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방영 시인이 한권의 시선집을 제외한 7권째 시집 "내 하늘의 무지개"를 지난 9월에 펴냈다.

 

행복한 두 사람

1. 카자흐스탄의 노인

 

나는 행복하다

초원이 있어서

아침에 양을 몰아 나가고

저녁 되면 돌아오니

황금빛 초원은 나를 기다리는 벗

날마다 나와 함께 노래를 한다.

 

2. 제주의 팔순 해녀

 

나는 기쁘다

마음 가득 기쁘다

바다 속에 들어가면

나의 옛날 그대로 남아 있어서

변함없는 나의 세상 그곳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어서.

 

4부로 나눠진 88편 속의 시에서 이 시가 제일 좋아서 첫머리에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해녀라는 일반적 개념을 무너트리고 해녀라는 직업의 이미지를 행복으로 승화 시킨 내용이 너무 신선하고 돋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 문인들이 쓰는 해녀의 작품에 필자는 언제나 불쾌하고 불만스러웠다. 해녀라는 직업에 대한 긍정적 평가보다는 이유 없는 일방적 비하 속의 작품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작품에 나오는 숨비소리는 한을 품은 한숨이 되고 태왁은 삶의 고통을 안은 혹처럼 묘사되는 판에 박은 작품들에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해녀 작품에는 은유의 멋짐과 재치도 없이 꼭 숨비소리와 태왁이 언제나 밥상에 올라오는 숟갈과 젓가락처럼 빠질 때가 거의 없었고, 그 상징은 언제나 한이었다.  

이러한 해녀 비하의 작품은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 등재>에 오른 해녀상과 이율배반적인 요소도 있다. 언젠가 이 부조리를 제주 김순이 시인께 호소했더니 똑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오래 전부터 여성의 직업 의식이 뚜렷하지 못한 때 해녀는 당당한 여성의 직업이었고 그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삶은 긍정적인 의미로 승화 시켜야 한다. 결코 이것은 미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녀라는 직업병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바다 속은 지구 속의 우주이다. 그 우주를 해녀는 생명줄 하나로서 오랜 옛날부터 자유자재로 유영해 왔다. 현대의 우주 유영의 영상을 보노라면 해녀의 그 유영이 오버랩 된다. 감동이다. 

제주의 팔순 해녀는 이 바다 속의 우주를 젊은 시절 때부터 자기 집 텃밭처럼 알고 있을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노인에게 행복의 초원이 있다면 제주 팔순 해녀에게는 해원(海原)이 있다. 

 

숲에 아침

 

저 멀리에 앉은 절 기와지붕 아래

스님이 경전 읽는 소리

 

겨울바람이 실어다

숲에 부려 놓으면

 

나무들 모두 그 말씀 받아서

잎사귀마다 떨며 전하고

 

찾아오는 새들이 가슴에 담아

가을을 녹이고 봄 하늘 안아온다.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의 한장의 그림 엽서처럼 다가온다.

 

잠과 꿈 사이 거기

 

잠과 꿈 사이에 있는 곳

그리움이 해가 되고

날마다 뜨고 지는 달이 되고

감미로운 눈물이 나비로 날아

 

그 누구도 살지 않는 그곳

사람들이 잃어버린 애틋함만 살아

눈물도 마르고 그리움도 잊어버린

메마른 가슴으로 가끔 바람 불면서

 

사람들이 찾아가려고 나서는 그곳

그러나 오직 잠과 꿈 사이에만 있는 곳.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보편적으로 체험하는 환상의 세계(꿈) 속에 사람들은 새로운 희노애락을 맛본다.  

 

겨울 공원

 

1.

눈 내린 아침

떨어진 열매와 잎들의 날들을

작은 나무 혼자 노래 부르는데

 

어디에선가 날아온 작은 새

나무에 내려 함께 노래 불렀다.

여린 노래에 흰 눈송이들 춤을 추고.

 

2.

오늘 아침  작은 새의 노래는

나무에 남긴 작별의 말

하늘 한구석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잃어버린 길을 찾아가는 작은 새

작은 나무에 은실처럼 감기는 서운함

하늘 어둡고 세찬 바람에 날리는 눈

 

날아오는 검은 색, 회색, 갈 색의 큰 새들

지나가는 그들의 외침 소리 

작은 나무 홀로 서서 듣고 있다. 

 

모두가  스쳐 지나가지만 나무만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을씬한 겨울 공원 속에 작은 나무는 그 풍경 속의 하나가 되면서도 자신의 내면까지도 관조하고 있다. 그러나 작은 나무는 끗끗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자리 잡은 그곳을 숙명처럼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고고하다. 

 

돌아오는 길

 

푸른 어둠.

무한한 하늘의 어둠

전등 깜빡거리면서 나가는 비행기

나도 작은 별이 된 듯,

하늘 어디에 누군가는 해독하고 있을까

어둠 속을 날아가는 이 빛의 언어를

 

비행기 안에 사람들은 물속의 해초처럼

졸음에 잠겨 꿈길에서 흔들리고

도시의 집과 거리의 불빛을 지나

푸르른 어둠 속에 모두 멀리하고  

낯선 도시에 남겼던 마음도

어둠의 뒤로 가버리고

 

청춘 뒤로 사라진 그림자인 양

공황 활주로에서 꽃처럼 별처럼 붉고 노란

전등의 꽃이 철선의 줄기 위에 다시 피어나

땅 위에 수 놓인 숫자와 선들이 인도하며

수많은 약속의 집으로 가는 길로 이끄는 밤

한 번 더 나는 다시 오지 않을 꿈을 품는다.

 

시인은 이 시를 언제나 돌아오는 삶 속에 나의 자리 등 여행이나 사람들 이야기에서 파생되는 교류와 교감을 모아놓은 4부에 넣었다고 "여는 글"에서 쓰고 있다. 

이 시의 본문 2연의 5행 "낯선 도시"를 "고향"으로 바꿔 읽어도 새로운 시의 여운을 남기게 한다.

그리고 "여는 글"에서 강 시인은 "나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히지도 않고 시집의 존재를 인정받지도 않는 현실과 세상임을 잘 알지만, 무엇이가를 창작해 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문학은 한 마디로 삶이고, 삶의 의미를 압축하면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사랑은 행복이면서 동시에 고통이 아닌가. 문학을 통해 우리는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삶의 의미를 각자 나름대로 정리한다."

"누가 시를 읽고 누가 내 글을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사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쓰는 것 자체로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도 동감하는 부분이어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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