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 햇빛에 부서지는

억새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꽃이 되고 싶어라

누군가의 마음이 되고

위로가 되어 시들어 버려진다고 해도

사랑을 배달하는 꽃이 되고 싶어라

초가지붕 울안에

터줏대감 유카 꽃 보러

아버지 다녀가시고

돌 위에 위태로운 손가락 선인장

빨갛게 나팔 불 때면

어머니 볼은 더욱 붉어지니

꽃이 되고 싶어라

바람은 시간을 쓸어가도

꽃은 피어

속절없이 뿌리째 버려진다 해도

당신 앞에서 꽃이고 싶어라‘

김성현의 시 ‘꽃이 되고 싶어라’ 전문(全文)이다.

김성현은 누구인가.

‘기도하는 여인’, ‘꽃의 봉사자‘, 온갖 허드렛일도 마다않는 ’겸손한 신자‘,

오랫동안 그녀를 가까이서 보아 왔던 이들의 말로는 그랬다.

물론 신앙생활을 중심으로 해서다.

그러나 일반은 느닷없이 공격해온 무자비한 괴한의 흉기에 살해된 ‘비운의 여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70일 전인 9월 17일 아침, 그녀는 제주시내 한 성당에서 아침미사를 마치고 혼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흉기를 든 50대의 건장한 중국인 관광객이 그녀에게 느닷없이 달려들었다.

가슴과 복부 등 4군데를 무자비하게 난자하고 도주해 버렸다.

범행 후 7시간 만에 범인은 잡혔지만 여인은 병원에서 사투 끝에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사건은 전국에 충격을 줬고 경악케 했다.

무사증 제도 도입 등 무분별 관광객 유입 정책 등 빗나가는 사회현상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는 장례미사에서 그녀의 죽음을 ‘개발 지상주의의 무분별한 탐욕이 빚어낸 결과’로 진단하기도 했다.

“개발의 열병에 걸려 무제한 투자와 무차별 개발, 대규모 관광 등 탐욕적 제주도 정책이 죄 없고 티 없는 영혼의 소유자를 무자비하게 살해 했다”고 했다.

시대의 과욕과 죄악 때문에 죄 없이 무고한 사람이 희생됐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죽음을 통해 “이 시대의 무분별한 환락과 탐닉과 질주를 멈추고 인간의 품격과 존엄에 어울리는 절제 있는 삶을 회복하라는 신의 경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죽음이 비록 참담하고 불행하고 가슴 저미는 슬픔을 자아냈지만 이를 계기로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면 그 죽음은 아프지만 헛된 일만은 아닐 것이라는 말일 터이다.

그렇다면 왜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두 달도 더 지난 그녀의 죽음을 상기하고 있는가.

그녀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난 2007년 등단하여 문학 활동을 계속해 왔다.

틈틈이 써 모은 자작시 120여 편을 묶어 10월에 첫 개인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끔찍하고 불행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시집출간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가족과 그를 좋아했던 지인들이 뜻을 모아 유고시집 ‘국화향이 나네요’를 출간한 것이다.

그래서 28일 저녁 7시, 천주교 신제주 성당 지하 강당 ‘엠마오 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어 시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글머리의 ‘꽃이 되고 싶어라’는 시도 시집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시집 전 편에 흐르는 사랑의 메시지에는 시인의 마음이 촘촘히 배어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를 향한 애틋함이나, 남편에 대한 믿음과 존경, 자식들에게 보내는 속 깊은 사랑 이야기 말고도 콩나물, 고사리 같은 소소한 일상에서도 시어(詩語)를 다독거려 사랑의 감성을 녹여 냈다고 보아 졌다.

그녀의 시에는 화장기가 없었다. 분칠하고 립스틱 짙게 바르는 기교보다 콩나물 다듬듯, 고사리 손질 하듯, 조곤조곤한 일상의 언어가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인용한 ‘꽃이 되고 싶어라’는 꾸임 없는 사랑이야기였다.

신을 경외하면서든, 자연을 향해서든, 숭늉처럼 구수한 부모의 사랑을 말하면서도, 뿌리째 뽑혀 당신 앞에서는 꽃이고 싶다는 남편을 향한 무조건 사랑에서든, 시인은 ’사랑을 배달하는 꽃이 되고 싶다’고 했다.

시집에 점철된 시인의 사랑에는 감사와 겸손과 진정성이 알알이 배어있었다.

‘나의 작은 하나도

누군가로부터 받았음을 알았을 때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사랑의 잎을 틔우기 시작했네

사랑이 없으면

나의 모든 것 아무것도 아니었네‘

‘사랑이 없으면’ 중에서.

꽃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달콤한 감성을 엮어 일구어낸 시어들은 순수하고 다정다감했다.

옹달샘처럼 작지만 푸르고 정갈했다.

겸손과 끈질긴 봉사와 이웃을 보고 담아내는 따뜻하고 진솔한 사랑의 눈길을 시집 전편에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여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여 진행하는 유고시집 ‘국화향이 나네요’ 출판기념회가 국화 향을 뿜으며 이승과 저승사이를 잇는 ‘사랑의 꽃 배달부’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국화향이 나네요

노랗게 우러나온 태양도

쪽빛 바다도 품고 있는 당신에게서‘

‘국화향이 나네요’ 마지막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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