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오(희곡작가)

상실한 낙원, 에덴동산의 남녀 아담과 이브는 창조주와의 약속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황홀한 맛에 빠져든 두 남녀가 처음으로 한 일은 나뭇잎으로 자신들의 치부를 가린 것이었다고 전해온다. 사람의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 세 가지를 말할 때 우리는 보통 의식주라고 한다. 여기서도 ‘의(衣)’가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소리이다. 이렇게 옷은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은 동물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만드는 첫 번째 장치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태초의 여신들은 한결같이 직조(織造)의 권능을 지니고 있다.

직조, 외짝의 베틀신을 신고 씨줄과 날줄을 엮는 것은 여신의 특권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감히 여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사람의 여인 중 하나는 영원히 실을 잣는 처참한 저주를 받지 않았던가. 누구나 한 번 쯤은 건물의 구석진 귀퉁이에 먼지가 잔뜩 낀 거미줄을 걷어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끔씩은 자기가 쳐놓은 줄에 매달린 채 말라죽은 거미의 미라와도 마주칠 때가 있다. 나는 이럴 때면 여신 아테네의 저주로 인해 저렇게 고통스런 꼴이 된 아라크네가 딱하다는 생각을 잠깐 동안 떠올리곤 한다.

설문대할망이 등잔을 얹었다는 성산일출봉의 등경돌

제주의 여신들 중에서 최초로 실을 자으며 속삭이듯 감미롭게 물레타령을 불렀을 이는 누구일까? 다름 아닌 제주토박이들의 어머니 여신 설문대다. 아름다운 모습만으로도 성스러운 기운을 뿜어내는 성산일출봉의 비탈을 거슬러 오르다보면 우뚝 솟은 바위기둥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사람에 따라서는 원숭이바위라고도 부른다는 이 바위가 설문대의 등경돌이다. 여신께옵서 불 밝힌 등잔을 바위기둥의 머리 위에 얹어 놓고 길쌈을 했다하여 등경돌로 불린다. 무슨 연유로 거대한 여신은 한밤중에 일출봉 귀퉁이에서 청승맞은 길쌈질을 했을까? 흙을 날라 높다란 한라산과 삼백예순 오름을 만들 때 입었던 치마가 헤져서 덧대며 누볐던 것일까? 그도 아니면 한라산을 깔고 앉아 한 발은 관탈섬에 걸치고 또 다른 발은 서귀포 앞바다 범섬에 걸쳐놓고 곱디곱게 세답한 빨랫감을 기웠던 것은 아닐까?

성주풀이굿에서 삼싱할망에게 비념할 때 상 밑에 치마를 깔아놓은 장면

여신 설문대의 사연에는 유독 치마, 속곳, 빨래, 길쌈 등 직조와 관련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여신은 태초의 시간에 직조에 열을 올렸을까? 다시 등경돌 앞으로 다가가 보자. 제주섬을 창조한 여신은 캄캄한 천공에 해와 달, 그리고 별을 새겨 놓고 싶었을 게다. 그리고 역시 자신이 창조한 생명들에게 자연계의 질서를 심어주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을 것이다. 그렇다. 설화 속의 이 여신은 우주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자연계의 생태적 질서를 가다듬고 나아가서는 옷감으로 상징되는 문명을 창조한 것이다. 굳이 한밤중에 등불을 밝힌 것은 해, 달, 별의 창조를 의미하며 그 또한 길쌈이라는 일을 통해 이루어낸 것이다. 한라산을 만들 때 치마폭으로 흙을 나른 것 또한 같은 이치다. 옷감의 씨줄과 날줄은 자연계의 질서를 뜻한다. 그리하여 완성된 옷감은 문명을 의미한다. 빨래와 속곳 이야기는 더더욱 직접적으로 문명창조를 빗댄 사연이다.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에도 제주다움을 지키라는 메시지와 함께 속곳으로 상징되는 문명창조의 속뜻이 담겨 있다.

직조의 여신들에게는 베틀이며 물레 따위의 도구가 있다. 씨줄과 날줄을 엮는 베틀질은 질서의 창조, 술술 풀려나오는 실을 잣는 물레질이 어쩌면 시간의 창조를 의미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의 창조신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여신들은 실을 잣거나 옷감을 만든다. 마야의 익스첼, 수메르의 우투, 그리스의 아테네, 중국의 직녀 등 많은 여신들의 사연에서 직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함경도의 ‘창세가’라는 신화를 보면 미륵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하늘 아래 베틀을 놓고, 구름 속에 잉아를 걸어 옷을 지었다고 전한다. 제주의 신화 세경본풀이의 주인공 자청비는 헤어졌던 문도령과 다시 조우하기 직전에 ‘주모땅 주모할망’의 수양딸이 되어 베를 짠다. 이렇게 보면 신의 창조력을 논할 때 직조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인 듯하다.

태초의 시간, 많은 신들이 우주, 자연, 생명을 창조하던 시절에는 여신의 직조야말로 가장 중요한 마법이 아니었나싶다. 함경도의 창세신화 중 하나인 ‘셍굿’에는 세상을 창조한 여러 신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 중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직조의 여신이 있다. ‘모시두레 모시각시’라는 여신이 베틀 앞에 앉은 사연은 이렇다.

옥황상제의 신하 ‘강방덱이’가 옥황상제의 연적을 깨뜨려서 지하궁 자지바위에 갇힌다. 강방덱이는 바위에 갇힌 채 목수의 연장을 다루며 하루같이 큰소리를 낸다. 옥황상제가 시끄러운 소리의 원인이 강방덱이 때문임을 알아내고 그를 데려다 궁전을 짓게 한 뒤 다시 가두려는 계획을 세운다.

부엉이가 명을 받고 내려오자 강방덱이는 완강히 버티며 활을 쏘아 죽여 버린다. 이에 ‘어떠기’란 귀신이 나서서 강방덱이에게 병을 준 뒤 혼을 쏙 빼고는 하늘로 데려온다. 옥황상제가 궁전을 짓는 대로 자유의 몸이 되게 해주겠노라고 하자 강방덱이는 곧바로 공사에 들어간다.

강방덱이가 부지런히 목재를 장만할 때 어디선가 모시두레 모시각시란 아리따운 이름의 여인이 나타나 당신이 궁전을 짓는 동안 자신은 모시 천 동을 짜겠으니 누가 빨리 끝마치나 하는 내기를 제안한다. 자신이 이기면 강방덱이가 옥황상제에게 받을 품삯을 갖고, 강방덱이가 이기면 모시 천 동을 모두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구미가 당긴 강방덱이는 옳다구나 하며 내기를 받아들였지만 끝내 모시두레 모시각시에게 져서 품삯을 모두 내어주고 만다. 분통이 치민 강방덱이는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던지 새 궁전으로 거처를 옮긴 옥황상제로 하여금 원인 모를 질병에 걸리게 만든다. 옥황상제는 강방덱이만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가 원하는 대로 성주풀이굿을 해주고 성주신의 자리를 내어준다.

자연과 문명을 창조하며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의식주를 마련하는 과정을 남신과 여신의 대결로 그려낸 이 이야기는 직조의 여신 모시두레 모시각시의 승리로 끝난다. 돌의 창조력과 생명력을 지닌 남신 강방덱이조차도 베틀 앞의 여신을 당하지 못한다. 모시두레 모시각시는 도대체 얼마나 큰 권능을 지녔기에 자지바위의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 강방덱이를 이겼을까? 해답은 직조가 모든 생명의 원천인 해와 달을 창조하는 행위라는 데에 숨겨져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 기이편에 신라의 바닷가마을에 살던 젊은 부부 ‘연오랑 세오녀’의 사연이 나온다. 미역을 따던 사내 연오랑이 바다를 항해하는 돌을 탄 채 일본까지 다다른다. 그곳 사람들은 바위를 타고 온 신비한 사내를 왕으로 모셨다. 남편을 찾던 세오녀 또한 바위를 타고 연오랑이 있는 곳까지 간다. 두 사람이 신라 땅에서 사라진 뒤에 해와 달이 빛을 잃는 엄청난 재앙이 생겼다. 신라 조정에서 원인을 알아내고 부부에게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자 두 사람은 하늘의 뜻으로 자신들이 일본까지 왔으니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남긴다. 대신 세오녀가 짠 비단을 보내주니 신라 땅의 해와 달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광채를 뿜어냈다고 한다.

일본서기에 전하는 태양신 아마테라스도 비슷한 사연을 지닌 존재다. 말썽꾸러기 동생 스사노오의 훼방질에 화가 치민 아마테라스가 베틀을 박차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 해와 달이 사라지고 세상이 캄캄해졌다고 한다.

해와 달을 만들어내는 직조, 이 위대한 권능을 지닌 모시두레 모시각시였기에 제아무리 생명력의 화신인 강방덱이라고 해도 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제주의 창조주가 일출봉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길쌈을 했던 이유가 자연스레 밝혀진다. 이렇게 하나의 신화 속에 담긴 수수께끼는 비슷한 이야기와 견주어가며 풀어낼 때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직조의 권능은 신화시대의 이야기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신화시대의 종식을 알리는 건국신화 속에도 직조의 권능이 흔적처럼 남아있다. 삼국유사 중 가락국기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가야의 수로왕이 역시 하늘이 정해준 배필인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맞아들일 때에도 직조의 흔적이 나타난다. 가야국의 앞바다에 붉은 돛을 달고 나타난 허황옥의 배를 발견한 수로왕이 신하를 보내 환영한다. 배를 대고 드디어 가야 땅을 밟은 허황옥은 잠깐 쉬는가싶더니 자신의 비단치마를 벗어 그곳의 산신께 바치며 제를 지낸다. 가야에서 최초로 한 일이 산천에 비단치마를 바치는 것이라니. 이것은 태초의 신이 해와 달을 창조한 것처럼 인간의 왕이 새로운 왕국의 질서를 만들겠다는 창업의 행위다. 신의 권능을 물려받은 만인지상의 존재인 인간의 왕이기에 직녀의 그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소치는 남자와 베 짜는 여자의 사랑을 다룬 ‘견우와 직녀’, 날개옷으로 인연을 맺은 ‘선녀와 나무꾼’ 또한 애틋한 사랑이야기의 뒷면에 여신 직녀의 권능이 숨겨져 있다. 신화시대가 끝나고 역사시대가 문을 열어젖히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본래 직녀는 자신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말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누에고치가 되어버린 여인의 이름이었다고 중국의 신화는 알려준다.

창조의 여신이 시간의 물레와 질서의 베틀을 다루는 마법 때문인지 우리나라의 굿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의 주술을 살펴보면 알록달록한 천 조각부터 펄럭이는 깃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물이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 노릇을 한다. 제주의 굿에서도 이런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굿청에 차려놓는 제상 중에 ‘보답상’이 있어 몇 필의 천을 곱게 포개 올려놓고 ‘천보답 만보답’이라고 부른다. 굿을 할 때면 마당 가운데 높다랗게 세우는 ‘큰대’에도 ‘댓ᄃᆞ리’라고 부르는 오색의 천들을 기다랗게 매달아 굿청 안까지 드리운다. 영혼이 오가는 다리 ‘차사영겟ᄃᆞ리’, 요왕이 오가는 다리 ‘요왕ᄃᆞ리’ 등 많은 신들이 굿청으로 드나드는 다리 또한 기다란 무명천으로 꾸며진다. 제주도 굿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불도맞이굿 속의 ‘할망ᄃᆞ리추낌’에서 기다란 천을 휘휘 젓는 심방의 모습은 태초의 여신들이 쉴 새 없이 돌렸을 물레가 떠오른다. 그뿐인가. 음력 정월부터 삼월까지 성황을 이루는 여러 마을의 당굿을 보시라. 굿의 말미에 한 해의 신수를 점친 단골(신앙민)들은 저마다 나뭇가지에 백지와 더불어 알록달록한 물색천을 매달며 연거푸 머리를 조아린다. 지나친 비약이라며 손사래를 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마디 마디 옹이진 손으로 정성껏 합장하는 어머니들을 보며 가야 땅을 처음 밟자 둘렀던 치마를 벗어 산천에 바치며 새로운 나라의 창업을 소망했던 허황옥의 모습을 떠올린다.

조천읍 와흘리 본향 한거리하로산당 본향대제 中 단골들이 물색을 매다는 모습

근래 들어 제주의 신화와 더불어 무속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다양한 이들이 굿판으로 몰려들고 있다. 굿을 직접 보지 못하는 이들은 신당기행 등을 통해 여러 마을의 당(堂)을 찾아다닌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눈에 울긋불긋한 조각 천들이 나뭇가지마다 대롱대롱 매달린 채 성소임을 알려주는 모습이 들어올 것이다. 다시 기회가 있어 그런 곳을 찾아가게 된다면 부디 직녀라는 이름의 여신들을 떠올려보시라. 우주와 함께 우리 인간이 태어나던 날 하늘 아래 베틀을 놓고 구름 속에 잉아를 걸어 외짝의 베틀신에 발을 넣고 베틀노래를 부르는 여신의 모습을. 혹여 촛불이 밝혀져 있다면 그것은 여신 설문대가 등경돌 위에 얹어놓은 등잔이라 여겨 꺼뜨리지 마시고.

*참고자료

김헌선, 한국의 창세신화, 길벗

이지영, 織物神의 傳承에 관한 試論的 硏究-옷·베짜기신화소를 중심으로, 구비문학연구14, 한국구비문학회

일연(김원중 譯), 삼국유사, 민음사

정재서, 중국신화의 세계, 돌베개

조현설, 마고할미신화연구, 민속원

케네스 데이비스(이충호 譯), 세계의 모든 신화,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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