담긴 이야기인 것으로 보아 마고나 설문대의 변이형으로 봐야하는 이 이야기 속의 서구할미는 기다란 매부리코에 칼날 같은 손톱을 지니고 있어서 디즈니의 영화 백설공주 속의 마녀와 겹쳐진다. 고양이나 여우로 둔갑해 사람들을 해코지하거나 어린아이들에게 홍역을 퍼뜨리는 등 수많은 악행을 일삼다 근동에 소문난 효자 최진후에게 감화되어 죽음을 택한 뒤 바위로 변신했다고 한다.

마고가 마귀할멈으로 추락한 것처럼 서양의 여신들은 모성을 빼앗긴 채 흉측한 마녀로 전락했다. 아담과 함께 창조되었지만 창조주의 버림을 받아 쫓겨난 인류 최초의 여성 ‘릴리스’, 그리스신화에서 ‘달의 여신, 대지의 여신, 지하의 여신’ 세 자매가 한 몸에 합쳐진 여신 ‘헤카데’, 슬라브신화 속의 ‘바바야가’ 등 많은 모성의 여신들이 역사의 물결에 휩쓸려 마녀의 자리로 밀려났다.

서양의 기독교가 마녀를 낳고, 우리의 유교가 마귀할멈을 낳으며 역사시대는 남성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이어져 오늘날에 다다른 정경을 보라. 신화의 창조성이 지배하던 선사시대의 모성을 찾을 수 있는가. 신을 낳고 인간과 자연을 낳은 어머니가 사라진 시대는 파괴와 징벌의 남성성 일변도인 세상이다. 어머니 여신의 정령이 깃든 거대한 모석(母石)은 깨어지고 다듬어져 건축물의 재료로 쓰이거나 그도 아니면 버려진다. 숲이며 산이며 모든 자연이 그와 같은 신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연보호’를 외친다. 어떻게 보면 자연보호란 말에도 파괴의 마성이 도사리고 있다. 자연이 인간을 보호한다면 모를까 인간이 자연을 보호한다니. 이 또한 자연을 도구로 바라보는 생각 아닌가. 파괴하든 보호하든 인간이 내키는 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오만은 이제 끝까지 다다랐다. 우리는 모성의 자연을 버리고 도구화한 죄 값을 톡톡히 치를 것이다. 스스로 태어나 신을 낳고 우주를 낳고 사람을 낳아준 어머니 여신이 대자연임을 누구나 알면서도 외면한 징벌을.

*참고자료

정재서·전수용·송기정,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케네스 데이비스(이충호 譯), 세계의 모든 신화, 푸른숲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개정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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